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또 한 번의 영끌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영끌' 영혼까지의 끌어모으다의 줄임말.
우리의 첫 번째 영끌은 2017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을 때다. 결혼 5개월 차, 아직은 완전히 부모로부터 독립된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우린, 난생처음 생긴 억대 빚에 몇 개월 호되게 고생을 했더랬다. 남편과 나 모두 근면 성실히 회사생활에 임했지만 끝자리까지 오차 없이 정해진 급여에 '우린 왜 이렇게 돈을 못 벌까' '가난할까' '이 집을 왜 샀을까' 생각했고, 우울이 더해지던 날엔 '돈도 없으면서 결혼은 왜 했을까'로 까지 생각이 뻗어나가곤 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우리만의 속사정이었고, 심지어 우리 둘 서로에게도 마음의 무거운 짐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밝은 척 웃음 짓던 나날이었다. 영끌의 대가로 한 달에 몇백만 원이 통장에서 한 번에 빠져나가자 나는 더 이상 월급날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람의 적응력은 무섭다. 이 사실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으나, 빠듯한 생활을 몇 개월간 이어나가다 보니 그 생활에 차츰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해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우리 부부의 연봉에 감사하며 열심히 영끌의 흔적을 지워나가다 보니 3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우린 천안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보다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부부 모두 서울에서 근무하는 이상, 천안에서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우리의 집을 두고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도권의 높은 집값은 또 한 번의 영끌 넘어 영끌을 예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부부만의 집을 소유하며 인지하지 못했던 불안이 다시금 휘몰아쳤다. 가령 이런 고민 '도대체 우리가 살 집은 어디일까' '돈은 어디서 구하지' '이사를 또 해야 하는구나' 등등...
이사를 결심하고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을 내놓고, 아쉬운 마음에 취소했다 다시 집을 내놓는 뒤죽박죽의 과정 속에 우린 두 번째 집을 찾았다. 이른 6월 계약을 완료하고 11월 이사를 결정했다. 계약금도 내고, 중도금도 낸 우린 다시 한번 은행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서류들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저 은행에서 끝나려면 좋으련만 변변치 않았던 우린 계약 이후 누릴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편의를 내려놓고 돈 모으기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마트 가기도 절반으로 줄이고, 계절이 지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던 새 옷도 당연히 없다. 코로나 여파로 계획했던 여행은 모두 미루기보다 현금 확보를 위해 환불받는 쪽을 선택했다.
어쩌면 무서운 적응력으로 인해 영끌 초반 힘들었던 기억을 잊고 우리 부부는 덜컥 또 한 번의 영끌을 결정 했다. 어느 정도 우리 수준에 맞는 집을 선택했더라면 미래의 나에게 좀 덜 부담이 되었을 텐데, 이번에도 탐미주의자인 나의 활약으로 남편까지 끌어들여 영끌의 노예가 되었다. 집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