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1인분 만들기

티끌을 모으면 진짜 태산이 됩니다(7)

by Munalogi
photo-1481930916222-5ec4696fc0f2?ixlib=rb-1.2.1&ixid=eyJhcHBfaWQiOjEyMDd9&w=1000&q=80 음식이 마트에 이렇게 많은데 왜 먹지를 못하니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유럽의 Christmas holiday가 그렇게 긴 줄 몰랐고 한국처럼 마트는 빨간 날에도 여는 줄 알았기에 크리스마스이브날에 장 보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채워놓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채워놓지 못했다. 한화(Won)로 2300원이 모자라서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하지도 못할 정도로 나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 결과 나는 3일 넘게 음식을 거의 먹지 못 한 상태로 가벼운 몸의 떨림을 느끼며 침대에 간신히 누워 있기만 했다. 더 무서운 것은, 아직 월급날은 1주 하고도 3일은 더 남은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먹을 거라곤 당근 한 봉지와 라면 두 개뿐이라는 것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나는 얼마나 몸을 더 떨어야 할지 가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타국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휴가는 가난한 고학생에게는 그렇게도 길고 잔인했다. 이 상황에서도 배가 고픈 내 몸뚱이가 싫었고, 여기까지 공부하러 와서 이깟 배고픔도 이겨내지 못하는 나의 정신 상태가 천박해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느낄 정도였다. 분노와 치욕으로도 모자라 배고픔까지 겹쳐 사정없이 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나는 부자가 되면 냉장고와 찬장으로 어떤 것을 채울지 생각하기에 바빴다.


photo-1530950837622-262e7f56f087?ixlib=rb-1.2.1&ixid=eyJhcHBfaWQiOjEyMDd9&auto=format&fit=crop&w=1000&q=80 무언가가 빈다는 것은 내겐 일종의 위험 신호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꽤 오랫동안 냉장고나 찬장이 비워지기 시작하면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 속절없이 굶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서럽고 서럽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나는 10개 의 달걀 중 2개만 없어져도 심한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날듯이 마트로 가서 내가 다 먹지도 못 할 양의 음식을 소원대로 냉장고에 꽉꽉 채워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는 음식은 입에 쑤셔 넣기 바빴다.


썩어나가는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그것을 버리며 불안감을 느끼는 나는 다시 마트로 달려가고. 채워두고 남은 음식들은 먹어치우며 뿌듯함을 느끼는 생활을 이어오던 내게 남은 것은 우울증. 거식증. 폭식증의 트라이앵글은 당연하고 (인생 최악의 시절이었음) 바닥을 찍는 건강상태. 건강상태에 질세라 2주도 이 곳에서 버틸 수 없는 통장 잔고였다.


photo-1563379926898-05f4575a45d8?ixlib=rb-1.2.1&ixid=eyJhcHBfaWQiOjEyMDd9&auto=format&fit=crop&w=1000&q=80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먹을 수 없습니다. 욕심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게 더 빠르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현재의 불안감 때문에 욕심을 내서 나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힘들게 살았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돈이 없어 그 지경까지 갔으니 이 정도 꿈을 꾸고 돈을 쓰는 것은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나를 망치고 있었다. 그것도 효과적으로. 매우 적절하게. 심리적 보상이라는 미명 하에.


나는 파스타 10 인분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파스타 20인분을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진짜 되어야 했던 사람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1인분의 양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찬장에 있는 재료들을 보고 내가 몇 번이나 파스타를 해 먹을지를 알고 그에 대한 식단 계획을 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가장 빨리 내가 가진 콤플렉스와 불안, 욕심을 없앨 수 있는 방법임을 알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매번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면서.


완전 텅텅 비어 있는 찬장과 냉장고를 보고서도 울면서 마트로 뛰어가지 않기까지. 어느 정도의 배고픔을 느끼면서도 (Autophagocytosis 가 돌아가고 있으니 건강해지겠구나) 괜찮다고 느끼기 까지. 엥겔 지수를 30% 미만으로 끌어내리고 파스타를 정확하게 1인분 만들 수 있게 되기 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가장 큰 교훈 하나도 얻을 수 있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욕심을 낼수록 박탈감만 커질 뿐이다.라는 단 한 문장의 교훈.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어떤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파스타 1인분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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