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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Sep 24. 2017

독서귀(讀書貴)

어린왕자가 청명한 아침에 천금보다 독서가 귀하다 하셨네

계절이 바뀔 때면 나이드신 분과 지인에게 문안 올리는 것을 절후인사라 했던 게 언제였던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지난 6월 알라스카 원정 이후 집에서 잠잠히 여름을 보냈네만, 초저녁 산산한 바람에 철 바뀌는 느낌이 들어 해님따라 남도로 가는 길에 7000년 전 선조가 영면(永眠)한 자리에서 인사드리네.

프랑스 중부의 석기 시대 유적지 부공(Bougon)에 있는 고인돌 모형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일기 청명하여 문득 중학교 때 들은 국어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네.


 어느날 교실에 들어 오신 선생님께서 분필(粉筆)로 급히 두 줄 적으신 것은

- 朝日淸明可讀書(조일청명가독서: 아침 날씨 맑고 밝으니 책을 읽자)

- 千金不貴讀書貴(천금불귀독서귀: 많은 돈은 안 귀해 독서가 귀하지)

아버지 영조 임금의 명으로 뒤주(쌀통)에 갇혀 굶어 죽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지은 시(詩)라네.


우리 중학시절엔 지금처럼 공해가 없어 물 맑고 하늘도 푸르러서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요 독서의 계절이라 했었지? 어언 미세먼지와 스마트폰이 침적(沈積)하여 두꺼운 지층 아래 납작하게 깔려 있는 그 때를 회고(回顧)하고 상기(想起)하여 이 가을엔 화면 뿐 아니라 종이에 인쇄된 책도 좀 읽어보세.


안부가 궁금한 절후인사에 사정을 알리기에 앞서 감히 철든 어른에게 책 읽자 권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 것이네만, 내게 필요하여 보충할 것을 남에게 권함으로 스스로 고무하는 것이니 응원해 주게.


가을은 독서 뿐 아니라 수확(收穫)의 계절이기도 하지. 문득 이제껏 살면서 얻은 것이 뭔가 살펴보니, 혹은 남과 싸워 쟁취(爭取)하고 혹은 극기(克己)와 정진으로 성취(成就)한 것이 있으며 간혹 선물로 받은 것과 운좋게 횡재(橫財)한 것도 있네. 하지만, 어느 하나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구먼. 아! 좀 더 갈무리를 잘할 것을...


소중했던 것들아! 네 떠나면 언제 또 공들여 다시 찾을 것이냐? 거저 들어온 게 나가는 건 별로 아까울 게 없지만 노력해서 획득(獲得)한 것을 잃어버리는 건 좀 안타깝고 서운하네.

  

다행히도 나가는 것 중에는 밖에서 들어온 것 만이 아니라 속에서 샘처럼 솟아 흘러나가는 것도 있네. 바로 인정같은 거지! 사랑 우정 성냄 또한 내 속에서 우러나와 걸러지거나 빠져나가는 것이네. 내 가슴에 퍼져 있는 샘터에서 각기 다른 감정이 솟아나오는데, 우정샘에서 나온 따뜻한 것을 메일에 실어 보내니아주 조심해 받게. 빨리 식고 휘발성이 강해서 얼거나 증발할 수도 있으니까.


옛날부터 친구지간에 철 바뀔 때마다 절후인사하는 것은 그냥 두면 우정이 식고 말라버리는 걸 막기 위해 새 물을 붓는 의식이네. 이번에는 물에 독(讀)을 타서 살찌는 약물되게 조제했으니, 하늘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에 가슴에서 지성으로 고양된 감정이 넘쳐나게 우리의 정신도 살찌워보세.


자네 귀에 이렇게 써보면 어떻겠나? 독서귀!


- 2017년 9월 1일, 프랑스 남부 보르도를 향해 남진 중에


추신: 바쁘게 다니느라 엊그제 쓴 안부인사를 지금 보내려는데 좋던 날씨가 변했네. 이제 아침 밥 먹는 중에 비가 오는데 무지개가 선명하니 먹구름 사이로 잠시 나온 햇님의 장난이라 어서 짐 챙겨 떠나야겠네.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것이 많지요. 바람 낙엽 추석 독서 등등...


한 해의 가을이 아니라 인생의 가을엔 어떤 게 생각 날까요? 제가 아직 인생의 봄과 여름을 보내고 있을 때는 계절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게 없는데, 인생의 가을에 이르니 지난 계절이 아쉽네요. 봄 여름에 열심히 심고 가꾸어야 가을에 거둘 게 많은데 왜 그 때 안 했을까? 그 때 안 한 것 못 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게 독서입니다.


독서에 대한 사도세자의 시를 친구에게 적어보내고 나서 출처를 확인하려고 싯구를 넣어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한 건도 안나오네요. 혹시 옛날 국어선생님이 잘못 가르치신 걸까? 아니면 내 기억장치가 망가진 걸까?


젊어서 미치광이로 아사한 조선의 세자가 독서를 얼마나 했길레 국어선생님이 하고 많은 학자를 제쳐 두고 하필 사도세자를 거론했지? 잘 알려진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구절도 있는데 ...


궁금한 차에 사도세자에 대해 좀 알아봤어요.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 - 1762)의 이름은 선(愃: 잊을 선, 너그러울 훤)인데, 그가 죽은 후에 아버지 영조(英祖: 1694 - 1776)가 생각하고(思) 애도한다(悼)는 뜻의 시호(諡號)를 내려 사도세자로 알려졌지요. 영조 사후에 즉위한 세자의 아들 정조(正祖: 1752 - 1800)께서는 아버지의 시호를 장헌세자(莊憲世子)로 고치고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며 왕으로 추존(追尊)하려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후대의 왕들이 대대로 추존사업을 계승하여 결국 고종 때 대한제국의 역대 황제 중의 한 분인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황실 계보에 등록되셨답니다.

출처: http://db.mkstudy.com/mksdb/korean-literary-collection/book/8760/

사도세자가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연산군 숙종 영조 등 선대 왕들처럼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겨서, 정조 임금이 직접 유고(遺稿)를 편집 교정하여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라는 문집이 1814년에 7권 3책으로 출판됐어요. 물론 저자명도 사도세자가 아니라 장헌세자로요 - 이 문집에 '독서'라는 시가 있는데 아쉽게도 제가 안부인사에 인용한 시가 아니네요.


영조는 당시 나이로는 좀 늙은 42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 주기 위해 생 후 1년 만에 그를 세자로 책봉했는데, 어려서부터 아주 총명해서 3세 때 글을 읽을 정도였데요. 이때까지 영조는 세자를 아끼고 칭찬했지만, 이후 영조는 세자를 엄격히 교육시키고 혹독하게 다루어, 9세에 이르러서는 영조 앞에서는 아는 것도 물으면 대답을 못할 정도였답니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엄한 수업을 받던 그는 소년기에 글보다 무예를 좋아했고 살도 퉁퉁쪄서 영조가 자신이 젊을 때 타던 가마에 꽉 차게 들어가 앉아있는 세자를 보고 제가 왜 저리 뚱뚱하냐고 화낼 정도였데요.


이래도 혼나고 저래도 혼나고 신하들 앞에서 조롱 당하는 자신을 얼마나 수치스럽게 여겼을까요? 그는 이미 15세에 요즘으로 말하면 조울증에 해당하는 증세로 인해 장인을 통해 은밀히 약을 구해 복용했는데, 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가 늙으막에 회고하여 적은 한중록(閑中錄)에 의하면, 그의 조울증은 옷에 대한 강박장애인 의대증(衣帶症)으로 나타나 입을 옷을 정하지 못하여 화를 내며 시중들던 내관을 상해하는 등 점차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발전했어요.


그의 광기는 날로 심해져 하루에 궁인 여섯 명을 죽인 적도 있는데, 이를 보고도 후한이 두려워 사실을 부왕 영조께 보고하는 사람이 없다가, 드디어 세자의 죄상을 간한 신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칭찬은 커녕 영조에게 처형 당하고 고발장도 소각되고 말아요. 하지만 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그가 죽인 사람 수가 100명이 넘으며 세자의 살기가 부왕께도 미칠거라는 사실을 알려서, 결국 그는 1776년 영조의 명에 따라 쌀을 보관하는 좁은 뒤주에 갇혀 2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지요.


세자의 행실에 대한 기록은 사후에 아들인 정조의 요청으로 많이 파기되어 역사학자들도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고증하지 못해, 그가 노론 소론간의 당파 싸움의 희생자라든가 광증으로 인한 폭행 또는 부왕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오가고 있어요. 사극에도 자주 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주로 조선왕조실록과 한중록에 근거를 두는데, 이 기록 또한 표현이 모호하거나 객관성이 부족해서 정확한 해석이 어렵답니다.


아직도 미궁(迷宮)에 빠져있는 사도세자의 죽음! 이 수수께끼를 독서로 풀 수는 없을까? "책 속에 길이 있다"하니, 읽다 보면 뭔가 찿을 수 있을 거에요. 동기가 무엇이든 우선 책 속으로 들어가 깊이 파 봅시다.


제가 안부인사에 굳이 而(말미암을  이)를 넣어 '온고이지신'이라 적은 것은 중학교에서 한문 배울 때 그냥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앎)이라고 배운 것의 더 깊은 의미를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공자님 말씀인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라는 글귀가 있는데,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으면 남을 가르치는 스승 될 자격이 있다"로 풀이할 수 있어요. 달리 말하면, 배우고 응용력을 키워야만 제대로 아는 것이고, 그래야만 누굴 가르칠 수 있다는 거지요.


독서! 책 읽고 외우는 것 만 아니라(記問之學?) 배워서 무엇에 쓸 지 좀 더 연구하면서 인생의 가을을 보내야겠어요.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겨울로 가는 나그네 ... 언뜻 성숙하게 익어 다음 계절로 가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오늘 인터넷에 고문서를 검색해서 이런 걸 찾아냈어요.

장서각 필사본의 한 페이지! 끝에 뭐라고 써 있나요?

1. 장서각 소장 필사본

서명: 待闡錄(대천록), 작자미상

世子十一歲時作詩曰朝日淸明可讀書千金不貴讀書貴 ...


세자 나이 11세에 지은 시라니 ...

우리 국어 선생님 만세!


2.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명: 待闡錄, 편저자: 박하원

조선 후기의 문신 박하원(朴夏源)이 1762년(영조 38)에 일어난 사도세자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

출처 링크: 대천록


제 기억장치도 고장난 게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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