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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Sep 20. 2017

봉원사

1986년 9월 13일 절에서 차분한 이국 여인의 모습을 보았네

새벽에 눈 뜨고 태블릿을 켜 보니 어느새 7월이 왔네. 여행 중에 바쁘게 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정리할 틈이 없어 대충 추려 모아 근황 전하네.

6월 12일 고속열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한 마님은 리버풀에서 비틀스와 거리를 누비셨고, 나는 멘체스터의 한 도서관을 찾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같이 책을 읽던 자리에 앉아 그들이 탐독한 책들을 펼쳐 보았네. 15일에 북향, 워즈워드가 아이들 가르치며 시를 지었던 호수지역 시골 마을과 산업혁명의 요람지 글라스고를 견학하고, 18일부터 스코틀랜드 고산지대를 다녔지. 노상에 어깨동무, 스카치위스키 시음하고 괴물 나오는 네스호에서 보낸 밤이 모두 호연지기를 즐김이런가? 22일 다시 인간으로 귀환. 에딘버러 남쪽의 로슬린 체플을 시작으로 인총 넘치는 거리와 성당 박물관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25일 북상. 남극 탐사선이 정박해 있는 던디, 북해 석유로 부자 많은 애버딘, 책 냄새 풀풀 나는 대학 도시 세인트 앤드류스와 주변의 어촌을 돌아 28일 남행하여 이제 Berwick-upon-tweed라는 시골 도시 친구 집에 머무르고 있네.

옛 시인이 칠월을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했으니 우리도 마음에 열매를 익혀야겠지?

- 2018년 7월 1일, 스코틀랜드의 6월 산책


지난 7월 초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여행 중 보낸 메일에 답장 온 걸 보니 여행가 김찬삼에 대한 문구가 있더구먼.

"우리 어릴 적 김찬삼 교수가 라디오에 나와 여러 나라 다니며 본 걸 동내 영감님 달나라 구경 갔다 온 듯 종알종알 얘기할 때 너무 부러웠지. 4-50년 지난 이제 자네가 그 교수 같아. 자네 글을 보면 나 어려서 소년중앙에 나오는 네스호, 닳도록 들었던 비틀스 판 등등 온갖 골동품이 생각나네."

자네 답장 읽으며 나도 바로 과거로 돌아가 소년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보니 아버지가 매달 사다 주셨던 월간지 소년중앙의 목이 긴 네스호 괴물 삽화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또 곰곰 생각해 보니 어느 가을 대학 병원 뒤 캠퍼스 잔디밭에서 진이와 함께 누군가와 영어로 말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네.


두툼하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며 교문 안에 설치된 차량통제 장애물 앞에 이르면, 가방을 땅에 내려두고 장애물 뛰어넘던 진이는 영어 공부를 워낙 열심히 해서 크고 두꺼운 토플책이 늘 그 가방 속에 있었지. 장애물 앞에서 초인처럼 용감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지 않으며 여학생과는 미팅은커녕 이야기 한 번 안 하고 대학을 졸업한 그가 어느 날 잔디밭에서 생판 모르는 젊은 여자에게 감히 말을 걸었다네. 그걸 못 본 자네야 믿기 어렵겠지만 내가 목격한 엄청난 사건이지.


그 여자는 대학 병원에서 인턴을 하던 에쿠아도르 대사의 딸이었는데 한국말을 못 했으니까 순진한 우리 진이가 감히 아가씨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던 거야. 나도 그 바람에 서투르나마 영어로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후에 에쿠아도르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보았네. 그 책이 바로 여행가 김찬삼이 쓴 남미 여행기였는데, 에쿠아도르에 관한 사진에 해설이 붙어 있어서 아주 세밀히 읽었었지. 아직도 그 내용 중 기억나는 게 있네. 찬차(Tsantsa, Shrunken head)라는 사람의 머리를 잘라 쩌 말린 인형, 기차에서 사 먹은 쥐 튀김 등 징그러운 사진과 괴이한 해설... 고인 되신 여행가 김찬삼이 내게 남긴 유물이랄까?

 

내가 외국 여자와 맨 처음 영어로 대화한 건 영어 공부 열심히 했던 진이가 내 옆에서 대사의 딸에게 먼저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졸업 후 용산의 영어회화 클럽에 다닌 것 또한 조용했던 나를 자극해서 자네까지 부추겨 거기에도 몇 번 갔었지. 그러다가 나도 경이를 만나 난생처음 연애란 걸 하게 되었던 거야. 자주 볼 수 없음에 그리워 줄창 연애편지 써 보내며 몇 년을 기다리는 동안 고독과 애증(愛憎)까지 알게 해 주었던 그 우울한 연애는 어느 날 자네의 깜짝 영어 한 마디에 아주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졌지.


진이가 잔디밭에서 용감하게 외국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듯이 외국회사 들어가 학원 다니며 열심히 영어회화 배우던 자네가 봉원사에서 어느 귀부인 저승길 밝히는 행렬에 끼어 탑돌이 하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뒤에 오는 이국 여인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던 게 1986년 9월 13일 오후. 꼭 32년 전의 일이지. 내가 그때 만난 이국 여인을 이제껏 마님으로 모시고 살게 된 게 하늘의 뜻이었을지언정 자네 어머님이 그날 봉원사에 가 보라고 권하시고 자네가 불식 간에 영어로 말문을 열음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었으니, 두 모자가 내 인생에 크게 기여한 것이라 매년 이때가 오면 새삼 깊은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네.


봉원사에서 마님을 만난 그날이 우리에게는 연중 최고의 기념일이라 매년 성대한 잔치를 벌여 왔는데, 지금 집에 손님이 계셔서 행사를 며칠 연기했네. 오늘은 시내에 나가서 박물관 같이 구경하고 내일 손님 떠나고 나면 마님과 오붓하게 봉원사의 첫 만남을 되새기며 경축행사해야겠지?


진이와 잔디밭, 절마당과 승무 탑돌이... 종이꽃... 귀부인, 푸른 하늘과 이국 여인... 석양에 지전 다발이 불길에 발갛게 타 들어가는 절 풍경이 손가락 움직일 때마다 길어지는 까만 글줄 따라 하얀 화면 위에서 춤을 추네.


이제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도 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테니 신선한 공기 마시며 심신 보양하고 어머님께도 기회 생기면 장수무병 하시기를 기원하며 고마워하는 우리의 안부인사 전해드리게.


- 2018년 9월 14일, 따스한 저녁 햇살 받으며 탑돌이 하던 봉원사의 추억을 그리며...



해마다 오늘이 오면 생각나는 것이 있지. 햇살이 부드러운 초가을 푸른 하늘 아래 봉원사(奉元寺) 대웅전 앞마당에서 만장(挽章)보다 화려한 종이꽃과 지전(紙錢) 달린 깃대 들고 어느 귀부인의 저승길 밝혀 주는 재(齋)의 행렬을 따라 탑돌이 하는 풍경, 바라춤에 울리는 징 소리 챙-챙, 범패(梵唄)가 장악(掌握)한 절 마당에 곤색 치마 두른 이국 여인의 차분한 모습이라네.


나의 연보(年報)에는 이를 1986년 9월 13일 마님 만났던 날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지. 봉원사의 그 만남이 오늘까지 천생연분으로 이어진 것은 그날 절에 가보라고 권하신 자네 어머님과 순순히 나를 데리고 거기에 갔던 자네 덕이네.


그 옛날 내 눈에 비쳤던 이국적인 마님의 외양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침에 눈 뜨고 다시 보는 얼굴과 집안에서 잰걸음으로 움직이는 자태를 보면 그날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네. 주름지고 잡티가 덮인 살갗 아래 아직도 착하고 순진한 마음 간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걸 따뜻하게 느끼며 살아온 나도 외양은 변했으나 속은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네.


오늘 저녁엔 31년 전의 만남을 기념하여 토템(Totem)이라는 곡예와 무용이 어울린 서커스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바라춤에 징 소리는 아니겠지만 그에 못지않는 율동과 굉음 속에서 그날을 그려 볼 수 있겠지? 자네도 함께 그날을 상기하고 사모님께 안부 전해드리게.


- 2017년 9월 13일, 봉원사의 추억을 떠올리며...

봉원사(奉元寺):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 사찰. 만장(輓章/挽章):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주검을 산소로 옮길 때 상여 뒤에 들고 따라감. 지전(紙錢): 돈 모양으로 오린 종이. 죽은 사람이 저승 가는 길에 노자(路資)로 쓰라는 뜻으로 관 속에 넣음. 범패(梵唄):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쓰는 음악. 한국 불교음악의 총칭으로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불리며 무용이 따름.


한 번 숨 쉴 때마다 초침이 째깍! 1분이면 60, 한 시간에 60번 돌며 째깍째깍 3600회, 하루 86400이니 1년이면 31536000회라, 30년엔 946080000! 초침이 9억 번 넘도록 째깍거리는 동안 그만큼 숨도 쉬었으니, 백발이 늘고 얼굴 구겨지고 몸도 늙어 갔네만, 꼭 30년 전 오늘 마님 만난 기억은 여전하네.


끈적한 여름 더위가 한물가고 선선한 바람 불던 토요일 오후 봉원사 큰 마당에서 장대 들고 마님과 함께 귀부인 가마 뒤에 줄 이은 행렬 따라 탑돌이 했었지.


그날의 인연이 30년을 이어 왔으니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을 경판에 새기면 8만 장도 넘겠네. 다행히도 거기에는 행복의 자취가 깊게 남아 있어 남들도 천생연분 잘 만났다 하네만, 단지 우연만은 아니려니 공헌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네.


마님 만나기까지 나를 붙잡아 두었던 옛날의 정인에게, 봉원사 구경 가라고 말씀하신 자네 어머님께 또 마님께 처음 말을 걸었던 자네에게 더없이 감사하네.


추석에 어머니께 감사 말씀 전하고 우리 사진도 보여 드리게.


- 2016년 9월 13일, 지중해의 코르시카섬에서...



여름 오빠 물리치신 가을 언니가 옷자락 펄럭이며 행차하시니 가로수 아래 한 잎 두 잎 낙엽 흩어지고 살갗을 스치는 저녁 공기도 싸늘하네만, 일그러진 둥근달의 추석 알림에 서둘러 남쪽으로 길 떠나왔네.


프랑스 전역에 몰아친 물난리로 인해 호우지역을 피해 다니다 보니, 오늘도 당초 계획에 없던 곳에서 잠을 자게 됐네만, 그게 어디 고향 떠난 난민 신세에 비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프랑스는 볼 게 많은 나라라 심심치 않고 한우고기처럼 재료 값 비싸게 내지 않아도 식욕 돋우는 메뉴가 많아서 하루 두 끼만 먹고 다니지만 속은 편하다네.


어제 하루도 빗 길을 달려 남하했는데 오늘은 남부의 홍수 피해 지역 근처에서 발목이 잡혀 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날씨가 좋으면 피서객이 떠나간 프랑스 남부의 바닷가에서 물새 날아다니는 것도 보고 계곡에서 물소리 들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아! 집에서 그냥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걸 그랬나 봐! 29년 전 봉원사에서 마님 만났던 9월 13일 기념으로...


어머님께 당신 덕분에 봉원사에서 만난 우리가 삼십 년이 다 되도록 서로 애지중지하면서 늘 감사하고 있다 말씀 드려주게.


- 2015년 9월 14일, 봉원사의 추억을 기리며 한가위 인사 띄우네.



작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추석을 맞으며 미국 교포에게 물어보니 추석 명절이 별 의미가 없어서 가족이 모여 토란국에 송편을 챙겨 먹는 일이 드물다던데 여기도 별반 다를 게 없네. 환한 보름달 보며 추억에 젖어 드니 가족의 말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데, 눈앞에 떠오는 젊은 얼굴들 중에는 아주 가버린 사람들도 많으니, 추석은 세월의 흐름 속에 멀리 온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날이기도 하다네.


이맘때 떠오르는 서울의 추억 속에는 추석보다 더 의미 있는 날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봉원사에서 마님 만난 1986년 9월 13일이라네. 이날을 명절 삼아 작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념식을 치렀는데, 올해는 집수리하느라 휴일도 없이 묶여 살고 있어서 여행은 엄두도 못 내지만 자주 외식하는 즐거움이 있지. 어제는 기념행사로 야외에서 요리강습 받고 시식도 했다네.


- 2014년 9월 13일, 봉원사의 만남을 기념하여...



여름에 남들이 방학이라고 물놀이 다니는 것을 보고 집에 죽치고 있자니 샘도 났고 요사이 연일 찌푸린 하늘 보다가 화도 나고 해서, 마님과 동반 가출하여 미국 서부에서 수 주일 동안 삼천 마일을 돌아다녔는데, 면도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다니느라 꼼꼼히 메일 한 장 적을 틈이 없었네. 작년에 집 떠났을 때는 마님 주무시는 동안에 밤새 핸드폰을 두드려 어릴 적에 살던 동네의 벽돌집 얘기를 장황하게 적어 보냈는데, 이번에는 흥미진진한 체험에 못지않게 스트레스도 엄청 받으며 다니는 중이라 안부 인사도 제대로 못 전했구먼.


엊그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추석을 보내고 샌디에이고로 가는 길에 자네가 살았던 오렌지 카운티의 신도시 Irvine, 미국에서도 살기 좋은 동네로 손꼽히는 그곳에서 한나절 보내면서 자네 본 듯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쉬어갔지. 자네가 거기 살 적에 안 가 보고 이제야 들른 것은 당시에 학위 논문 작성하느라 고투하던 터라 여름방학에도 어디 못 가고 집에서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했기 때문이라네.


"늦게라도 하는 것이 아주 안 하는 것보다는 좋다"는 속담처럼 우리 삶에는 제때에 못했다고 해서 아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다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지. 약속 시간에 늦었어도 기다려 줄 것을 기대하고 만날 사람이 있는 곳에 가보는 것이 옳은 도리 아닐까?


오늘은 샌디에이고를 떠나 광막한 사막으로 들어가야 하네. 못다 한 얘기는 나중에 계속해야겠구먼. 짧은 지푸라기 모아서 기다란 새끼줄 꼬듯이 자투리 시간에 의미를 끼워 넣어 인생의 금줄을 꼬아보세.


- 2013년 9월 22일, 27년 전 마님 만난 게 자네 덕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하고 있네.



생일이나 명절을 기념하여 서로 만나 축하행사하는 것은 인간 세상 어디서나 있는 일인데, 친구나 애인과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네요. 친분이나 애정의 결속을 다지는데 기념식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이 아주 큰데 말이에요.


애인과의 만남은 1년이나 2년쯤 기념하고, 다행히 결혼으로 이어지면 결혼기념일 한 두 번 치르고 나서는 잊어버리고 살기 마련이죠. 집도 낡으면 개수해서 새집 만들듯이 고루한 생각도 쇄신하고 새로운 것도 계속 배워야 과거도 빛나겠죠? 위에 발췌해서 적은 것처럼 몇 년 간 제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을 다시 보니, 저는 연인(마님 되신 아내)과의 만남을 기념하여 특별히 보낸 시간들 덕분에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걸 확실히 체험한 것 같아요.


연중에 마님과 함께 치르는 큰 행사는 만남의 날(9월 13일)과 우리 생일(11월 2회), 거기에 달마다 한 번씩 오는 결혼기념일이 있는데, 모두 중요한 행복의 요소들이랍니다.


명절과 국경일을 제외하고 연중 기념일은 몇일인가요? 가족 친구 생일, 경조사. 이것저것 합치면 꽤나 많은데, 연인과의 첫 만남을 기념하는 날도 거기 들어있나요? 혹시 잊으셨다면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 쳐 두세요. 그걸 보시면 과거의 추억이 되살아 날 뿐 아니라 그날부터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 것도 아시게 될 거예요.


한국은 수입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라는데, 수입 올리는 노력과 더불어 모르고 지나치는 행복의 요소를 잡는 데도 열을 올린다면 행복지수도 올라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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