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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Jan 15. 2016

셰이캐년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8

어둠 속에 먼 길을 달려 나바호 인디언이 경영하는 호텔에 도착하니 여덟 시인데 벌써 식사를 마감한다. 알고 보니, 인디언 자치구인 신리(Chinle, 아리조나주)의 지방시는 지리적으로 같은 자오선 상에 있는 아리조나주보다 한 시간이 더 빠르단다. 인디언이 시간까지 맘대로 정해서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리조나 인디언 시간은 GMT-7인 MST(Mountain Standard Time, 산지표준시)를 쓰는데, 나바호족은 썸머타임이 있고 호피족은 없다. 인디언 부족 간에도 알력이 있다.)


- 공원 안내


셰이캐년은 남북 양쪽으로 갈린 길을 따라 전망대와 계곡 진입로가 있는데, 두 길을 모두 가서 보기에는 시간이 없고, 벼랑 아래의 풍경도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남쪽 길을 택해 우선 공원안내소로 들어갔다.

셰이캐년의 공원안내소에 걸린 안내판

다른 국립공원들의 레인저(Ranger)처럼 여기서도 인디언 자원봉사자들이 공원을 소개한다. 옛날에 이 계곡에 살던 인디언들이 나바호 인디언 말로 TSEYI(바위들 사이란 뜻 즉 캐년)라고 불렸었는데, 뉴멕시코의 스페인어 사용 지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와서부터는 인디언 고유의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Chelly라고 썼단다. 요약하면 셰이캐년은 'Chelly 인디언이 사는 협곡'이란 뜻이고, 스페인어로 적으면 Canyon de Chelly인데, 영어로 발음하면 '캐년 더 셰이'처럼 들린다.


이곳에 아나사지(Anasazi)라는 선조 인디언들이 벼랑에 집을 짓고 살다가 떠났는데, 옛날 집터가 아직도 캐년 안에 남아있다. 현재는 계곡 안에 40여 가족이 살고 있다는데, 집터가 보일 때마다 망원경으로 확인해 봐도 힘들게 벼랑에까지 올라가서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 선조 인디언들이 살던 집터


- 백악관을 방문하다


계곡 안의 토착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제법 비싼 인디언 가이드를 동반하고 가야만 볼 수가 있고, 일반 관광객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화이트하우스(White House)라는 옛날 집이 있는 벼랑 아래까지만 자유롭게 가 볼 수 있다.

이 벼랑 아래로 내려가면 화이트 하우스라는 인디언의 폐가가 있다

일단 계곡 진입로 근처에 차를 세워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산행길은 보호철책도 없이 울퉁불퉁 거칠게 깎아 놓은 가파른 길인데 바위에 까칠까칠한 줄무늬가 있다. 마치 붉은 모래가 굳은 듯한 이 사암은 공룡이 살던 200만 년 전에 아리조나 유타 텍사스 지역에서 형성된 신리 퇴적암(Chinle Formation)이다.

울퉁불퉁한 붉은 바위 산길- 이 험한 길을 내려갔다. 하산 장비도 없이!

계곡 아래로 내려가다가 가끔씩 서서 보니 둥글둥글한 황갈색의 바위들이 만지지 않아도 느낌이 따뜻하고, 눈 앞에 우뚝 선 검붉은 바위산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얼굴에 뜨거운 열기를 반사한다.

온 길을 돌아보니 별로 안 내려온 것 같은 데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갔다

위에서 보기에 그리 멀지 않던 계곡 아래에 이르니 긴 통나무들을 가로로 쌓아 육각형으로 지은 호간(Hogan)이라는 인디언의 집이 하나 있고 그 주변에 작은 밭이 있다. 하지만 풀도 별로 없고 동물도 안 보이는데 인디언은 저기서 어떻게 먹고살까? 나중에 알고 보니, 놀랍게도 그들은 정부의 배급을 타 먹고 있었다.

산비탈을 내려와서 본 계곡 아래에 열린 풍경

이정표는 없지만 더 내려가 개울 건너 포플러 나무 아래로 가니, 계곡에 사는 인디언들이 길가에 상을 펴고 앉아서 열심히 수공예품을 만들거나, 갈대 같은 붓으로 잉크를 찍어서 평평한 돌 조가리에 도마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전통적인 인디언 복장은 걸치고 있지 않지만 낮고 넓은 코 모양이며 검은 머리칼에 그을린 얼굴이 몽고 인종임을 보여준다.

계곡 아래 나무 그늘에 있는 인디언 기념품 상가

포플러 그늘 아래를 지나니 나바호 인디언의 조상들이 살다가 버리고 간 옛날 집들이 머리 위에 나타난다. 바로 계곡에서 제일 유명한 화이트하우스인데, White House = 백악관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좀 초라하다.

계곡 안 벼랑에 남아 있는 화이트하우스


- 거미 바위를 찾아서


계곡에서 다시 비탈길을 걸어 올라와 캐년의 남쪽 테두리를 따라 차를 몰고 올라가니, 계곡 아래에 시냇물이 흘러가고 물길 따라 나무들도 자라고 있어서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간혹 염소들도 떼를 지어 풀을 뜯고 말을 탄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캐년 안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나무도 자란다

캐년 주변도로를 더 올라가니, 계곡 바닥이 점점 더 깊어지며 건너편 벼랑의 가파른 바위틈에 가끔씩 제비 집처럼 붙어 있는 인디언들의 폐가들이 보이는데,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돌아가다 보니 발아래에 사람이 있다. 나는 아찔아찔 현기증이 나서 발아래로 곧게 깎아지른 절벽 근처에서는 난간을 붙잡고도 못 서 있겠는데, 아래에 있는 사람은 벼랑 끝까지 기어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무리 보는 것도 좋지만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직업이 화가라는 이 분을 보고 심장 뛰어서 혼났다.

겁은 났지만 절벽 가까이에 다가가서 내려다보니, 계곡 바닥으로부터 거대한 쌍봉이 갑자기 솟구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셰이캐년이 자랑하는 거미바위(Spider Rock)에 찔려서, 눈 감고 긴 숨을 내 쉰 후에 다시 고개를 떨구어 바위를 한 번 보고는 얼른 발을 빼고 뒤로 물러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셰이캐년의 명소로 꼽히는 거미 바위

감동에 벅차 한 동안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몰래 하늘에서 지평선으로 내려온 태양이 반대편 벼랑을 등황색으로 물들여놓았다. 이제 다음 행선지인 모뉴먼트밸리로 떠날 시간이다.

저녁 태양에 붉어진  캐년의 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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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1. 라스베가스 서곡

2. 데쓰밸리 국립공원(+라스베가스 다운타운)

3. 자이언 국립공원

4. 그랜드캐년 노스림(+페이지를 향하여)

5. 앤틸로프캐년(+파월호, 구절양장 콜로라도)

6.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우팥키공원과 화산, 메테오르 크래이터, 윈슬로)

7. 페트리파이드포리스트 국립공원

8. 셰이캐년

9. 모뉴먼트밸리(+신들의 계곡)

10. 아치스 국립공원(+캐년랜즈 국립공원)

11.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을 향하여(+그랜드테튼 국립공원)

12.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13. 쏠트레이크씨티(+그레이트쏠트레이크, 빙감캐년마인)

14. 브라이스캐년(+코다크롬배이슨, 라스베가스를 향하여)

15. 라스베가스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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