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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Jan 06. 2016

여장부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여자의 일생을 다룬 영화 이야기

겨울 가고 또 봄이 찾아왔는데 '봄'의 의미가 뭐지?

- 봄은 본다는 뜻이야.

뭘 보는데?

- 영화를 보지.

어떤 영화?

- ‘철의 여인(Iron Lady)’!


가끔씩 폭발의 굉음과 군중의 야유가 들리고 무장 경찰의 강력 진압에 시민들이 짓밟히는 장면이 나오는 이 영화는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영국의 정치가 마가렛 대처의 삶을 그리고 있다.


‘철의 여인’이란, 영국 보수당의 당수였던 시절에 마가렛 대처가 소련의 공산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자, '철의 장막'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소련이 공산당 기관지인 ‘붉은 별’에서 대처를 비꼬아 붙여준 별명이다. 


마가렛 대처의 아버지는 소매상을 운영하며 정치에 입문하였고, 그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옥스퍼드대학 화학과에 재학하던 중에 학생 정치 클럽의 리더가 된다. 졸업 후에는 플라스틱 회사에 취업하지만,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여 자격증을 얻고 여성들이 발들이기 어려웠던 정계로 진출한다. 초보 정치가의 길은 어려웠으나 부유한 남편의 후원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완고하게 자신의 신념과 이상에 따라 유망한 정치인의 길을 간다.


대처는 수상이 되자, 영국병이라는 고질적인 경제사정 악화로 인해 채무국으로 전락한 영국을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아서 자생력을 키우는 '신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편다. 이에 따라 부실한 국영기업들을 사기업으로 전환하고, 광산업 등 채산성 없는 노동집약 산업과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지원도 축소한다. 이는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저소득층으로부터도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적자에 헤매던 기업들을 결국은 흑자 기업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하여 아르헨티나와 치른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국가의 위상을 회복한다. 이러한 업적으로 대처는 세 번 연속으로 수상 직을 맡아 영국 역사상 윈스턴 처칠에 버금가는 위대한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존경과 동시에 혐오를 받은 ‘철의 여인’도 결국은 정계를 떠난다. 늘 든든한 기둥처럼 의지가 되었던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된 그녀는 이제 치매에 시달리는 늙은 할머니일 뿐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늘 정정하시던 장모님께서도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와서 판단력을 잃었기 때문에 식당에서도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을 못 하셨다. 처음에는 마치 멀쩡하던 컴퓨터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기계는 돌아가는데 출력은 엉뚱하게 나온다. 그러다가 기계도 고장 나고 정신도 주체를 못 한다. 최후에는 외부와의 소통이 안되고 내부와의 연락도 끊어져서 숨을 멈춘다. 이런 슬픈 과정을 옆에서 본 나에게 치매의 의미는 세계와의 결별이고 존재로부터의 단절이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메릴스트립(Meryl Streep)이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녀는 딱딱한 웃음과 방향을 잃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하는데,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의 표정도 꽤나 심각하다. 끝 장면까지 한 번도 웃지 않고 우울하게 화면을 바라본 나도 같이 온 사람과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이 영화가 나의 관심을 끈 이유는 독재의 그늘 아래서 소시민으로 살았던 나의 청년 시절이 대처가 수상에 취임해서 세계의 주목을 모으며, 굳건한 ‘철의 여인’으로 군림했던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에 과거를 되돌아보니, 최루 가스에 눈물로 범벅이 된 성난 얼굴로 돌을 던지던 날부터 알뜰하게 월급을 모으며 살았던 옛 일들이 추억 속에서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영화 얘기를 한 줄 더하려고 키보드를 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이제 곧 4월이 오면 들판에 아지랑이가 피고, 찬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만개할 것인데, 산으로 들로 놀러 가야지, 어떻게 답답한 영화관에 가서 딱딱하고 우울한 영화를 보고 있을 수 있겠냐?


화창한 봄날에는 밖에 나가 꽃 보며 노는 게 더 좋지. 안 그래?


그런데 ‘아웃 오브 아프리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 메릴스트립이 나오는 영화는 뇌리에 슬픈 여운을 남기지만 기억에 떠올릴 때마다 가슴속에 꽃을 던져 준단다.


영화를 보든지,

야외로 놀러 가든지,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왔으니,

가슴에 꽃을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 2012년 3월 20일 봄을 맞으며... 천문학적 봄은 내일(3월 21일 춘분)이 아니라 오늘부터 래.


참고: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사업을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돈을 풀어서 대공황을 극복한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는 1980년대에 들어서,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신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돌아선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1925 - 2013): 국회의원(1959 - 70), 교육부 장관(1970 - 74), 보수당 당수(1975 - 79), 영국 수상(1979 - 90). 대처는 최초로 수상이 된 여자로서라기보다는 최초로 수상이 된 화학자라는 자부심이 더 컸단다.


영화나 소설 등의 주요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사람을 영어로 스포일러(spoiler)라고 하는데, 스포일러가 주는 정보는 영화나 소설을 감상할 때 흥을 깨뜨릴 수 있고, 내용이 이미 노출된 이야기는 상업적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웹 사이트에서는 이런 글이 올라오는 것을 금한다. 이 영화에 관한 내용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더 밝혀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되도록 영화 자체의 내용보다는 대처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요약했다. 스포일러는 한국어로 '미리니름'이라 하기도 하는데, 국립국어원이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서는 '영화헤살꾼(헤살: 일을 짓궂게 훼방하는 짓)'이 순화 용어로 뽑혔단다. 하지만 일반화된 용어는 아니라고 한다.


- 여장부 본문 끝 -




- @해가웃는일요일님의 글에 대한 소견과 참고자료 -


1. 프랑스 왕 샤를 6세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는데, 왕비 이자보와 영국 왕 헨리 5세가 1420년에 트루아조약을 체결해서, 샤를 6세의 사후에 영국의 왕 헨리 5세와 그의 계승자가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왕위를 차지하도록 결정합니다. 당시 왕세자(Dauphin: 도팽)였던 샤를은 샤를 6세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지만, 1422년 샤를 6세가 죽자 아르마냑파와 왕당파의 지지로 프랑스의 왕인 샤를 7세가 됩니다. 이때를 기해서 그의 도팽 칭호는 없어지고, 아들인 루이가 1423년부터 도팽이 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왕세자가 왕이 되면 세자라는 칭호가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Dauphin은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1세는 왕위를 계승한 사촌이었기 때문에 도팽이라 불리지 않았습니다.


요약하면 쟌다르크가 시농 성에 가서 샤를을 만난 때는 1429년인데, 샤를은 1417년부터 1422년까지 도팽, 1422년 10월 이후에는 왕이 됩니다. 물론 공식적인 왕의 축성식은 잔다르크가 랭스(Reims)를 탈환하고 나서 1429년에 이루어지지만 당시의 그의 칭호는 왕 샤를 7세입니다. 쟌다르크는 '왕 도팽 샤를'이 아니라 '왕 샤를 7세'를 만났다고 하면 문제가 없겠습니다.


도팽(Dauphin)에 대한 자료 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Dauphin_(titre)


2. 쟌다르크가 샤를 7세를 도와 오를레앙을 탈환하고 역대 제왕들과 같이 랭스에서 국왕의 축성식(성당에서 왕의 이마 등 신체 부위에 기름을 발라 성스럽게 하는 의식)을 올리도록 했지만, 샤를 7세는 전세가 유리해 지자 영국군과 싸우기보다는 평화조약으로 전쟁을 종결하려 애씁니다. 반면 쟌다르크는 영국군을 공격해서 무찌를 것을 주장하고 왕명을 무시하고 나가 싸우다가 1430년에 적군이었던 부르고뉴 군의 포로가 됩니다.


부르고뉴 공국은 그녀를 영국에 1만 파운드의 몸 값을 받고 팔아서,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보베(Beaubais)의 대주교에게 넘겨집니다. 결국 샤를 7세에게는 이제 귀챦은 존재가 된 쟌다르크가 영국과 부르고뉴 연합군의 마녀재판(신학자가 심문해 이단자임을 밝히는 종교재판)에 의해 영국 점령하에 있던 루앙(Rouen)에서 화형 당하는 것을 묵과하게 되죠.


전쟁을 싸움으로 종식시키기보다는 평화조약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샤를 7세는 쟌다르크 화형 후에 정비된 군대를 동원해 영국군과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현대적인 국가 개념이 없었던 그 시기에 영국과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의 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쟌다르크는 '아군의 손에'가 아니라 '적의 손에' 죽은 거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자료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복잡한 백년전쟁 자료를 참조했는데, 거기에는 위키피디아와 정평 있는 프랑스어 백과사전 라루스도 포함됩니다. 제가 글을 읽을 때마다 무식한 댓글을 많이 썼지만, 그들 뒤에는 숨은 노력이 있어요. '젊은이는 반항해야 된다'나 뭐래나, 그래서 반항적인 내용도 있지만 동기가 순진한 선의의 댓글입니다. 


- 지난 토요일에 본 모딜리아니 작품전시회의 그림 -

오른쪽 초상화는 피카소가 모딜리아니한테 사서 늘 자기 아틀리에에 걸어 놓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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