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을 가르치신 음악 선생님
총각이셨던 키다리 음악 선생님께서는 취미로 물리학을 공부하셨는데, 음악 시간만 되면 우리에게 간 밤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자랑을 많이 하셨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당시에는 과학 과목이 물상(물상과학(物象科學, physical science) -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 비생명과학)과 생물로 나뉘어 있어서, 물리학은 당연히 물상 선생 몫이었다. 하지만 취미에 확 빠져 전공을 망각하신 음악 선생님이 드디어 물상 무서운 줄 모르시고 모험을 감행하셨다.
한 번은 칠판에 '일 = 힘x거리'라는 공식을 써 놓으시고, "인부가 하루 종일 무거운 바윗돌을 치우려고, 힘써 밀었지만 꼼짝도 안 했다. 저녁에 일당을 받으러 가니, 관리인은 '일 = 힘x0(거리) = 0'이니까, 한 일이 없다고 한 푼도 안 줬다"고 하셨다. 얼떨떨, 멍청히 듣고 있던 우리에게 선생님께서는 "'거리 = 속도x시간'이므로, '일 = 힘x속도(0)x시간', 고로 종일 힘만 쓴 인부는 결국 바위가 안 움직였기(속도= 0) 때문에, 일을 안 한 것이 된다"고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우리는 음악 선생님의 대단한 과학 지식에 탄복했고, 감동을 받으신 선생님은 음악 대신 밤 잠 설치며(이것이 총각이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나는 결혼 후에야 알게 됐다) 홀로 익히신 물리학을 더욱더 열심히 가르치셨다.
수업 첫날, 걸리면 '최'고로 '재수'가 없다고 당신의 이름을 자상하게 해명해 주신 물상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꼭 몇 녀석을 골라 질문을 던지셨다.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니시며, 걸릴까 봐 쫄아 있는 녀석의 어깨를 치시면, 자동으로 일어나서 질문을 받는다.
'고기압과 날씨?' 늘 같은 질문이다. 답은 쉽다. 꼴찌도 여러 번 당해서 그걸 술술 외우고 다닐 정도다. 하지만 질문을 받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입이 얼어서 혀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처럼 물상 선생을 보면 벌써 돌이 되는 거다.
마비된 애들은 물상 선생이 늘 들고 다니는 지휘봉에 박박 깎은 머리 통이 찍혀, 화산이 두 개씩 분출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다. 물상 시간마다 이렇게 수 없이 폭격을 당해 온 우리는 질문도 없고, 제 때 박수만 치면 되는 음악 선생님의 물리학 수업을 훨씬 좋아했다.
언젠가 한 번은 선생님이 밤새우시다가 코피가 터져서, 결근하시는 바람에 '기다리던 음악 시간'에 짧고 통통하신 땅따리 수학 선생님께서 대신 들어오셨다. 지겨운 수학을 또 해? 선생님께서는 늘 가지고 다니시던 큰 삼각자를 교탁 위에 놓으시고, 풍금 앞에 앉으셔서 건반을 두드리시며, '반짝반짝 작은 별'을 영어('Thinkle Thinkle Little Star')로 부르시는 것이었다. 스타 탄생! 수학 선생님이 음악은 물론 영어까지? 수학선생님의 인기가 한 번에 반짝 떴다. 그날로 한 화장실 문 안에는 이런 낙서가 적혔다.
키다리와 땅따리가 싸우면 누가 이겨?
우리들 사이에는 수학선생님이 큰 일을 치긴 했지만, 처음부터 음악 선생 쪽이 이긴다는 소리가 더 컸다. 하지만 상위권 애들이 영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우겨서, 그럭저럭 하는 애들도 모두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니들은 물상 무서운 줄 아직도 모르냐? 나는 방과 후 화장실로 가서 상길이가 망보는 동안 낙서 밑에 이렇게 적었다.
몰라서 묻냐? 교내에서 싸우다 걸려서 물상 손에 둘 다 죽지!
다음 날 내가 쓴 답글 아래에는 '맞데이! 맞데이!' 동감 싸인이 많이 적혀있었다. 기분 좋았다. 그런데 상길이 놈이, 바로 물상 시간 시작 전에 나한테 와서 겁을 줬다. 선도부 애들이 화장실에 낙서한 놈들 다 죽인다고 간첩을 풀어놨다는 것이다. 물상 선생도 무섭지만, 교내 깡패들은 훨씬 더 무서웠던 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라, 물상 시간 1분 전에 당장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 주번이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귀퉁이에 쌓아둔 신문지에 물 칠을 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낙서를 지우는데, 종이가 다 떨어졌다. 그때, 으악! 얼굴이 벌게서 등 뒤에 서 계신 물상 선생님! 사지가 마비되고, 입이 떨려서, 비명이 나오려는데, 웬걸! '고, 고, 고기압과 날씨?'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은 대답도 안 하시고, 내가 열어 놓은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시더니 문을 '쾅' 닫으셨다. '끄으응' 힘주는 소리와 '철퍼덕' 무거운 게 한 덩어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었네! 당장 교실로 달려가서, 공책의 첫 장을 뜯어서 종이가 없는 화장실 문 밑으로 밀어 넣고 교실로 재빨리 도망쳤다.
자리에 다시 앉은 순간, 나는 첫 장이 떨어진 공책을 보고 기절했다. 제기랄? 하필이면, 왜 내 이름이 적힌 첫 장을 뜯었지?
이상하게도 그날 처음으로 물상 수업 시간에 질문이 없었다. 겁에 질린 나는 헛 것을 다 보았다. 선생님의 미소였다. 그 후 삼 년 내내 선생님은 나에게는 한 번도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머리에 반창고를 붙인 적 없이 졸업한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피 터지는 물상 시간과는 대조적으로 음악 선생님의 물리학 강의는, 핸드폰은 고사하고 전화도 귀했던 당시에 자식이 음악을 못해서 항의 전화 건 부모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늘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졸업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해서 마친 음악 공부 3년, 결국 우리는 애국가와 교가 등 행사 필수곡만 몇 번 불러 보고, 음악의 기초 이론을 전혀 모른 채, 물리악(物理樂)만 배우고 중학교를 나왔다.
늦게나마 소리 공부를 시작한 나도 이제 음악 선생님처럼 밤 잠 설치며 혼자서 열심히 음악 공부를 하는데, 음악의 기초가 하도 없어서 진도가 안 나간다(속도 = 0, 따라서 밤새워한 일 = 0, 당연한 이 결과에 나는 실망을 참을 수 있지만, 마님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밤만 되면, 그분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한다.
젠장! 그때 음악의 기초를 조금만 제대로 배웠어도, 지금 이 고생 안 하는 건데!
화가 나긴 하지만, 그분을 너무 원망하는 것도 훌륭한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사실 지금 내가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것도, 일찍부터 모든 것을 과학 공식에 넣어서 해석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다 그분의 영향이 컸다. 가령 친구가 "어제 시간이 없어서(시간 = 0), 답장을 못 했다(일 = 0)"고 거짓말을 해도, "어제 네 메일을 받고, 밤 잠 설치며(시간 = 8x60x60 = 28800초), 죽을 힘을 다해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 봤지만(힘 = 죽을 힘), 결국 한 줄도 못 써서(속도 = 0), 답장을 못 보냈다(일 = 0)"고 말한 것으로 정확히 이해한다. 결과(일 = 0)는 같아도, 전자와 같이 쓰면, 아무 노력도 안 한 것 같지만, 후자는 바로 음악 선생님이 예로 든 인부처럼 바위를 움직이진 못 했지만 '대단한 노력'을 한 것을 암시한다.
이런 과학적 논리에 근거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힘들여 쓴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친구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답장을 제 때 못 보냈기 때문에, 종일 힘쓰고도 일당을 못 받은 인부처럼, 실망한 친구의 마음이 아플 것을 더 걱정한다.
너한테 편지 쓸 때, 내가 안부도 묻지 않는 이유를 이제 알겠냐? 네가 대답할 의무 없이 편하게 읽으며,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면, 그 속에 노력하여 편지 쓴 보람이 있는 거다. 답장 못 했다고 미안해하는 대신, 내 편지 한 번 더 읽어 봐라! 안 그러면, '고기압과 날씨?'를 물어볼 거다, 알겠냐?
- 2012년 12월 13일, 어젯밤엔 음악 공부 안 하고 잤는데, 마님이 쌓인 분노를 다 푸셨는지, 일당을 남기시고 장 보러 나가셨다.
표지의 키다리와 땅따리가 죽는 장면은 샤갈 작품 : Le Montreur de marionette (the puppet master)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