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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outh Sep 06. 2019

#2. 환상은 접어둔 진짜 타운하우스 라이프

겨울, 3층 대궐집에선 입김이 난다

우리 집은 3층이다. 이 집에 산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우리 부부 모두 각자의 회사에서 '3층 대궐집에 산다' '천안 유지다'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한 금액을 말할 순 없지만) 서울에선 전셋집도 구하지 못할 가격으로 우린 우리의 로망을 천안에 구매했다. 그와 함께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부러움 섞인 소리를 들으니 살짝 어깨가 으쓱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2년여 전 TV에만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외관, 아파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천고, 무엇보다 우리 강아지들이 뛰어놀 수 있는 데크와 정원이 있는 이 집에 매료되어 덜컥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 나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지만 오빤 신중의 신중을 기하는 타입인데 그런 사람이 일주일 만에 이 집의 계약서를 작성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계약서를 작성한 후 정말 이사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렘 가득했던 기분 좋은 나날들이었다. 타운하우스 라이프 이런 건 하나도 모르면서 룰루랄라.


12월 7일, 우린 휘게 라이프(Hygge Life)를 꿈꾸며 우리의 미래와 로망이 어우러진 집으로 이사했다. 새집에 들어가기 전 꼭 체크해야 하는 하자 부분까지 직접 찾아주신 정말로 좋은 이사 업체를 만난 덕에 추운 날이었지만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짐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줄 알았다.  


2017년 그 겨울, 우린 집에서 입김이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시작으로 타운하우스의 단점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다. 로망은 로망일 뿐.


그렇다. 3층 대궐집이 가장 취약한 계절은 겨울이다. 여기저기 크게 난 창으로 들어오는 한기에 난방을 하려고 해도 집의 규모만큼 엄청난 비용을 감내해야 했다. 각층 모두 실평수 15평으로 우리 집은 총 45평이다. 실질적으로 3층은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해 한 겨울에 난방비가 월 30만 원가량 나왔다. 처음 난방비가 나오던 날 우리 부부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이 집에 이사 온 걸 후회했다. 그것도 억 소리 나는 빚까지 떠안아가면서 말이지.


애미야 춥구나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각오를 했지만, 난방비가 이렇게 까지 나오다니. 놀랄 노자였다. 더욱이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우린 집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난방을 사용한 시간은 1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저 아기를 키우는 집이나 하루 종일 사람이 있는 집은 아마 월 100만 원 정도(전층 가동 시) 난방비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기암 할만한 난방비 이외에도 겨울이 힘든 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눈이다. 서울도 서울이지만 천안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눈이 많이 내렸다. 지난해는 정말 운이 좋게도 함박눈이 한두 차례 오는 것에 그쳤지만, 이사 첫 해인 2017년에는 눈이 와도 정말 너무 많이 왔다. 주차장에 따로 지붕이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린 눈이 오는 날엔  어김없이 평소 기상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차에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남편이 출장을 갔던 날엔 나 혼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갖 장비를 다 동원해 그 많은 눈을 치웠다. 왜 군인들이 눈 오는 날을 그리도 싫어하는지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너무 빠르다. 올해도 여름이 지나 가을이 코앞이다. 그리고 곧 긴 겨울이 오겠지. 3층 대궐집에 사는 나는 벌써 그 계절이 두렵다. 눈만은 적게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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