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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Oct 31. 2021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임신 제21주

임신을 계획 중인 예비아빠여. 그대에게 전해야만 하는 비보가 있다.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임신과 함께 그대의 성생활은 2인체제에서 1인체제 위주로 바뀌게  것이다. 지금부터 전완근 관리에 들어가는  좋다. 충격이 크겠지만 도리가 없다.  글을 빌려 그대와  경험담을 나누는 것은 미리 알고 있어야 나처럼 쫌생이 짓을    있기 때문이다. 임신  섹스 빈도가 준다고 부부 금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게  부부 금실과 상관없는 문제인지는 차차 설명해드리겠다. 그대의 아내는 여전히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다만 임신과 함께 찾아온 신체적 변화 때문에 당분간은 예전처럼 적극적일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급격히 줄어든 섹스 빈도를 그대가 남편 구실을 못한다거나 부부 사이가 저물어가는 조짐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임신한 아내 관점에서 섹스가 왜 싫은지부터 얘기해보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임신과 함께 입덧이란 걸 하게 되는데, 이게 진짜 고역 중의 고역이다. 보통 입덧하면 그냥 우웩 우웩 헛구역질 몇 번 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하는데, 입덧이 한창일 때는 헛구역질 정도는 귀여운 축에 낀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입덧이 대략 어떤 느낌이냐면, 밤새 술 먹고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골이 깨질 것 같은 숙취를 상상해보라. 입덧이 심할 때는 그런 숙취가 하루종일 지속되는 거랑 맞먹는다고 보면 된다. 거기다가 티익스프레스를 타고 내리자마자 느끼는 어지러움까지 더하면 입덧의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대라면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머리가 핑핑 도는데 섹스가 하고 싶겠는가? 섹스는커녕 뽀뽀도 하기 싫다.


입덧과 더불어 아내를 힘들게 하는 것은 급격한 외모 변화이다. 임신 후 늘어난 호르몬 분비 때문에 피부는 뒤집어지고 온몸이 근질근질해진다. 가려운 부위를 북북 긁어대니 살갗이 하얗게 일어난다. 얼굴에 여드름만 하나 나도 괜히 신경 쓰이는데 온몸의 피부가 뒤집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외모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내 몸을 남에게 보여주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다. 피부뿐만 아니라 자꾸만 불러오는 배도 외모 자신감을 떨어트린다. 1분기 때 아내는 화장실에서 거울 보기를 꺼렸다. 예전 모습의 흔적만을 남긴 채 점점 기형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아랫배 쪽이 터질 것처럼 팽팽해지고 열이 나듯 달아올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쓰라림을 호소했다. 갈수록 망가지는 외모 때문에 자신감은 떨어질 때로 떨어지고, 아내 본인도 자신의 육체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당에 다른 이의 손길을 원할 리 만무하다. 남편인 내가 봤을 때는 배가 귀엽게 볼록해진 것 말고는 별 차이 없는 듯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당시 난 임신 후 섹스 빈도가 줄어들자 애먼 아내에게 화풀이했다. 아내를 마주하고 “당신과 섹스가 하고 싶다!”라고 떳떳하게 속마음을 표현한 것도 아니고 괜히 나 혼자 뾰로통해 있으면서 아내 말에 건성으로 답하거나 혼자 방 안에 처박혀 꿍해 있는 소극적 복수를 택했다. 내가 이토록 떼를 쓴 이유는 첫째 욕구불만, 둘째 우리가 ‘섹스리스 부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나중에서야 당시 아내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진짜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다. 장난감 사달라고 시끄럽게 앵앵대는 4살짜리 꼬마보다 더 꼴사나운 짓을 한 셈이다. 4살짜리 꼬마는 4살이라서 그럴 수 있다 쳐도 난 29살이나 먹었으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오른손의 힘을 빌려 스스로 5분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 아내를 더 힘들게 했으니 크게 죄지은 셈이다. 이후 아내의 몸 상태가 좋아져 우리가 ‘섹스리스 부부’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 된 자여. 부디 내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가 힘들어하는 것 다 안다. 아내와 달리 그대 몸은 멀쩡하고, 왕성한 성욕을 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참아야 한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오른손으로 5분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버텨내야 한다. 그대의 아내는 여전히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는 ‘섹스리스 부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처럼 아내에게 화풀이하지도, 마음에 담아두지도 말라. 이 역시 지나갈 것이고, 맑게 갠 하늘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쬘 것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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