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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Sep 26. 2021

태교여행은 개나 줘

임신 제15-16주

임신 후의 여행은 수렵채집인의 삶과 비슷하다.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먹을  찾는  할애한다. 아내가 외국인이고 내가 채식을 하는 우리 부부는 가히 재앙적인 조합이다. ‘ 뚝배기 하실래예수준으로 한국 음식을  먹던 아내지만, 임신 후엔 맵고  음식을 전혀 입에  댄다. 외식 선택지를 넓히고자 채식을 하던 내가 거의 육식인으로 탈바꿈했음에도, 임신 전보다 끼니 고민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우리는 이번 추석 연휴를 맞아 순천에 왔다. 출발 전날 아내는 장장 4시간에 걸쳐 건포도, 호박씨, 귀리를 잔뜩 넣은 에너지바를 만들었다. 객지에서, 특히 연휴 동안 아침거리를 못 구하면 큰일이니 아예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야 아침에 부스스한 차림으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바나나로 대충 때워도 되고, 정 먹을 게 없으면 한 끼 굶어도 된다. 하지만 이는 나에게만 허락된 사치다. 아내에게 끼니를 거르는 일은 꽤 치명적이다. 임신 후 아내는 식사 때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극도로 불안해한다. 카페인이나 니코틴 금단 현상 같다랄까.


임신 전에는 각자 가방을 메고 여행을 했다. 지금은 나 혼자만 가방을 메고, 내 가방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내 가방 안엔 늘 아내의 물통, 돗자리, 과자가 구비되어 있다. 호텔 스낵바처럼 물통은 항상 차 있어야 하며, 과자도 떨어져선 안 된다. 돗자리는 쉴 곳이 마땅찮을 때 아내가 누울 곳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식당을 찾을 때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먼저 반경 4km 안에 맵고 짜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는지 알아본다. 4km는 아내가 멀미 없이 택시로 이동할 수 있는 최대거리다. 그다음 식당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문 열었는지를 확인한 뒤 브레이크타임 시간을 물어본다. 괜히 배짱부려 갔는데 브레이크타임이면 그땐 고생길 시작이다. 식사 때가 늦어지면 아내는 기름 없는 엔진처럼 시동이 꺼진다. 이때도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뛰어가 초콜릿을 사 와 먹여주면 다음 식당까지 이동할 에너지를 회복한다.


식당에 도착해서도 긴장을 끈을 놓긴 이르다. 정확히는 주문이 실패했을 때가 문제다. 임신 전 같았으면 여기 다신 오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각자 시킨 음식을 빨리 먹어 치우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입맛이 훨씬 예민해진 지금 아내는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 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주문이 실패하고 내 주문이 성공했을 때, 아내는 내가 시킨 걸 먹고 난 아내의 실패작을 처리한다.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이틀 전 아내가 시킨 브런치 메뉴엔 분명히 ‘서니사이드업’(반숙 후라이)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식탁 위에 올라온 건 스크램블드에그였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메뉴가 바뀌었는데 메뉴판에 아직 반영이 안 된 것 같다는 어수룩한 대답만 돌아왔다. 깨작깨작하는 아내에게 내 햄버거를 먹으라고 하고 내가 아내의 스크램블드에그를 먹었다.


같은 계란인데 그렇게 까다롭게 굴 일이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임신 전엔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말하겠다. 하지만 임신 후 오락가락하는 입맛에 휘둘리는 아내를 지켜본 결과, 서니사이드업을 시켰는데 스크램블드에그를 주는 것은 마치 뉴욕치즈케이크를 시켰는데 신당동떡볶이를 주는 것만큼이나 좌절스러운 일이다. 전자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후자는 내가 입에 댈 수조차 없는 음식이다. 일진이 좋은 날은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하루치 스트레스를 이미 안고 있다면 짜증이 솟구친다. 특히 열심히 네이버지도를 뒤져 전화까지 해서 찾아온 곳이라면 그 짜증은 배가 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릴 힘들게 한 또 한 가지는 내 걸음걸이다. 난 짧은 다리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가 빠른 편이다. 항상 저 멀리 앞서가는 아빠를 보며 자라서일까. 아빠는 아마 가장으로써 가족이 따라올 길을 자신이 잘 닦아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이 개척정신은 늘 얼마의 불만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뒷모습에 대고 함께여도 함께인 게 아니라며 탄식하곤 했다. 난 절대 커서 저러지 말아야지 했지만, 결국 아빠를 똑 닮아버렸다. 나 역시 지금 아내와 나란히 걷는 걸 잘 못 한다. 항상 두어 걸음 앞서있다가, 옆에 안 보인다 싶으면 의식적으로 보폭을 줄여 아내와 속도를 맞춘다. 이마저도 스스로 알아차리면 다행이지 “니 뒷통수에 대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에 뒷골이 서늘해져야 멈춰 설 때도 있다. 참 몹쓸 버릇이다.


임신 전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아내의 배가 불러오면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아내의 걸음걸이는 더욱더 느려졌고, 이에 맞추려니 내가 거의 걷기를 포기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차라리 걷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느끼며 명상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물론 아내 입장에서도 기가 찰 노릇이다.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발은 퉁퉁 붓고 등짝은 찌릿찌릿한데, 남편이라는 놈은 옆에서 길동무는 못 해줄망정 뭐가 그리 바쁜지 멀찍이 앞서가니 안 미울 수가 없다. 사실 시비를 따질 것도 없이 이건 내가 잘못했다. 나야 걸음걸이를 내 마음대로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지만, 아내는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족히 2m는 앞서 걸었던 아빠에 비해 두어 걸음이면 한 세대 안에 많이 나아진 거다. 내 자식 세대에는 이 몹쓸 걸음걸이의 대가 끊기기를 기대해본다.


임신 후의 여행은 분명히 임신 전의 여행과는 다르다. 여행 죽은 여전히  맞는데, 임신과 함께 찾아온 변화를 여행 중에 극복해야 하는 것이 변수다. 임신  아내는 모든 면에서 약자가 되었고,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맞춰야 한다. 만약 연애 관계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춘다면 그건 기울어진 관계요, 건강하지 않은 관계다. 하지만  원칙은 임신 중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유는 아내 역시 일방적으로 자신을 맞추기 때문이다. 단지  대상이 남편이 아닌  속의 아이일 뿐이다. 아이가 누워라 하면 눕고, 먹으라 하면 먹고, 싸라 하면 싸야 한다. 결국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태아에게 맞추다 보니,    마음대로 못하는  매한가지다. 이때 서로의 애씀을 헤아리며 전우애를 꽃피우거나, 혼자만 희생한다고 생각하여 섭섭해하거나, 선택지는 크게  가지다.  경우 후자를 거쳐 전자로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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