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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Mar 04. 2016

원기소

한 알밖에 줄 게 없네만 같이 먹고 힘을 내세!

자네가 지난 안부 편지에 “하루하루 어찌 사는지 모르겠네... 얼마나 수양을 더 해야 할지...  남은 인생 제대로 살다 갈 것인가?”라고 답한 것을 보았을 때 바로 대꾸를 해 주고 싶었지만, 나도 기진한 처지에 남은 원기소 몇 알을 가지고 자네의 기를 살려줄 엄두가 나지 않았네. 


가족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도 긍지를 갖지 못하며, 삶에 대해서도 낙천적이 아닌 우리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쉽게 털어내는 이 얘기에 앞서 우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애도와 서운함에 대한 변명부터 해야겠네. 자네가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원두커피도 제 때 사드리지 못했다 하는데, 나도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님께 못 해 드린 것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돌아가신 아버님께 느끼는 회한이 가슴에 와닿네.


못 해 준 것을 당연하다고 변명하지 않는 것만도 칭찬받을 일이네. 이런 후회의 감정이 있어야, 우리 인생이 더 멋있게 짜지지. 대학교수인 한 친구도 자기 월급에는 손도 못 데고 부수입으로 겨우 용돈을 쓴다 하네. 그게 오랜만에 찾아온 나에게 융숭한 대접을 못 하는 데 대한 변명일 테지만, 우리 세대의 가장들은 대부분 넉넉한 수입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들의 주머니는 비어 있으니, 누구에게 마음대로 해 주고 싶어도 다 해 줄 수가 없네.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몇몇 빼고는 대다수가 낙오자인데, 그들에게는 인생의 성숙기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열매마저도 부실하게 달려 있네. 외적으로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자책하고, 안으로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대접을 못 받고 사니, 여기저기에 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네.


하지만 이제 겨우 오십 넘었네. 비록 자신을 위해 이룬 것이나 남이 기려 줄 업적이 없어도 슬퍼하지 말고, 앞으로 크게 성취할 일이 없더라도, 살아온 여정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더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세. 현실이 좀 어렵긴 하지만 의지만 있으면 좋은 기회는 또 잡을 수 있으니, 자기 계발에 힘쓰면서 스스로를 위해 변명하고 위로도 하며 자신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네. 싸움터에서는 사기가 중요하니까.


나는 “부모님께는 기대하신 만큼의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이 미안하지만,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고 변명하고, "불행했던 날들보다도 행복했던 날들이 더 많았다”고 자위하며 스스로를 응원 하네만, 이런 나에 비해 경제활동을 위해 훨씬 더 바쁘게 살고 있는 자네는 아주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네. 한가하게 잡생각할 시간 없는 사람들이 힘겹게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마저 성과와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의 모든 고민과 노력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네.


너무 보이는 결과에만 가치를 두지 말고, 열심히 길을 가는 것에 긍지를 가지며, 하는 일에 기대만큼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세. "하루하루 어찌 사는지... 제대로 살다 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단지 지극히 겸손한 50대가 담배 연기처럼 한 번 내뿜으면 사라져 버리는 순간의 푸념일 뿐이네.


- 2014년 5월 11일, 원기소 한 알로 버티기가 어렵네만 같이 응원하며 나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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