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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Dec 31. 2015

경찬가(經讚歌)

우울한 경제학에도 봄은 오는가?

자네 제자들이 석박사 학위 얻으려고 나이 들어 취직도 안 하고 경제이론만 파헤치는데, 돈 나올 구멍을 못 찾아 따르는 여자가 없어 생리적 욕구 충족은 고사하고 종족 보존의 의무마저 포기한 채 시들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경제학이 예로부터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 불린 이유를 실감했네.


사회과학의 여왕인 경제학의 심오한 이론들을 캐내기 위해 학문에 전념하는 똘똘한 청년들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공주들이 없는 이유는 산삼처럼 발견하면 큰돈이 되는 고급 경제이론은 고수들이 맨 땅에 싹도 보이지 않게 뿌리째 다 파가서 이제는 숨은 노다지 이론을 찾아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영리한 공주들이 다 알기 때문이니, 어떤 공주가 썩은 침목 위에 녹슬어 헐렁거리는 철길을 보고서도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릴 것인가?


일곱 장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도 바닥에 깔린 두 개의 콩알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진짜 공주는 연한 살이 쿡쿡 찔리는 가난한 경제학도의 거친 잠자리에 쉽게 들어오지 않으련만, 한 제자가 자네가 들려준 나의 사랑이야기에 용기를 얻어 헤어졌던 공주를 다시 만나 결혼하여 외국으로 갔다니, 웬 동화인가? 내가 만리를 멀다 않고 길 떠나던 시절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들이 키스해 일으켜 줄 왕자를 기다리며 단잠을 자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 깨어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잠을 푹 자던 공주가 있었다니! 아마 그 공주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약물 사고의 희생자였을 거야.


어쨌든 제자가 노총각 면하고 결혼했다니 축복해 주고 싶네. 하지만, 앞으로 경제학을 열심히 파다가 삽질 멈추려는 자가 또 있거든 이 말도 해 주게. 내가 한국 떠날 때는 손가방에 외국 공주에게서 받은 육백 구십 통의 편지를 들고 갔는데, 그 편지들은 내가 보낸 칠백 오십 통과 함께 우리 책장에서 함께 나눌 수 없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길었던지를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또 우리가 처음 만나서 결혼하기까지 11년이 걸렸으며, 결혼은 첫 골이지 결승 골이 아니라고...


- 2012년 3월 26일, 마님이 부르시니 이만...


경찬가(經讚歌)를 불러주마 –경제학을 찬양함


지난 메일에 신성한 경제학 연구를 삽질이라 일컬으며 경시(輕視)했으니 경찬(經讚)도 좀 해야겠지?


1. 경제 위기(危機)는 경제학 연구의 호기(好機)


경제학도가 가는 길을 녹슬어 헐렁거리는 철길에 비유한 것부터 다시 미시적으로 잘 뜯어보면, 오르락내리락 순환을 거듭해 온 경기가 위기에 이른 것이 경제학자에게는 좋은 기회야.


땅 속 깊은 곳에서 사상초유의 지각변동으로 화산이 폭발하고 대지진이 일어나면, 지질학을 경시하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달려가 지질학자의 고견에 귀를 기울이지. 바로 그때가 지질학자들에게는 축제의 불꽃이 터지는 시점이야. 역사에도 없는 먼 과거에 왕성했던 지각운동을 눈으로 직접 보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까.


마찬가지로 경제현황이 낡아빠진 이론의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흔들려 모두 안절부절못할 때, 경제학자는 역사를 통해서만 배운 대공황을 현실로 보면서 상황에 대처할 이론을 모색해 적용해 볼 수 있으니, 암울한 경기침체의 늪이야말로 산뜻한 경제이론들이 연꽃처럼 피어 나올 곳이 아닌가?


2. 신성연애(神聖戀愛)


우신예찬(愚神禮讚: Moriae Encomium)이란 책으로 유명한 중세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 Desiderius: 1466? - 1536)는 유토피아(Utopia)의 저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 - 1535) 등 친구들에게 3천 통에 달하는 편지를 썼지. 그것들을 한데 묶어서 전시한 박물관에 가서 들춰 보니, 그중에는 두 세줄 갈겨쓴 낙서도 있고 영수증 같은 것도 있던데, 연애편지는 한 장도 없더라.


세상에 태어나서 연애편지 한 장 안 써 보고도 결혼한 사람들이 많지만, 천 통쯤 쓴 사람은 얼마 안 될 걸. 누가 기내 수화물로 연애편지만 들고 갔다면 이 사람이 공부하러 떠난 건지 연애하러 간 건지 분간이 안 되겠지만, 다 하고 여전히 코가 빨갛게 살아 있다네.


지금도 편지의 주인공을 마님으로 모시고 붙잡혀 사는데, 아들을 빼앗긴 우리 어머니는 그게 '신성한 연애'가 잘 못 빠진 결과라고 늘 탄식하셨지.


경맹(經盲)이 경제학 교수님께 경학을 설하였으니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이나, 오늘이 4월 1일 만우절이라 농담 좀 해 본 거야. 자네가 옆에 있으면 할 말이 없더라도 맥주 한 잔 들면서 피부에 닿는 느낌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좀 아쉽네. 그럴 날이 27년 후에는 꼭 다시 오겠지?


- 2012년 4월 1일, 만우절(萬友節)에 유모어(有某語)로 쓴 것을 국어로 번역하니 개가 다 웃겠네!


매거진: 다시 쓴 편지 /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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