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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Dec 31. 2018

금상화(錦上花)

성취한 그대의 인생을 더욱 우아하게 꾸미는 보이지 않는 꽃

집에 돌아가서 연락한다더니 한동안 소식이 없어 걱정했네만, 전화해 무슨 불상사를 접하거나 쓸데없는 조바심 비치기 민망하여 그냥 좋은 일 으리라 믿 기원했네. 하지만 왠지 석연찮은 기분이 들어 자네 이름 쳐서 인터넷을 검색하니 내가 몰랐던 경력과 성취 내역이 화면 가득, 역시 자네는 회사를 끌고 온 중요 인물이야. 내 그걸 알기에 전부터 조카에게도 같이 일하는 자네를 길잡이 삼아 앞으로 가라 했었지.


오늘 기다리던 답장 받고 반가워 얼른 보니 중역인 자네가 회사에 나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집에서는 게으름 피우며 삶의 변화를 원하는데 그것도 어렵다는 푸념이 진하게 번져있구먼.

 

나 역시 늘 어제 같은 사람인 걸 느끼므로 새롭게 변화하고 싶지만, 내적 성품외적  변화는 일시에 사상과 관습을 뒤집어엎는 혁명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네. 단기간에 새 인간 되는 것은 구두쇠 스크루우지 영감이 갑자기 남을 위해 돈지 여는 처럼 극적 상황일 뿐이지 실제로는 그런 예가 드물. 변화하고 싶으면 이제부터 조금씩 바꾸면서 시간 많이 흐른 후 다시 평가해 보세. ‘인생 잘 살았노라’ 고별인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이나 자네나 자수성가하여 낯선 외국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어려운  수행하면서 자리 잡고 사는 것을 생각하면 늘 존경스럽네. 하지만 굳건한 용사도 때로는 지쳐서 쉬고 싶을 때가 있지.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이제까지 인생길 멀리 힘차게 달려왔으니 가끔씩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옆에 와서 위로해 주는 사람 있으면 좋겠지? 비탈길 내려갈 때 요긴한 지팡이처럼 손에 꽉 쥐고 눌러 몸을 가눌 수 있는 한가닥의 지지대! 그게 아내고 자식이면 참 좋겠네. 거기에 친구도 한 명쯤 끼어 받쳐준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금상첨화(錦: 비단 上: 위 添: 더하다 花: 꽃)는 북송(北宋)의 문장가 왕안석(王安石)이 좋은 술 마시는데 고운 노래가 마치 비단에 꽃을 더하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는데, 어디 곱게 짠 고급 비단 같은 자네 인생에 꽃 수를 놓아 볼까? 답장에 어울리게 실을 잘 골라 한뜸 한뜸 바늘을 꽂아야겠는데...


 째 꽃은 처갓집의 어느 사장님 이야기로 꾸미기로 하지.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공장을 확장해 사업을 탄탄하게 운영해서 수년 전에 둘째 아들에게 사업 비법을 전수하고 퇴직해 일 년에 반 이상은 아내와 여행하느라 집을 비우고 있네. 하지만, 회사가 잘 운영되기를 걱정하여 여행하지 않을 때는 공장에 가서 자재 정리하고, 아들이 휴가 떠난 동안에대리 사장을 맡고 있. 집에 있으면 늘 공장 생 심경이 불안한 그에게 요새 아내가 불평을 늘어놓아도 그는 옛 자리를 지키러 아들 휴가 중인 연말에도 스스로 도시락 챙겨 나가 일하네. 그가 집에 있기 불편한 것은 중책을 맡고 해왔던 활동을 통해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지. 그건 큰일을 한 사람들 특히 부왕이나 은퇴한 기업 총수의 습성인데, 자네도 마찬가지 부류일 거야. 집보다 회사에서 안위를 찾으니까.


 째로 수놓을 꽃은 ‘변화(變化)’야. 이건 풀(化=花-艸)이 아니므로 추억을 엮어 넣어야 꽃 모양이 나올 것 같네. 옛날에 봉원사에서 마님 만났던 그 초가을 하늘 푸르던 날에 우리는 함께 온 브라이언과 식사하고 대학로의 오감도란 찻집에 가서 이야기도 많이 했었지. 날 오후 내가 절에서 불교신문사 기자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부처님이 이런 말을 했다 하였네 -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정진하라!"

 

그때 ‘정진(精進)'의 뜻을 나는 단지 꾸준히 나아가는 것쯤으로만 알았지. 불교 용어로 정진이란 팔정(八正道)의 여섯 번째로 속된 생각을 버리고 선행을 쌓으며 불도 수행하는 거야. 불가에 어느 고승이 득도하기 위해 10년을 토굴에서 용맹정진(勇猛精進)했다는 기사 읽어 봤어? 세상 등지고 자신과도 담을 쌓아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는 그 고행은 우리가 따라 하기 힘들어. 하지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벌써 한 차원 높은 인간으로 변화한 거지. 시작으로 일단 부와 명성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생활에 요긴한 것만 취하는 걸 연습해보세. 그러다가 욕심이 사라지면 변화도 필요 없을지 몰라. 그럼 그 상태로 사는데 만족하고 인생 끝까지 줄곧 나가면 그게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 이상의 경지 아닐까?


 째로 수놓을 것은 새와 벌레야. 꽃 옆에 벌도 있고 나비와 새도 날고 있으면  보기 좋지? 꽃이 마음이라면 새와 벌레는 움직임! 바로 우리의 행동이야. 마음이 정해도 행위가 서툴면 격에 맞지 않. 효심이라든가 충성심 또는 사랑, 모두가 마음속에 아무리 있어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아. 부모님께 몸으로 효행하고 직장과 나라 위해 땀 흘리고 아내와 자식도 어루만지고 대화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네.


 째로 수를 놓을 게 뭘까? 보이지 않는데... '휴식'이네! 이걸 동작의 멈춤으로 착각하면 치명적인 일이 일어나지. 휴식이라고 숨 쉬는 동작도 멈추면 살 수가 없어. 어떤 노래 악보에 쉼표가 하나도 없는데, 가수가 악보대로 숨 안 쉬고 부르다가는 노래 마치기 전에 질식해 쓰러질 거야. 우리 인생길에도 이런 고약한 악보처럼 어디서 쉬라는 지침이 없지. 알아서 적당히 쉬는 건 모든 동식물에겐 생명유지 필수조건이야. 이제 적게 남은 우리 인생에 쉼표를 잘 끼워 붙여 부르 편안한 노래로 만들어 보세.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꽃으로 인생을 조율하여 삶을 우아하게 장식하자고! 나도 이제 여기서 수를 그만 놓고 쉬어야겠네. 마님 기다리시니까.


자네 소식 반가워 좀 길게 적었는데, 보여줄 건 단지 가족과 함께 즐겁게 잘 쉬고 활력을 얻기 바라는 내 마음뿐이야. 사모님과 아이들 모두 즐거운 연말과 희망찬 새해 맞으시길 기원하네.


-2018년 12월 28일, 내 인생 어디에 꽃을 수놓을까? 바늘에 실을 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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