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인정이 눈처럼 포근한 곳
세상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다시 왔으니, 기지개 켜고 일어나, 겨울잠 자느라고 빼먹고 지나친 신년인사부터 해야겠는데, 해가 바뀔수록 높고 험해지는 나이 고개 넘는 길에 혹시 엎어져 다친 데 없이 잘 지내시는가?
우리네는 지난 겨울 이상 한파가 몰아쳐 동사자가 속출하던 와중에도 살아남았는데, 십오 년 간 한결같이 몸 바쳐 얼려주던 우리 냉장고가 설월한풍(雪月寒風)에 덜덜 떨다가, 급기야 동작을 멈추고 얼어 죽어서 둘이서 슬픔의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워낙 추워서 창 밖이며 베란다가 모두 대형 냉장고로 변한 덕에, 냉장고에 들어있던 냉동식품들을 버리지 않고 밖에 두고 먹으며, 이 주일 간 새 냉장고님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았지. 새로 오신 냉장고님은 키가 아주 크신 분이라, 멀쩡하던 부엌 가구를 잘라 내는 진통을 치르며, 가신님 자리에 모셔 넣었는데, 그 진상이 우리의 겨울잠 속에서 동분서주의 바쁜 꿈이 되었으니, 내 얘기를 가만히 한 번 들어 보라구!
꿈/= 절약 시대에, 고장 난 냉장고를 뜯어서 수리하는 중에 온도 감지 회로를 교체하려고 공장에 알아보니, 부품값만 새 냉장고 가격의 1/3이 되는 지라, 아예 새것을 사려고, 인터넷과 전문상가들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전과 같은 크기의 냉장고는 시장에서 아주 사라져 버렸더라.
왜냐하면 절전형 냉장고들이 모두 두꺼운 단열재로 싸여 있어서, 옛날 것과 같은 용량을 유지하기 위해 뚱뚱이가 되거나 키다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는데, 외관이나 내부 공간이 섹시한 새 모델을 보고 나니, 낡은 것을 고쳐 쓰려는 알뜰한 생각이 싹 가셔 버리는 것이었어. 게다가 옛날 냉장고는 맵시 있는 신형 냉장고에 비하면, 변덕스럽게 모터를 돌려 전기를 집어삼키는 에너지 괴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가구를 개조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저함 없이 키가 큰 초절전 모델을 주문했지.
마침 추위가 가시고 기온이 영상으로 바뀌는 날에 새 냉장고님이 들어오셔서, 환호하며 부엌의 빈자리에 모셨는데, 정말 가슴 뿌듯하더라. 북극에 살지 않는 한, 아무리 추워도 냉장고 없이는 살지 못하는 우리들은 냉장고의 모터가 몰래 살살 돌아가며 내는 잔잔한 진동 소리에 전율마저 느끼면서, 손을 마주 잡고는 "정말 잘 선택했어. 이제 평생 동안 이 냉장고와 함께 살자구!" 그랬지.
다음날에는 손님이 왔기에 새 냉장고를 보여 주며 우리 '평생의 동반자'라고 자랑을 했는데, 자기는 냉장고를 산지 몇 년도 안 돼서 고장이 났다면서, 근래의 가전제품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장이 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고 하더군. 그 말에 우리의 새 동반자도 머잖아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고, 무거운 '충격파'가 가슴을 쳤지. 그래서 꿈이 확 깨지는 것이었어. =/
아침에 배달된 신문 찾으러 계단을 내려가니,
안개꽃처럼 하얀 눈송이가 천천히 떨어져,
봄기운에 녹은 땅을 눈물로 적시었는데,
오전 내내 쉬지 않고 펄펄 내려와,
이제는 지붕이 하얗게 덮여,
새하얀 겨울 풍경을 보여 주고 있어.
아마도 겨울은 우리 곁을 못내 떠나지 않고,
* ** *** ** 눈처럼 포근한 인정으로 ** *** ** *,
언제 고장 날 지 모르는 우리 냉장고를 감시하고 있나 봐!
온정이 가득 담긴 인사를 인터넷에 실어 보내니 전깃줄 끝에서 눈꽃이 쏟아지겠지?
- 2012년 3월 5일, 꿈 얘기의 진상이 이러하니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보아주게!
고객이 쓰다가 새것을 사도록 하기 위해 일정 기간 후 고장 나거나 구식이 되도록 만든 제품을 영어로는 Product with planned obsolesc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의 기원은 1932년에 버너드 런던이란 분이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소비 촉진의 한 방법으로 제안했단다. 지금 제품들은 이런 개념으로 설계 제작된 것들이 시장에 넘쳐나지. 윈도우즈 버전 345678910만 해도 그래. 소프트웨어도 버전 관리라는 교묘한 수법을 써서 새로 사게 만드는 거야. 전화기 휴대폰 스마트폰 얼마나 오래 쓰냐?
미래의 인간들은 어떨 지도 생각을 해봐야 될 거야. 100세 시대에 사는데, 종래의 개념으로 인간을 만들어 내면 지구가 꽉 차니까, 조만간 태어날 때부터 수명이 정해지는 '모태 시한부 인간' 제도가 생길지도 몰라.
중년의 고개를 넘어온 우리는 이제 늙은 구모델이 되었지만, 연령에 구애받기보다는 유효기간이 명시된 제품이 아니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되네. 구닥다리를 생산하신 구시대 부모님께도 늘 감사하세!
냉장고에 웬 아이들이? 이유가 있네. 우리 강아지가 가끔 냉장고 줄을 빼놓고는 애들 불러서 다 같이 들어가 거기서 피서를 즐기지. 자네도 냉장고 잘 살펴보게 혹시 애들 있나. 진짜 피서법을 알고 싶어? 여길 가봐: 피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