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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일 Jan 19. 2021

새로움은 내안에 늘 함께합니다.

영끌대출 (영혼까지 끌어다 대출을 받는다)

언론?이 만든 이런 단어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난 젊음을 돌아보게 하는 단어임에 지난날을 적어봅니다.


1986년 공군부사관 2월 임관하여 첫 월급 평달 실수령액 기준 90%인 12만 원 재형저축 적금을 했다. 당시 12만 원 5년 적금하면 1,000만 원 받던 시대로 저축 이자가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영내 생활했습니다.


동기생들 50명 중 대부분 10만 원 이하로 했으며 5명만이 12만 원 했고 그중 한 명은 5년 만기 전역식 후 동기생들 전역 기념식에 천만 원 투척했습니다. 기념식 후 찬조금으로 모두 회수 했음^^


물론 저는 조금 더 하는 군 생활로 인해 계속 추가 적금을 했고 처음 C-123 수송기 탑승 주, 야간 비행으로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기에 저축을 조금 더 했습니다. 그러나 전역을 앞두고 2년을 채 배우지 않았던 취미인 공예 활동에 전역 전, 후 투자하여 6개월 만에 하고 싶은 금속 공예를 해서 모아둔 대부분을 날렸습니다. 만기 도래 전 저축 하나 제외하고.


현재 회사에 1993년 입사하여 1년 만에 결혼 양가 지원 없이 단칸방으로 시작하였으나 당시 서울 88 체육관 건너 아파트 20평대 분양가  평당(3.3㎡) 500만원?이 넘어 청약을 할 수 없어 1996년 김포로 이사했습니다.

1997년 12월말에 김포에 처음 아파트를 분양(3.3㎡ 340만 원) 받았는데 2주만에 IMF 터져 분기별 대출 980만 원 아파트 대출 이자만 25만원 가까이 내고 버텨야 했던 그때였습니다.

4회 중도금 대출 이자만 일백만원.


이때 아파트 입주하기전까지 군 생활만큼이나 저축을 했으며 아이들도 1년만 유치원 보내고 초등학교에 보냈습니다. 2006년 한 녀석이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 10년 만에 서울로 다시 들어오면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했습니다.


당시 부동산 중개사 말에 의하면 아파트 가격이 하루에 4번 오르던 날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계약금 주고 상투를 잡는듯 했으나 계약을 했습니다.


2006년 이후 서울에 거주하지만 급등하는 아파트를 보면 미쳤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닌 전 세계적 현상이라 합니다.

투자 없는 급등은 거품이라 보며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해야 하는 시기 같습니다.


주변에 주식과 비트코인에 투자하여 높은 수익률 소식을 접하지만 지나온 생활 방식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며 젊은 날과 조금 바뀐 거라면 그동안 경험을 가지고 새로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새로움은 내안에 늘 함께합니다.


부자 집안이 아니라면 무엇보다 차곡차곡 종잣돈을 모아 기회가 왔을 때 무언가에 도전하시기를 바라며 영끌 대출 이런 단어에 너무 현혹되지 마시기를 바라며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1986년 급여.(하사 1호봉 1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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