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 4주 4천 마일
윈슬로를 떠나 막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페인티드데저트(Painted Desert) 동단까지 40마일을 달리니,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의 동문이다.
동문 근처에는 공원 박물관(Rainbow Forest Museum)이 있는데, 공원 설립의 역사적 배경과 공원 안에 많이 흩어져 있는 규화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태고적에 화산재나 진흙 속에 묻힌 나무가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하수에 녹아 있던 광물질의 침투로 세포조직이 조금씩 단단한 돌로 변하는 것을 석화작용(Petrification)이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화석이 된 나무가 규화목이다. 규화목은 땅에 묻혀 있다가 토사의 유실로 인해 몸체의 일부가 땅 표면에 돌출되어 나온다. 그 후 완전히 표출되면 토양의 움직임에 따라 잘라지고 부서져 땅 위에 흩어지게 된다.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원시 거목의 화석이 자연 그대로 널려져 있는데,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까이 가서 큰 나무를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살짝 뜯어보기도 하니 매끄럽긴 한데 역시 돌이라 아주 단단하다.
땅에 구르는 나무토막들도 자세히 보니 단면에 나이테가 선명하고 돌로 변한 나무껍질도 살아있었을 적의 모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공원 북쪽의 크리스털 포리스트 루프(Crystal Forest Loop)라는 산책로를 따라가 보니, 박물관 주변에서 본 것과 비슷하지만 때론 녹회색으로 때론 갈색과 백색으로 분칠해 놓은 듯한 언덕 위에 수백만 년 전에 쓰러진 나무들이 잠을 잔다. 마치 꿈이라도 꾸듯이... 어떤 꿈? 용꿈 생기기 전에 꾸던 공룡꿈!
산책로를 돌며 보니, 쓰러진 거목들의 풍경화가 계속 펼쳐진다. 마치 죽은 거목들이 눈 위에 쓰러져 잠든 것처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공원 중심부쯤에 차를 세우고 공원 안의 명소로 꼽히는 블루 메사(Blue Mesa) 주변을 산책하노라니, 서북의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봉분처럼 꼭대기가 둥글둥글한 민둥산들이 각기 다른 색띠를 두르고 서 있다. 묘지를 연상케 하는 이 산들을 파헤치면 공룡이 살던 원시림이 깨어날 것이다.
블루 메사의 토양은 텍사스에서 애리조나 북부를 거쳐 유타주에 걸친 방대한 지역에 분포하는 신리퇴적암(Chinle Formation)이다. 고운 흙이 층층이 쌓여서 파스텔처럼 색깔이 고운데, 비가 오면 땅이 젖어서 부풀어 끈적끈적하다가 마르면 오므라지고 갈라져서 코끼리 가죽 같이 된다. 블루 메사 안의 산책로를 따라가 보니, 땅이 침식되어 생겨난 작은 산들이 색띠를 두른 모양을 보니 마치 삿갓 같기도 하고 버섯 같기도 한데 색깔이 너무 곱다.
북미 인디언들의 원추형 천막집을 티피(Teepee 또는 Tipi)라고 하는데, 블루 메사를 나와 북쪽으로 가는 길에 제법 큰 산들이 모여 있어 지도상에 표시된 걸 보니 구분 없이 그냥 Teepees라고만 적혀 있다.
지도에 신문바위(Newspaper Rock)란 곳이 있어서 가보니, 바위들이 아무렇게 쌓여있다. 뭐가 있길래 신문 바위인가 했더니, 새, 사람, 태양, 가축의 모양이 마치 아이들이 장난으로 긁어서 그린 것 같이 평평한 바위면에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암각화를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림의 윤곽선이 방금 그린 것 같이 선명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이게 정말 오천 년 전에 그려졌을까? 이 그림들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라면 잘 보호해야 할 국보급 문화재일 텐데, 감시원도 없고 접근 제한선도 없다. 혹시 복제품은 아닐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암각화로부터 북으로 약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푸에르코 푸에블로(Puerco Pueblo)라는 옛 마을에서 안내문을 읽으니, 인디언들이 1200년대에 일어난 가뭄으로 살기가 어려워져서 함께 모여 살다가, 1300년쯤 기후 변동에 적응을 못해서 1380년까지 모두 집을 버리고 떠났단다. 우리에게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동으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기면 어디로 가야 할까?
옛날에 인디언들이 살다가 버리고 간 집터의 안내문을 읽어보니, 출입문 대신 사다리를 놓고 담을 넘어 집에 들락거렸단다. 저녁이 가까워져 지도를 보니 우리가 공원의 꼭 중간 지점에 있다. 저녁 식사에 늦지 않게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하려면,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왔던 길만큼 가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앞으로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가는데, 눈길을 돌려 옆을 보니 길가에 길게 늘어선 전봇대 앞에 녹슨 차체가 땅에 박혀있다.
북쪽으로 가다 보니 녹슨 차체가 땅 위에 놓여있다. 안내판은 없지만, 이것이 옛날에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66번 국도의 기념물이 분명하다. 내가 벌써 느낌으로 그걸 알 수 있다니!
여행 중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다 학습 속도가 훨씬 빠르고, 사물을 보는 눈도 더 예리해지는 것 같다. 여행은 보고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지성과 감성의 훈련이기도 하다.
공원이 평평하긴 하지만 워낙 넓고 볼 것도 많아서 해 질 녘에야 겨우 공원의 북쪽 끝에 있는 친드 포인트(Chinde Point)에 도착했다.
관광안내서에는 여기서 해지는 페인티드 데저트의 풍경이 장관이라 한다. 해가 기울고 있으니, 산색이 조금씩 붉어진다.
좀 더 기다리면 이제 낮은 민둥산들이 봄날 들녘에 쥐불 놓은 것처럼 발갛게 타들어 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해가 너무 천천히 진다. 시간은 흐르는데 들판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기대한 풍경을 보려면 저녁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씩 붉게 물드는 풍경을 보며 공원을 빠져나가는데, 길가에 집 한 채가 있다. 1920년대 초에 공원에 흩어져 있는 규화목을 써서 지은 것을 1930년대에 볕에 말린 진흙 벽돌로 재건축한 여관인데, 호피(Hopi)족 인디언이 그린 벽화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 보려니 문이 잠겨있다.
이제 얼른 공원을 빠져나가 빠른 길로 100마일, 2시간 거리인 신리(Chinle)로 가서 하루 온종일 사막을 쏘다니며 허기진 배를 달래줘야 한다. 사막을 빠져나가 지금은 40번이 된 옛 추억의 루트 66번 위를 지나온 우리 차는 어느덧 어둠을 뚫고 황량한 산 길을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