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이 글은 최근 개봉 영화 [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서적 의존이 심한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자율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결국 또다시 타인에게 기대고 맙니다-10p
가족 내에도 괴롭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실제로 정서적 의존이 심한 가족 한 명의 반복적인 요구로 인해,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불안함과 괴롭힘을 당하는 느낌에 시달린다고 말합니다.-12p
클로이.
나의 딸.
누군가는 내 딸에게서 휠체어를 가장 먼저 보겠지만.
내게는 그저 그 모든 세상의 벽들과 싸우는 가장 크고 위대한 영웅일 뿐인 나의 하나밖에 없는 딸입니다. 다들 죽을 것이다, 너만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까지 클로이를 키워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타이틀이 자랑스럽습니다.
상투적이겠지만. 나는 클로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먹어야 할 약을 챙기는 것도, 그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우는 것도, 딸과 함께 쇼핑하는 맛은 없어도 그 아이가 먹어야 할 야채를 키우고 장을 보는 것도, 우편물을 챙기는 것도 무엇이든 기꺼이 할 수 있죠.
나는 그 타이틀이 자랑스럽습니다. 클로이는 내가 필요한 아이니까. 내가 있기에. 클로이가 존재하죠. 그리고 그런 클로이를 보면 나 역시도 조금은 인정받는 듯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이렇게 영원히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클로이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요.
의존적 어른은 인간관계를 상당히 막연하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오로지 상대방을 조종하는 일에만 능숙하지요. 이들은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해 연민과 두려움에 호소하는 등의 치밀한 전략을 취합니다.-63p
말하자면 의존적 성인이 다른 사람과 의존적 관계를 실현하려 하거나 혹은 망상 속에서라도 의존적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는 숙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이라는 것이지요-116p
따라서 의존적 어른에게 있어 자신의 참모습은 자신의 유아기 때의 모습이고, 그들은 계속 이 내면 안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119p
그런 클로이가. 나의 아기 클로이가. 언제부터인가 나를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는 착한 엄마의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나를 말입니다.
처음엔 자신이 먹는 약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와 함께 나간 몇 년 만의 영화관 데이트 때는 도망을 쳤어요. 길 건너 약국으로 가서 자신이 먹는 약이 어떤 성분인지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그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의 내 기분, 그 아이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같은 것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에요. 다음엔 대학 합격 통지서를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러더니 결국은 집을 탈출해 배달원에게 엄마에게 학대당하고 있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배달원을 신경 안정제를 써서 잠재워야 했어요.
엄마는 너를 위해 이렇게 힘을 쓰고 있는데. 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렇게도 애를 쓰는데.
어째서 내 딸 클로이는 나를 한껏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요. 결국 내가 없다면 이렇듯 도로 한가운데서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해야 하는 나의 영원한 아기인데 말이죠. 그리고 나는 그런 클로이의 엄마입니다. 영원히요.
그들은 스스로를 인생의 '무고한 희생자'처럼 여깁니다. 결국 의존적 어른에게 인생이란 부당함 또는 불행하거나 불공평한 우연이 길게 이어지는 상황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거의 불운의 연속 정도로 치부합니다.-180p
이 정신 질환에 걸린 환자는 자해하는 대신, 자신의 아이에게 음독, 칼로 베기, 구타 질식 등등의 상처를 가해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합니다. 이처럼 특히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와 완전한 의존적 결합을 이루며, 아이를 자기 신체의 연장 정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193p
의존성 우울증은 유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나타납니다. 의존성 우울증 환자에게서는 정서적 갈망,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기대감 결여, 정서적 발달지체 증상이 눈에 띄지요. 이들은 계속해서 충분한 정서적 관계를 박탈당한 유아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울고 떼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매달리거나, 항상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리를 초래할 만한 모든 것을 최대한 없애고 부정하려고 애쓰지요-244p
클로이의 절규 소리가 지하실 가득 들립니다.
아아. 이제 클로이는 다 알아버렸나 봐요.
내가 낳은 아이는 죽어버렸고. 클로이는 납치당한 아이라는 사실을.
내겐 영원히 아이 같을, 나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나를 엄마로 만들어줄 아이가 필요했기에.
클로이에게 장애를 일으키는 약물을 여태 먹여왔다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내가 클로이의 엄마라는 것은 변하지 않잖아요?
나는 지금의 장애인인 클로이를 지켜줄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클로이는 나를 이리도 미워하며 소리치는 것일까요. 내 사랑 클로이는 어째서 엄마 앞에서 부동액을 벌컥벌컥 마셔버린 것일까요.
엄마는 내가 필요해(You need me)라고 말하면서요. 저주와 비장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한껏 이 어미를 쏘아보고서 말입니다.
"상대방이 날 떠나면,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에요"-52p
상대방을 향한 의존성을 중독의 개념과 비교해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문제의 원인이 의존적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존적인 사람이 의지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독을 일으키는 요소가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지요. 담배나 술에 중독되게 만드는 요인이 이 안에 있는 특정 요소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238p
왜냐하면 의존적 어른은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자신의 잠재성에 대한 충분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존적 어른은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과 가까이 붙어 있음으로써, 곧 닥칠 것만 같은 무너짐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합니다.-245p
클로이는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살아난 클로이는 더 이상은 나의 아이가 아니었어요. 나를 떠난 클로이는, 영원히 내 곁에서 아이 같기만을 바랐던 클로이는. 걷기 시작했고 몸 상태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없이도 클로이의 삶이 계속되는 것보다 슬픈 것은, 내가 더 이상 클로이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겠지요.
평생을 클로이의 엄마 역할에 만족하며 살았는데. 내 아이가 내 손을 떠나서도 저렇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는 클로이와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사람이 아니라, 클로이가 돌아보면 언제나 있는 그림자로서의 인생을 즐기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클로이를 통해 내 존재를 완성했으니까요. 그런 클로이가 이제 내 통제를 벗어났으니.... 나는 빈껍데기 조차도 남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정신 병원에 클로이 없이 이렇게 혼자 누워있자니 더더욱 그렇군요.
나의 아이는, 나의 전부였던 아이 클로이는 이제 내게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나는 그런데도 믿고 싶습니다. 이 아이도 내가 필요하니 찾아오는 것이라고요. 평생 함께 했던 이 엄마가 필요해서 내 아이 클로이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클로이가 나에게 복수를 위해 찾아오는 시간은 가장 두렵지만. 가장 기대되는 시간입니다.
그때만큼은 클로이가 내게 엄마.라고 부르는 시간이니까요.
[참고자료]
1. 책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2. 영화 [런]
[이 글의 TMI]
1. 마지막에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이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 결말을 약간 비틀어 서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관계라고 생각해보면 영화가 더 무서움. (나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음)
2. 코로나 여파로 이 무서운 영화를 영화관 통틀어서 나 혼자 봤음ㅠ
3. 물론 감독의 전작인 [서치]에 비하면 조금은 엉성하지만, 히치콕이 살짝 생각나는 영화였음.
4. 한 권의 책을 읽고 여러가지 버전의 글을 쓰고 있다. 다 쓰면 링크하겠음.(다 썼지롱)
5. 아이는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한낱 어른의 욕심으로 때리고 학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같다.
#내문제가아닌데내가죽겠습니다 #런 #크로스오버 #직장인취미
#유디세메리아 #아니쉬차간티 #사라폴슨 #키에라앨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