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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08. 2021

지영이는 복도 많지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그림출처

이 글은 영화/책 [82년생 김지영]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장 족같은 존재들이라고 해서 가족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죠.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

이 시국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이 말에 무릎을 탁 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미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오묘한 달콤함과 쌉싸름함을 다 맛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족이란 존재는 참 이상한 집단입니다.

부부를 제외하고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나를 위해 무한한 애정과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내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나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고 그거면 됐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 뻔한 단조로운 일상일 뿐인데 그 속에 처한 각각의 '나'를 늘 최우선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내리사랑은 부모만이 할 수 있다. 라던지, 부모 없으면 세상엔 혈육밖에 없으니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등의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닐 겁니다.


늘 이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가끔 뉴스 한편에 나오는 가족이라 불렸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여준 추악한 모습은, 가족이라는 단어가 올려져 있는 저울을 쓴 맛 쪽으로 기울이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가족은 너무도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서로에게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이자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아픔을 가진 관계가 되기도 쉽습니다. 서로가 가진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이기에, 더 효과적으로 상처 주는 방법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죠. 


전생에 원수였기에 다시 만난 것일까요, 현생에서 더 잘 지내라고 만난 사이일까요


이런 가족 간의 문제는 여러 형태로 발현되기 쉽습니다.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간의 무시, 혹은 알코올 중독이나 가족의 해체 등을 겪기가 쉽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라 함은 아마도 부모와 자식 간의 역할이 바뀌는, 혹은 가족 구성원 한 사람에게 너무도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 그중에서도 이런 의존적 관계가 가장 잘 일어나는 관계는 아마도 엄마와 딸 사이일 것입니다. 한국의 장녀들을 일컫는 'K장녀'라는 말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엔 첫 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죠. 그만큼 가족을 위해, 가정 형편을 위해 희생하는 제2의 부모(아마도 농번기 사회였다면 일하는 소 정도의 위치였을 것입니다. 사람인데도 말이죠.)와도 같은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듬직한 K장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미 도망칠 수 없는 사슬에 묶인 장녀들에게 기름까지 들이붓지요.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야지.라고만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기에다 그래도 너는 날 이해해야지. 네가 맏이(맏딸) 이잖니.라는 말로 안 그래도 힘든 맏이의 마음에 더욱 큰 짐을 지게 합니다. 가끔 참다 참다못한 장녀들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그래 내가 너한테도 이해를 받지 못하면 죽어야지. 라며 죽는소리를 하는 어머니들도 적지 않죠.



그림출처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의 언니이자 맏딸인 은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은영 역시도 원래 자신의 꿈이 있었죠. 지영보다 더 당차고 더 세상의 평등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은영 역시도 결국은 집의 재정 상태, 밑의 동생 둘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고 선생님의 길을 걸어갑니다.(하물며 영화마저도 장녀가 아닌 둘째 지영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죠.)


사뭇 씩씩한 척, 괜찮은 척 잘 버텨왔지만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는 동생 지영을 보며, 은영 역시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예전의 꿈들이 한 번쯤은 생각났을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에게도 지영처럼 질풍노도를 겪는 시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녀라는 이유로 그 모든 꿈이며 힘들었던 사건들이 몰라 기억 안 나.라는 말로 퉁쳐지는 것을 볼 수 있죠. 자신의 의지도, 꿈도, 그리고 삶의 방향도 적당히 바꿔가면서 살아왔을 K장녀 은영의 마음은 진심이었을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 속에 나오는 지영과 은영의 어머니는 그 두 딸에게 자신이 살아온 길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영은 참 부러운 가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맏딸, 이른바 K장녀가 아니었기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포기하고 교사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죠. 비록 지영이는 사회에서 두드려 맞을지언정 집 안에서는 자신을 커버해주는 사람들 덕에 두드려 맞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말미에서나마 지영의 모습이 밝아 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겠지요.


누구는 그런 관계가 가족이니까 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가족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는 반드시 동등한 관계여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다른 사람이 해 주기를 바라는 형태의 관계는 절대 건강한 관계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피할 수 없는 가족이기에 그런 관계를 외면할 수 없어, 의존적 관계에서의 조력자는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기회나 시간을 뺏아가는 것이 가족 안의 의존하는 어른이 바라고 노리는 것입니다.


가족이 늘 화목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다 존재하는 것만이 '올바른 가족'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가족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짐을 함께 들어줄 수 있는 믿음직한 상대가 되어줘야 합니다.  

가족이니까요. 바로 그것이 가족의 가장 올바른 의미는 아닐까요.



[참고자료]

1. 책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2. 영화 [82년생 김지영]


[이 글의 TMI]

1. 원작 소설의 결말은 정말 간이 뒤집어질 것 같음.

2. 김미경 배우님 사랑합니다. 제 사랑과 시간과 돈을 받으세요.

3. 가족간의 집착에 대해 쓴 같은 책 다른 서평은 여기로

4. 잘 안 써져서 꼬북칩 초코맛 한 봉 털었음.(평상시에 단 것 극혐) 술을 못 마시는게 이렇게나 다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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