주차 지옥에서 동상이몽
난 가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게 언제냐 하면 남편이 하지도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할 때다. 이번 여행을 통해 오빤 외국에서 처음으로 운전에 도전했다. 정말 힘들 때 내가 도움이 되기로 했지만 결국 운전 대부분은 오빠 몫이 됐다. 워낙 미리 준비하고 조심하는 성격의 오빠라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나도 덩달아 괜스레 긴장이 됐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모두 길이 좁고 산길이 많아 운전도 주차도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오빤 특히 스플리트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걱정은 시작됐다. 한국에서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문제의 스플리트에 도착할 때까지.
"스플리트가 진짜 주차 지옥이래" 오빤 이 말을 슬로베니아에서도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에서도 했다. 스플리트 도착 전날에는 이 걱정이 절정에 달했다. 한국이면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을 냈겠지만 '여긴 말도 안 통하는 데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터프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타국이니...' 하고 싶은 말을 몇 번이나 삼켰다. 옆에 나까지 타고 있으니 더욱 긴장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남편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닥치면 결국 다 해결된다’고 믿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나의 낙천주의 때문이다. 나는 작은 일엔 참으로 예민하고 큰 일엔 오히려 대범하다. "오빠 결국 다 주차하게 돼 있어. 도착해서 걱정하자"
해가 진 어스름한 저녁이 돼서야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낮이 아니라서 걱정이야 어두우면 더 잘 안 보이잖아" 또 시작이네 아직 완전히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 걱정을 방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니 나름 전날부터 검색도 해봤다. 그리고 정 힘들다면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도 됐다. 오빠 마음 편하게 가져 제발.
도착이 가까워 올수록 남의 편인 나의 오빠는 패닉에 빠져갔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지라도 내 눈엔 훤히 보였다. 급격히 말수는 줄어들었고 내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 상태. 그래 그렇다면 내가 해결해 주지. 나는 나의 근자감과 낙천주의를 발동했다. 믿기 어렵지만 이게 통할 때가 꽤 많다. 이날도 그랬다. 숙소로 향하던 중 스플리트의 대형마트를 발견했고 지체 없이 주차장으로 가자고 했다. 무료는 아니었지만 예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오래 차를 주차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스플리트 주차 난제는 치열하게 풀기도 전에 끝났다.
주차를 한 뒤 큰 짐을 든 오빤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자, 이제 가자" 사실 난 너무 궁금했다. 오빠가 왜 사서 걱정을 하는 건지. 그래서 또 참을성 없이 신난 오빠에게 물었다. "난 네가 더운데 짐까지 들고 멀리서 걸어가는 거 싫어." 휴.. 나의 철딱서니가 또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오빠 미안해. 난 그래도 아직 오빠가 왜 사서 걱정하나 싶어. 나도 오빠가 걱정으로 마음 졸이는 거 싫거든.
혹시 스플리트를 가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신다면 토미 슈퍼마켓(Tommy supermarket)을 찾아 주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