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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May 22. 2021

어떤 억만장자의 조언

어떤 억만장자가 학생들과 사회초년생들에게 인생 조언을 주는 유튜브 영상을 봤다. 요지는 대략 이랬다. 성공하고 싶다면 코딩, 통계, 커뮤니케이션 이 세 가지를 공부해야 한다고. 코딩은 기계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필요하고, 통계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용하고 유익한 정보를 걸러내기 위해 필요하고,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이들과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댓글도 이 조언에 크게 동감하는 듯했다. 이게 우리의 미래라고, 이런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근데 난 이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난 내 업계에서 한 획을 그은 억만장자도 아니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회초년생 나부랭이이다. 그렇지만 이 조언은 내게 굉장히 위험한 발언처럼 들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기계와 소통하며 방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 뭔가 께름칙하다. 디스토피아 소설 같다. 내가 너무 순진한 건가? 그렇다면 코딩을 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사람들의 퇴근 후 삶을 채우는 건 누가 하나? 이들이 퇴근길에 들을 음악은 누가 만들고, 이들이 주말에 읽을 판타지 소설은 누가 쓰며, 이들이 여행지에서 관람할 갤러리의 그림은 누가 그리고, 이들이 마실 드립커피는 누가 내리나?


진로의 폭이 넓을수록, 개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을수록 좋은 사회다.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득이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 전체의 관용지수가 높아지고, 더 많은 창작과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대학에서 경제학과의 덩치만 비대해지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만큼 창작과 융합이 줄어든다는 징표이다.


1840년대 아일랜드 전역에서 단일한 품종의 감자만을 심은 결과 감자잎마름병이 확산되면서 100만 명이 죽었다. 단일재배는 토양을 훼손하고 자원을 낭비하며 질병에 취약하다. 이 억만장자는 인간의 단일재배를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종재배다. 프로그래머와 통계학자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들이지만 이들과 더불어 사회를 풍성하게 만들 사람들 또한 필요하다. 고전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현대인들에게 전해줄 철학자, 사회문제를 재치와 유머로 승화시킬 코미디언,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심리학자가 그들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지 않고 문송해 하지도 않으며 생겨먹은 대로 자신의 재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종재배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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