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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Nov 25. 2017

귀거래(歸去來)

늦가을 도시의 숲 속을 거닐다 집에 돌아오니...

엊그제는 비 오고 추워서 거실에 해님 드시게 유리창 먼지를 훔쳤건만, 오늘은 점심 먹는데 웬 가을 햇살이 그리 밝은지! 눈 부셔 귀한 해님 못 들어오시게 커튼 치고 막았으니, 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방자한 짓인가?


점심 먹고 나서 괘씸하다 화내실 해님께 사죄드리러 밖에 나갔더니, 용서 없이 내 몸에 광선총을 빵빵 쏘셨네. 전신에 총구멍이 나니 체중이 줄고 마음도 가볍게 뜨는 느낌! 새처럼 날아가는 마음 따라 숲으로 몸을 숨겼지.


청명한 하늘 아래 볕 든 숲 속! 양지에 쏟아지는 광선의 위용에 가림 막 없어 몸 다친 나뭇잎이 허공을 돌아 땅에 눕고, 아직 죽지 않은 잎들마저도 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스쳐 지나는 실바람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네.


층층이 쌓인 낙엽 밟는 걸음 사뿐사뿐 날렵해도 발 밑에 짓눌리는 잔잎은 사각사각! 소주잔 기울임에 마른 멸치 허리 부러지는 소리를 내니, 나뭇잎이 가련히 숨지는 숲 속의 가을 풍경인들 어찌 서럽지 아니할까?


낙엽을 홀랑 뜯긴 덩치 큰 나무 사이로 열린 길 따라 옛날에 말 뛰던 경마장으로 발 들이는데, 숲 관리가 고함치는 소리에 섬뜩! 멈칫 보니 부서진 난간 저 아래 계곡에 누운 사람 쪽으로 빨간 약상자 들고 슈퍼맨이 날아왔네.


다시 몸을 돌려 트랙 위를 걷는데, 하늘 내려오시는 해님도 화가 풀린 듯 연한 햇살을 던지시니, 얼굴을 밝히는 광휘와 전신으로 퍼지는 온기에 가슴이 부풀었네. 마침 길 가에 나온 토끼에게 물었지. 꼬마야! 뭐 하고 노니?


경마장 여기저기 부서진 난간을 잘 못 나가면 낙엽처럼 굴러서 계곡 아래 눕게 되는 걸 보고서 어찌 조심하지 않을까? 사람 다녀 잘 다져진 출구로 빠져나오니, 큰 나무 늘어 서고 낙엽 깔려 푹신한 길이 세 갈레 뻗어 있었네.


거기서 집으로 가는 가까운 길은 알지만, 축축하고 바람 찬 북구의 11월에 오늘 같이 멋지게 단풍이 어우러진 숲을 혼자 두기 아까와, 먼 길로 돌아서 오며 푸른 숨을 쉬었. 어느덧 집 앞 차 길! 바삐 건너 대문을 네.


거실에 들어 해님 막은 커튼을 젖히는데, 밤나무 가지가 움직여 깜짝! 거기에 못 보던 새가 앉아 밤톨을 쪼고 있었네. 난 또 봄에 잔가지 물어와 집 짓다 사라진 다람쥐 두 마리가 새 집에 돌아온 줄 알고 좋아서 울컥지.


 '새 집'이라 했나?


사모님 모시고 '새 집'에 들어가 사는 신혼 재미 어떠신가? 내 멀리 살아 집들이 못 가 서운한 마음 크네만, 새 집 단장에 참견도 못하고 수십 년 체득한 미장기술을 썩힌 아쉬움이 백 배! 모쪼록 산뜻하게 해님 방 꾸미시계나.


새 집에 들어가서 찍은 사진 있으면 한 장 보내 주시게!


2017년 11월 23일, 늦가을 도시의 숲 속을 거닐다 돌아와 집 나간 다람쥐를 생각하며...



발 밑에서 사각사각 나뭇잎 가련히 숨지는 숲 속의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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