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인사 2015 - 2010
요즘은 날씨가 전처럼 춥지 않아, 달력을 보지 않고서는 가을인지 겨울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이 벌써 12월 하순 22일, 팥죽 끓여 먹고 귀신 쫓아내는 동짓날이다. 하지만, 베란다의 여름 꽃은 매일 새 꽃을 피우고, 아침에 빵을 사러 나가 잰걸음으로 돌아오며 내쉰 거친 숨결도 공중에 뽀얀 입김을 내지 않는다. 모두 겨울 온 줄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춥지는 않아도, 입동에 겨울님 오신지도 한참 지났으니, 동짓날에 겨울 인사는 드려야겠다.
연말 보람되게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자!
- 2015년 12월 22일, 동짓날에
오늘도 어제처럼 하늘이 우중충 구름 가득한데, 눈발은 날리지 않고 냉랭한 바람에 나뭇가지만 흔들린다. 빗방울은 뭐 그리 좋은지 차가운 공기 속을 헤엄쳐 다니면서, 바삐 가는 행인의 두꺼운 옷만 적시고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코 앞에 왔으니, 추위에 얼고 어둠에 가려 시린 마음을 하얗게 밝혀줄 함박눈이나 내렸으면 좋겠다.
잠깐 나왔던 해님이 저녁도 안됐는데 졸려 누우시니,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려 깜빡이는 오색불이 초롱초롱 어둠을 밝힌다. 동짓날이 아직도 열흘은 더 남아있는데, 냉기에 움츠린 내 마음은 어느새 완연한 겨울 속에 빠져 든 것 같다.
오늘은 신 정부 경제정책에 반발한 총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되고 비행기도 뜨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가와 공공서비스도 문을 닫은 터에, 방송매체들도 가세하여 종일 음악 방송만 보냈다. 저녁 뉴스는 프로그램대로 나와서, 노조 지도자들의 발랄한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하루살이 소상인이 손님 없는 가게에서 울먹이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나도 몇 달째 집수리에 전력투 하다가 힘들어 짜증 난 것은 아니지만, 정 없는 세상살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더운 곳으로 떠나가 한 주일을 보내고 왔지만, 가슴속에는 아직도 포근한 정서가 부족하다. 성탄과 연말 인사에 뭐 그리 즐거운 이야기를 더할 수 없다.
절후 인사에 첨부할 사진들을 찾아보니, 다행히 봄에 집 나가서 세상 구경할 적에 케이블카에서 웃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때 지은 함박웃음으로 인사드린다.
메리 크리스마스!
요즘 집수리하느라고 세월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우리 강아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왔네.
메리 크리스마스!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에는 지붕이며 도로가 온통 하얗게 눈에 덮여서, 찬 손에 입김 불며 눈싸움하고, 카드도 그려서 친구에게 돌렸는데, 이제는 눈이 와도 쌓이기 전에 녹아서 크리스마스에 눈덩이 하나도 던질 수가 없네.
카드를 그리던 추억도 퇴색하여 멀어져 가는데, 내 얼굴 들어있는 사진 한 장에 낙서 긁적여 보내니, 천지에 포근하게 쌓인 눈 보듯, 평온한 크리스마스를 즐기게.
소리가 뭔지, 그거 하느라고 오랫동안 소식을 못 전했네. 소리에 빠지면 옆에서 뭔 일 나도 알기가 힘들지만, 한국 신문 읽어 보니, 선거가 며칠 안 남았구먼. 전에는 관심 밖이라, 대통령 선거 후 당선자도 몰랐었는데, 이번에는 선거 관련 기사를 읽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이상한 일들이 참 많네.
선거 과정에 일어난 일들이 알쏭달쏭하긴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여, 성탄절 축하 인사에 가름할 이야기를 하나 적었네. 제목이 성거전(聖擧戰)이라네, 후보 성인들 중에서 가장 축복받을 이들을 나름대로 선정하여 줄을 채웠으니, 싫더라도 그냥 나처럼 축복해 주면 어떻겠냐?
올 가을이 유난히 화창하고 따뜻해서 그런지, 아직도 미지근한 땅이 숨을 죽이고 동장군님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땅은 아직도 어린 애인가 보다. 아직도, 꼭 내가 어렸을 때 그랬듯이, 긴 어둠이 냉기를 뿜으며 겨울님을 모셔오는 줄만 알고 있다.
오늘은 동짓날, 연중에 밤이 제일 긴 날이니, 먼저 어른 된 내가 어린 땅에게 어둠이 혼자서 겨울을 데려 온 걸 알려줘야겠다. 겨울이 겨울답게 춥지 않은 것도 우리가 이산화탄소를 무작정 뿜어내어, 온실효과를 부추겨 낸 결과이니, 미안한 마음도 인사에 꼭 넣어야겠다.
땅아! 인사드려라. 겨울님 와 계시다!
욕실에서 철거한 회벽을 폐기물 처리장에 버리려고 아침에 트렁크를 채웠는데, 공공서비스 부문이 파업하는 바람에 대중교통이며 동사무소는 물론 공영방송국들이 모두 조업을 중지했단다. 할 수 없이, 교통 혼잡으로 평소보다 긴 시간을 길에서 보내며, 과적 차량을 끌고 장 보러 갔다.
시장에는 그럴 싸 한 물건들로 가득하지만, 장 바구니는 전 보다 훨씬 더 비어 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상품 광고에서도 낮은 가격만 강조한다. 모두 소비를 줄이고, 싼 물건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 날씨는 전보다 온화한데도, 생활환경은 훨씬 더 써늘해졌다. 마음속이 차가우니, 연말 인사도 올 해에는 반쪽밖에 못 적었다.
잦은 비에 실증 난 해님이 얼굴도 안 내밀고 구름 위로 지나쳐서, 공기가 냉랭하기만 한데,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천지사방이 휘황한 은세계,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온통 희기만 하다.
점심때쯤에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온몸을 감싸고 장화 신고 나서니, 늘어선 거리의 차들이 오리걸음으로 지나갔다. 나는 미끄러운 눈 더미 옆으로 사뿐사뿐 발을 떼어 란제리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님께서도 며칠 후에는 저 마네킹처럼 예쁜 속 옷을 입으시겠지?
집에 돌아오니, 팥죽에 넣는 경단 대신 포도 알을 씻어 넣고, 백포도주로 맛을 낸 메추리 볶음이 점심상에 올라왔다. 나는 마님의 지극한 정성에 못지않게, 가느다란 뼈에 붙은 잔 살을 알뜰히 발라내고, 뼛속까지 이가 들어가도록 꼭꼭 깨물었다. 다음엔 비워진 접시를 치우고, 유리잔에 커피를 붓고, 양철 상자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우아한 점심을 마무리하고 나서. 지하실에 둔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꺼내와, 거실 벽에 오색 다이오드가 깜빡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그동안 밖에서 어둠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던 흰 눈이 빛을 잃자, 거실에 머물렀던 주광(晝光)도 새어나가 크리스마스트리의 오색 불이 한 점 두 점 살아났다.
작년 만해도 동짓날이면 우편봉투에 넣어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가 거실벽을 장식했는데, 올해는 모두 전자우편으로 때우기 때문에 벽이 썰렁하게 비어있다. 나도 유행 따라 사진을 편집하여 인사말을 적어 넣은 메일 카드를 만들어 보내니, 촉감이 즐거운 종이 카드 못지않게 반갑고 유쾌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즐겁게 준비하고 새해에도 만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해마다 보내는 겨울 인사가 점점 더 즐거운 얘기로 채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