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숨은 얘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ly Jan 02. 2016

피서법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타 죽기 전에 비법을 익혀 두자!

지구 온난화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NASA의 연구원들이 벌써 몇 년 전에 우주관측소에 초강력 적외선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태양계를 비밀리에 샅샅이 조사했는데, 드디어 숨겨진 연구 결과가 어느 동포 과학자의 입을 통해 세간에 밝혀졌다. 태양 중심부에서 핵분열이 일어나... 동방의 아시아와 서방의 유럽에서 두 개의 태양이 지구를 태우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잠을 깼다.  - 꿈에서


봄이 유난히 춥고 비 오는 날이 많았던 올해에는 여름도 시작부터 어둡고 축축하기만 했는데, 요 며칠 구름 깔고 주무시던 늙은 해님이 변덕스럽게 일어나 천지에 불화살을 쏘아대신다. 그 바람에, 길 건너 호숫가 잔디밭에는 화살 맞은 천사들이 블라우스를 풀어헤치고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상처를 드러내고 쓰러져 있다. 이런 호반정경이 멀리서 보면 흐믈흐믈한 것이 몸을 비틀며 살랑살랑 하늘로 올라가는 신기루인데, 가까이 가 보면 촉감이 연하고 향긋한 살냄새를 풍기는 천사들의 영혼이다.


서방의 늙은 해님이 이렇게 화살로 천사를 사냥하기에 바쁘신데, 동방의 젊은 태양은 넘치는 정력으로 뭘 하시려고 인삼 많은 한반도를 통째로 구워 먹고 계실까?


어제 한국에 사는 친구가 살인적인 더위에 고생한다는 소식을 전해줘서 걱정스레 고국의 누님과 통화를 했더니, 인사에 앞서 덥지 않냐고 물으시고는 벌써 스무 날을 불볕더위 속에서 한증하는 통에 몸도 움직이기 싫고, 짜증도 나는데, 거기에 옆구리까지 결린다고 여름을 탓하셨다.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니며 불장난하는 태양이 괘씸하긴 하지만, 동포를 위해 안중근 의사처럼 육혈포로 해치울 수도 없는 일이라, 폭염에 고생하시는 동포들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 피서법 연구 보고서 -


1. 시원한 동네로 피난 간다.


누구나 첫 번째로 생각하는 방법이지만, 피서길 차량에 막혀서 열(熱) 받고, 피서지에 가서도 빈 방은커녕  발 디딜 틈도 없어서 화(火)가 난다. 한마디로 돈 버리고 고생한다.


2. 영화관에 가서 납량특집 공포영화를 본다.


안방극장에서 이미 잡귀신을 워낙 많이 봐서 옛날 귀신은 아무리 봐도 겁이 안 난다. 최신 공포영화는 영화사가 수지가 안 맞는 걸 알기 때문에 제작마저 포기했다. 이건 완전 공상이고 시간 낭비다.


3. 몸을 식혀주는 음식, 즉 음성(陰性) 식품을 먹는다.


음양을 따지는 한의학에서 음성으로 분류한 것이 많은데, 당장 생각 나는 게 '메밀국수'와 '팥빙수'다.


드물긴 하지만 더운 여름날이면, 내가 자작한 냉면을 마님께 진상하는데 시가에 따라 재료들이 바뀌어도 메밀국수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더워 죽을 판에 언제 물 데워서 국수를 삶으며 냉국을 식힐 것이냐? 그것도 나처럼 살림이 몸에 밴 사람이면 몰라도, 밖에서 큰 일하는 사람들이 어디 할 짓이냐?


그럼 결론은 팥빙수다! 에어컨이 잘 도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팥빙수를 딱 하나만 시켜 놓고 둘이 먹으면, 우선 입술이 얼어붙고 웨이트리스(마담이면 더 좋지)의 차가운 눈총에 등골도 오싹해지며 혈액이 점차 응고된다. 중요한 것은 빙수 먹고 나서 더 시키면 절대 안 된다. 카페 문 닫을 때까지 계속 마른 숟가락에 뽀뽀하면서 죽치고 앉아 있으면, 마담님의 시퍼런 눈과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때마다 머리에서부터 피가 빠지면서 사지가 떨려 체온이 쫙 내려간다.


단점: 빙수법(氷水法)은 돈이 들뿐 아니라 같이 먹을 애인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애인이 있다 해도 접촉을 자제하지 못하면 마찰열 때문에 몸이 오히려 뜨거워질 위험이 크다. 실제로 성공할 확률이 낮은 편이다.


4. 보따리 싸서 예고 없이 친구 집에 쳐들어간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옛날에 저녁 먹는 친구 집에 덜렁 찾아가서 와들와들 떨면서 납량특집(納凉特輯) 본 적 있냐? 친구네 집에 슬쩍 가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보고 있으면, 찬밥 대접받으며 썰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험: 실제로 해 보니 처음에는 열받은 친구 가족들의 체온이 확 올라가는데, 잘 보니까 눈에도 핏발이 서더라. 이때를 무사히 넘기고 나면 혈압이 안정되고 급기야 얼굴에서 피가 빠져 하얗게 된다. 속으로 죽을 맛이지만, 이를 악물고 참기 때문에 더운지도 모른다. 내 덕분에 결국 친구네 식구들도 모두 돈 안 들이고 그냥 앉아서 피서를 즐기는 걸 수 차례 목격했다.


주의: 리모컨은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 열 받쳐 있는 친구 앞에서 채널 바꾸면, 친구네 사모님한테 맞아 죽는다.


결론:  실험 결과 네 번째 방법이 제일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 2013년 8월 10일, 내 비법이 우습냐? 곧 가서 네 가족의 체온을 다 내려주마!


추신: 연구 결과를 누님께 보고했더니 내 나이를 물으셨다. 왜요?  내 나이가 어때서? <- 이건 지뢰야!


- 피서법 본문 끝 -


본문을 다 읽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아래에는 단지 댓글과 관련된 지겨운 내용만 적혀 있습니다.



- @봉다방다보고오신님께 -


어제 @고래님의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읽다 잤는데 꿈꿨어요. 부럽남이 나타나 사주팔자 종이를 펴더니 하나 고르래요. 1.봉순 2.독거여인 3.마로 4.사주만세.

3번 찍었더니...

 맘대로 하시오!

 -뭘요?

 그냥 데려갔!

꿈 계속... 마로랑 둘이 밥 해 먹는 사이가 됐어요.


아침에...

 -탔쪄!

 응.

 -1층 숯, 2층 떡, 3층만 밥이야!

 응.

 -배 불렁!

 나두(좋을 땐 긴 대답도 한다).

 -아침부터 되게 덥네!

 응.

 -피서 가장!

 응.

 -빨랑 나왕!

 응.

 -뛰장!

 응.


(손은 빠른데, 발이 느린 마로 손 잡고) 답십리부터 뛰어서 2시간 만에 왕십리 봉다방 도착!!

정오다...

잽싸게 독거여인 테이블에 가서 앉는데...

 (봉팔이가 떫은 표정으로) 자꾸 오시면 우리 장사 거덜 나요.

 (우릴 무시해?)... 마로와 함께 큰 소리로 주문했다.

  -!(여기까지만 함께) 빙수 하나만 주세요!

 (봉팔이가) 못 팔아! 했지만, 태리가 듣고 냉큼 만들어 준 팥빙수를 봉순이가 들고 왔다.


느긋하게 먹는 두 사람... 홍자도 야옹... 꿈 얘기가 어떻게 됐을까?

3번 선택의 효과는? 브런치 검색창에 '피서법'을 쳐 보면 안다.

객관식의 답을 찍을 땐 3번! 이걸 봉다방에 가서 시행하는 거다.


작가님! 독자들이 많이 늘어서 독자클럽 만들면 어떨까 해서 적었어요. 9독자회장유력후보입니당. 예쁜 @무늬오리님께 벌써 꽃도 갖다 바쳤어요! 같이 뛰자고.


학력:

- 광희국민학교(왕십리 출신입니다, 확인처: 벽돌집)

- 중졸! (스펙이 딸린 데나 뭐래나, 상길이가 중학교도 나왔다고 쓰래요. 확인처: 물리악)


심리로 봉다방 다 읽고 오신 분은 댓글에 독후감 남기셔도 돼요. 잘 쓰시면 봉순씨가 겨울 팥빙수 쿠폰 쏠지도 몰라요.


매거진: 다시 쓴 편지 / 숨은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서생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