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youth Sep 11. 2019

#4. 타운하우스 라이프, 시골마을을 뒤흔든 총소리

탕. 탕. 탕

탕. 탕. 탕

토요일 오전 8시, 조용한 마을을 뒤덮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에 남편과 일찍이 눈을 떴다. 우리 별난 강아지들도 정체불명 소리에 놀라 짖기 시작했다. 내 귀에 탕. 탕. 탕하고 지속적으로 들리는 이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총소리였다. 소리의 근원지를 파악하기 위해 창밖을 내다봤다. 유동인구라곤 한 사람도 찾을 수 없는 한적한 시골마을 풍경만이 창문을 꽉 채웠다. 뭐 잠깐 나고 마는 소리겠지 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또 그 소리가 들려온다. 탕. 탕. 탕. 우리 쮸삐, 동순도 합창을 해댄다. 아침은 끝났다.


주말이면 오전 10시에나 힘겹게 눈을 뜨는 나는 이 황금 같은 아침을 망쳐버린 소음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분노는 필수 옵션이다. 가만두지 않을 테다. 잠옷바람으로 정원에 나왔다. 남편도 나와 함께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밖으로 나와 들으니 소리의 방향은 감이 잡혔다. 탕. 탕. 탕. 이 소리는 총소리였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총을 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 게냐. 부들부들거리고 있는데 우리 타운하우스 입주민 단톡방에 제보가 들어왔다. '이 소리의 근원지가 OO님 댁이라는데 함께 가실 분'


오빠와 나는 문제의 집을 노려보았다. 남편은 당장이라도 쫓아갈 기세인 나를 만류하며 자기가 먼저 가보고 오겠노라 했다. 오케이.


오션뷰 아니고 논밭뷰

일차적으로 남편이 파악한 내용은 소리의 근원지가 OO님 댁이 아니라는 것. 뒤편 곡물 가공 농장에서 나는 소리이며, 이는 총소리가 맞다는 것이었다. 잠깐만 뭐라고? 총기 소지가 합법인 미국에서 4년이나 보낸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를 한국 와서 듣는다고? 약간의 허세를 부리며 남편에게 이게 말이 되냐며 진짜냐고 물었다. 오빤 입구에서 그 공장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렇다고 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논에 새가 너무 많아 쫓기 위함이라고.


내 기준에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사격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시골마을에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총을 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바로 검색 엔진을 가동했다. 그래 역시 내 말이 맞지. "오빠 경찰에 신고하자" 나의 단호한 태도에 오빤 흔들리는 동공으로 답을 대신했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 한적한 곳에서 저렇게 총을 쏘는 게 말이 되나? 내 생각엔 새를 다 죽여버리고 있는 거 같아!!" 나의 호들갑에 남편은 결국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거였다. 나도 동행했다.



공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탕. 탕. 탕. 소리는 커질 대로 커져 귓전을 거세게 때렸다. 손으로 귀를 막아가며 걸음을 옮기는데 갑작스럽게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의 머리에는 총에 맞아 처참하게 죽은 새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한걸음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남편은 겁을 먹을 대로 먹은 나를 달래며 자기가 공장에 들어가서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움직이지 말고 거기 서있어 알았지" 나는 또 혼자 오빠를 사지로 밀어 넣을 수 없어 더딘 걸음으로 겨우겨우 공장으로 따라 들어갔다. 한 열 걸음 떨어진 채로...


공장에 도착하자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인상 좋으신 세 분이 ‘이 사람들은 누군가’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남편은 정중하게 지금 여기서 총소리 같은 게 나는 것 같은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타운하우스 주민들이 모두 놀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설명에 아저씨들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거 녹음된 거여" 하셨다. 농작물 피해가 심해 지난주엔 환경부에서 나와 실제로 총을 쏴도 새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올해 유난히 새가 많아 녹음된 총소리를 틀어 놓은 거라고 하셨다. “가서 더 자. 너무 일찍은 안 틀면 되지?”


휴.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총소리가 진짜가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리고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탓에 문제 해결 방식도 딱 거기에 머무르는 내가 확인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다짜고짜 신고를 했다면 큰일을 벌일 뻔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또 시골마을 타운하우스에서 사는 방법 하나를 깨우쳤다. 이곳엔 이곳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 있다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3. 환상은 접어둔 진짜 타운하우스 라이프(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