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건, 키즈 모델 밖엔 없어요.

티끌을 모으면 진짜 태산이 됩니다.(4)

by Munalogi

그림출처


protection-917439_960_720.jpg IMF가 뭔지 모르는 애기들은 [국가 부도의 날] 영화라도 보세요.

우리들의 친구 IMF는 우리 집 역시도 휩쓸었다.

차압 딱지는 봄날 벚꽃처럼 집안 가득 흩날렸고 나는 하루아침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그만둬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어리둥절하고 어수선했던 집안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빚쟁이들은 만날 수 없는 부모님과 연락을 하려고 학교까지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10대 때부터 가장이 되어 우리 집의 한 부분을 챙겨야만 하는 것도 당연했다. 수업료도, 급식비도 내지 못해 선생님께 늘 불려 갔고, 신분 상승은 공부밖에 없다는 말 따위나 들으며 교무실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기만 했다. 그 흔한 핸드폰도 20대가 되어서야 겨우 가질 수 있었다. 세상엔 내가 가진 것보다 은행이나 대부업체들이 가진 것이 훨씬 많았다. 그나마 장기로 가득한 육신 하나 온전히 내가 가졌다는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었다.


기타노 다케시가 말했다지. 가족이란 아무도 모를 때면 정말 다 꽁꽁 묶어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나는 그 말을 매시간 매분 매 초마다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아빠는 가장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열등감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엄마는 내게 장녀라는 프레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죄책감을 덮어 씌워댔다.

남동생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회피하고 억지 부리고 화내기 바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아빠는 꾸준히 사고를 쳤다.


stress-2061408_960_720.jpg 나는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찢어지고 분해되기 일보 직전의 삶을 늘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었다.

매일매일을 억울함과 육체의 피곤함에 울었고, 어디에 속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의 경계에 걸친 삶에 늘 우울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면서도(그때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버스 안에서 울면서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십 대 때부터, 장장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인대가 몇 번이고 끊어지고, 심장마비의 위험도 몇 번이나 넘기고. 일주일에 20시간 자면 다행인 나날들을 마치 일상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았다. 그리고 현재. 모든 것은 아니지만 급한 문제들은 모두 끊어내고 친척들도 끊어냈다. 가족과의 선도 아주 명확하게 그었다. 이제는 그들을 바다에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도, 내가 언제 바다에 빠져야 하는지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과의 이별을 고하고 겨우 나만을 위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떼이지 않은 '온전한(것에 가까운)'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한 케이크를 하나 샀다. 초를 불어 끄면서 다짐했다. 두 번 다시는 내 인생에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반드시 이 지긋지긋한 일의 굴레에서 나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watch-1208200_960_720.jpg 정해진 시간은 없다. 비교하지 말라. 당장 지금부터가 당신의 삶이다.

이렇듯, "몇 살이면 이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나이"에서 벗어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이 한국 사회에서. 나는 늦깎이 중에서도 늦깎이 었다. 그랬기에 돈을 '제대로'벌 수 있었던 기간도 짧았고, 참 많은 박탈감과 세상의 현실에 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개인 사정은 있고, 누구에게나 인생의 속도는 다른 법이다. 당신의 속도는 분명히 당신의 인생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내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 조차도 아직 보지도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길은 아주 많다. 다른 사람이 돈 모은다고, 다른 사람만큼 모으지 못했다고. 나는 평생 그럴 수가 없다고 주저앉고 힘들어하지 말자.


매일 당신이 피할 수 없는 굴레 속에 갇혀 신경질적인 태도로 있지 말고. 발악하라. 당신을 구해줄 수 있는 제도를 찾고 당신의 어깨 위의 짐들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라. 성가시고 힘든 나날 들일 것이다. 점심시간을 쪼개 은행에 가야 할지도 모르고 동사무소에서 굴욕적인 말이나 시선을 참아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런 건 참지 말고 신고하라) 하지만 그 방법들은 당신이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그 숫자들에서 훨씬 당신을 가볍게 해 줄 것이다.


fireworks-865104_960_720.jpg 인생에 커다란 불꽃놀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이 가져다준 것이, 혹은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말자. 당신은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강인함과 성실함이 그중 하나이다.

이 두 가지는 당신에게 지워진 그 굴레를 반드시 끝내게 해 줄 것이다.


절제력과 냉정함도 그러하다.

FLEX와 YOLO를 실행하며 사는 용기 있는 사람들은 돈을 쓰면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버텨라.

당신을 위한 날은 반드시 온다.

포기하지 마라.

당신이 포기하면 그때는 정말 아무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고통 때문에 당신의 앞날을 모두 포기하지 말라.

우리 나이에 늦은 건, 키즈 모델 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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