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7
윈슬로를 떠나 막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페인티드데저트(Painted Desert) 동단까지 40마일을 달리니, 페트리파이드포리스트 국립공원(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의 동문이다.
동문 근처에는 공원 박물관(Rainbow Forest Museum)이 있는데, 공원 설립의 역사적 배경과 공원 안에 많이 흩어져 있는 규화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태고적에 화산재나 진흙 속에 묻힌 나무가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하수에 녹아 있던 광물질의 침투로 세포조직이 조금씩 단단한 돌로 변하는 것을 석화작용(Petrification)이라 하는데, 이로 인해 화석이 된 나무가 규화목이다. 규화목은 땅에 묻혀 있다가 토사의 유실로 몸체의 일부가 땅 표면에 돌출되어 나오는데, 완전히 표출되면 토양의 움직임에 따라 동강이가 나서 땅 위에 흩어지게 된다.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원시 거목의 화석이 자연 그대로 널려져 있는데,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까이 가서 큰 나무를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살짝 뜯어보기도 하니 매끄럽긴 한데 역시 돌이라 내 머리처럼 딴딴하다.
땅에 구르는 나무토막도 자세히 보니 단면에 나이테가 선명하고 돌로 변한 나무껍질도 살아있었을 적의 모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다시 차를 몰아 공원 북쪽으로 들어가니 크리스탈포리스트 루프(Crystal Forest Loop)라는 산책로가 있는데, 박물관 주변에서 본 것과 비슷하지만 때론 녹회색으로 때론 갈색과 백색으로 분칠해 놓은 듯한 언덕 아래에 많은 규화목들이 뒹굴고 있다.
산책로를 계속 돌며 보니 어느덧 시야에 눈 덮인 민둥산에 흙을 뿌려 놓은 것 같은 풍경화가 펼쳐진다.
공원 안의 명소로 꼽히는 곳으로 블루 메사(Blue Mesa)가 있는데,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공원 중심부쯤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서 보니 서북의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봉분처럼 꼭대기가 둥글둥글한 민둥산들이 각기 다른 색띠를 두르고 서 있다. 묘지를 연상케 하는 이 민둥산들을 파헤쳐 보면 틀림없이 공룡이 살던 숲에서 고목들이 화석이 되어 잠자고 있는 거대한 원시림이 튀어나올 것 같다.
블루 메사의 토양은 텍사스에서 아리조나 북부를 거쳐 유타주에 걸친 방대한 지역에 분포하는 신리퇴적암(Chinle Formation)이다. 고운 흙이 층층이 쌓여서 굳어져서 파스텔처럼 색깔이 고운데, 비가 오면 땅이 젖어서 부풀어 끈적끈적하다가 마르면 오므라지고 갈라져서 코끼리 가죽 같이 보인단다. 블루 메사 안에는 산책로가 있는데, 땅이 침식되어 생겨난 작은 산들이 색띠를 두른 모양을 보니 마치 조개껍질 같기도 하고 주름치마 같기도 하다.
공원 안의 작은 산들을 북미 인디언들의 원추형 천막집과 비교하여 티피(Teepee 또는 Tipi)라고 하는데, 블루 메사를 나와 북쪽으로 가는 길에 제법 큰 산들이 모여 있어 지도상에 나온 걸 보니 구분 없이 그냥 Teepees라고만 적혀 있다. 어찌 보면 삿갓 같기도 하고 버섯 같기도 한데 색깔이 너무 곱다.
지도에 신문바위(Newspapes Rock)란 곳이 있어서 가보니 바위들이 아무렇게 쌓여있다. 뭐가 있길래 신문 바위인가 했더니, 새, 사람, 태양, 가축의 모양이 마치 아이들이 장난으로 긁어서 그린 것 같이 평평한 바위면에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암각화를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림의 윤곽선이 방금 그린 것 같이 선명하게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그게 멀 게는 오천 년 전에 그려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 그림들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라면 분명히 잘 보호해야 할 국보급 문화재인데, 특별히 배치된 감시원도 없고 접근 제한선도 없으니, 자연을 존중하는 미국인의 의식 수준이 너무 부럽다.
암각화가 있는 곳에서 나와 다시 북으로 약 2킬로미터를 가서 지도에 푸에르코푸에블로(Puerco Pueblo)라고 쓰인 곳에 차를 세우고, 안내판을 보니 공원 안에 흩어져 살던 인디언들이 1200년대에 일어난 가뭄으로 살기가 어려워져서 여기에 함께 모여 살았다는데, 1300년쯤에는 200여 명이 살다가 기후 변동에 적응을 못해서 1380년까지 모두 집을 버리고 떠났단다.
우리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동으로 머잖아 이런 일이 있을 것인데, 많은 인구가 어디로 갈지 걱정이다. 당장 여행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서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해야 되나? - 해결책은 여기: 대서양
지도를 보니 겨우 공원의 꼭 중간에 있는데, 저녁이 가까워 오니 서둘러 북쪽으로 가서 명소들을 견학하고 저녁 식사에 늦지 않게 예약해 둔 호텔로 들어가야 한다. 공원을 빠져나가려면 아직도 왔던 길만큼 가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앞으로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가는데, 눈길을 돌려 옆을 보니 길가에 길게 늘어선 전봇대 앞에 녹슨 차체가 땅에 박혀있다. 설명 없이도 그것이 옛날에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66번 국도(Route 66)의 기념물이라는 느낌이 온다. 벌써 여행 중에 짐작으로 감이 잡히는 것들이 좀 있으니, 고생하며 여행한 보람이 있다.
여행 중에는 일상생황 속에서 배우는 것 보다도 학습 속도가 훨씬 빠르고, 사물에서 느끼는 감각도 더욱 예민해지는 것 같다. 여행은 다니면서 노는 것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효율적인 지성과 감성의 훈련이기도 하다. - 노는 것의 정의: 춘삼월
공원이 평평하긴 하지만 워낙 넓고 볼 것도 많아서 해 질 녘에야 겨우 공원의 북쪽 끝에 있는 친드포인트(Chinde Point)에 도착했다.
관광안내서에는 여기서 해지는 페인티드데저트의 풍경이 장관이라 한다. 해가 기울고 있으니, 산색이 조금씩 붉어지기는 하는데 카메라에 잡히는 영상은 멋이 안 난다.
좀 더 기다리면 이제 낮은 민둥산들이 봄날 들녘에 쥐불 놓은 것처럼 발갛게 타들어 가겠지. 하지만 해가 생각보다 느리게 기울어서 시간은 흐르는데 들판은 영상만 흐려지고 상상한 풍경이 안 나오니 조급하게 기다리는 속만 탄다. 결국 상상대로 풍경을 보려면 아마 저녁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자리를 떴다.
붉게 타들어 가는 사막 풍경을 상상하며 공원을 빠져나가는데, 인디언 사는 집 같은 게 있다. 1920년대 초에 공원에 흩어져 있는 규화목을 써서 지은 것을 1930년대에 볕에 말린 진흙 벽돌로 재건축한 옛날 여관인데, 호피(Hoppy)족 인디언이 그린 벽화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 보려니 문이 잠겨있다.
이제 얼른 공원을 빠져나가 빠른 길로 100마일, 2시간 거리인 신리(Chinle)로 가서 하루 온종일 사막을 쏘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한다. 사막을 빠져나가 지금은 40번이 된 옛 추억의 루트 66번을 타고 가다가 다시 샛길로 돌아 북방으로 가는데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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