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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Oct 19. 2021

서울부부 순천으로 이사가다

임신 제18-19주

전라남도 순천. 내 주민등록증 뒷면에 적히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행정구역이다. 이사는 빨리 가야 올해 말이지만 내 마음은 이미 순천시 매곡동 일대를 누비고 있다. 우리가 살게 될 집은 난봉산이라는 거대한 산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대한민국 반도에 난봉산이라는 산이 있는 것도 집을 계약하고 나서 알았다. 동네에 유난히 숲이 우거진 곳이 있길래 공원인 줄 알고 집주인께 물어보니, 난봉산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속으로 ‘대박’을 외쳤다. 집 코앞에 등산로라니… 이 무슨 팔자에 없는 횡재인가. 예전에 인간극장에서 본 한 부부가 떠올랐다. 집 바로 옆에 산이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등산을 즐긴다는 말에 몹시 배가 꼬였다. 그런 내가 그들처럼 산자락에 살게 될 줄이야. 귀촌 유튜버도 아닌 우리가 빠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초부터 ‘산 밑에 사는 젊은 부부’가 되게 생겼다.


아내와 내가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올해 3월부터다. 캐나다 교외에 있는 마당 딸린 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내는 서울 생활을 힘들어했다. 이웃끼리 안부를 챙기며 먹을  나누고, 텃밭을 가꾸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생활을 그리워했다.  역시  속에 있는 미마에게 맑은 공기와 자연에 가까운 삶을 주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여서,  차례의 대화 끝에 우리는 탈서울을 결심했다. 우리가 원하는 곳은 첫째 공기가 좋아야 하고, 둘째 내가 일주일에   정도는 서울을 오갈  있게 KTX 정차역이어야 했다. 환경공단이 발간한 초미세먼지 분석 자료와 KTX 노선도를 참고해가며 후보를 추렸다. 강릉을 시작으로 양평과 원주를 거쳐, 결국 인구 24만의 전라남도 순천시가 우리의 간택을 받았다.

 

순천은 기차역을 기준으로 크게 왼쪽을 구도심, 오른쪽을 신도심으로 보는데, 신도심은 여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작품과 별반 다를  없이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전형적인 계획도시의 모양새이다. 반면 구도심은  동네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마무시한 규모로 열리는 오일장 양대산맥인 아랫장과 웃장을 중심으로, 남제동, 저전동, 매곡동 등의 동네들이 모여 구도심을 이룬다.  중에서도 우린 매곡동에 홀딱 반했다. 처음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곳이 앞으로 우리 가족이  곳임을 직감했다. 앞마당에 쪼그려 앉아 돗자리 위에 고추를 펴는 할머니. 야트막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집주인과 요구르트 아주머니.  동네에 드리워진  따스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무심코 던진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여기선 하늘이 보였다. , , 오른쪽, 왼쪽 모두 하늘이 있었다. 수많은 ‘캐슬들과 '펠리스들에 에워싸인 서울에서 하늘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먹고 고개를 90 꺾어 위를 올려다봐야 하늘을 만날  있다. 반면 매곡동의 하늘은 내게 그런 수고를 요구하지 않았다. 주택의 지붕이 끝나는 곳엔 어김없이 하늘이 있었다. 사방으로  뚫린 시야가 처음 며칠 동안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서울 밖으로 여행을  때마다 아내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시야적응이라는 말이다. 해외에서 시차적응하듯,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시야적응이 필요하다. 매곡동 위로 펼쳐진 무한한 하늘을 보며 서서히 시야적응이 되어감을 느꼈다.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순천엔 순천동천이 있다. 한강이 그렇듯 순천동천 역시 순천시를 잇는 동맥과 같은 존재다. 한강과 순천동천의 가장  차이는 강폭이다. 한강은 ‘까마득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만큼, 한강 이쪽 편에서 보는 저쪽 편은 마치 다른 세상 같다. 가끔 한강을 거닐다 건너편을 보며 “저쪽 사람들은 잘살고 있나…”라고 혼잣말을 흘린 적도 있다. 유현준 작가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걷기 좋은 거리로는 2차선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2차선은  건너편 상점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거리다. 대표적으로 가로수길이나 동부이촌동이 그렇다. 차가    무단횡단하면 금세 건너갈  있는 거리여서, 마치 양쪽 편에 볼거리가 있는 하나의 거리를 걷는 느낌을 준다. 순천동천은 도로로 치면 4차선 정도의 폭이다. 이는 유현준 작가가 말한 2차선보다는  배나 넓은 거리지만, 실제로 가보면 생각보다 포근하고 아담하다. 이쪽과 저쪽 사이를 고요히 흐르는 강물 때문일까. 한강이 내뿜는 압도감 대신 작은 도시의 귀여움이 느껴진다.

 

순천에서 나고 자랄 미마 상상해본다. 서울보다는 바다와 지리산에  가까운 이곳에서, 한국인 아빠와 영국인 엄마 밑에서 자랄 아이 앞엔 과연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평생을 2.3m 층고의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와는 달리, 2층짜리 주택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놀며 자랄 미마에게 ‘이란 매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집을 제집 마냥 기웃거리며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뛰어놀 미마 입에서 과연 어떤 말들이 튀어나올지도 궁금하다. “ 이름은 미마랑께요하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전라도 사투리 맞나?), 영어는 엄마를 닮아 영국식 발음으로 구사하는 희한한 잡종이  아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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