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없넷있 1편:에놀라 홈즈
이 글은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병맛 주의.
영국 BBC에서 방영한 셜록홈스 시리즈를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분명 엄청 못생기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람이 주인공인데. 시즌 1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셜록이 그렇게 잘생겨 보일 수가 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생긴 오이의 탄생이죠. 근데 이제 잘생김이 수용성인.
컴버배치가 열연한 셜록 시리즈는 이제 셜록 유니버스의 베스트셀러이자 기준이 되어버렸죠.(개인적으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열연한 셜록도 좋아합니다.) 두 주인공 모두 마블에 취업을 해 할리우드로 일터를 옮긴 지금도 세계의 팬들은 이 환장의 조합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셜록홈스 처돌이인 제가 넷플릭스의 에놀라 홈즈를 처음에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화가 난다 였습니다. 마치 셜록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 남자 친구에게 집착하는 심정인 사람처럼요. 네. 앞서 말씀드린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접니다.( 컴버배치 빠입니다.) 다른 이유로 이 영화가 미웠다는 것은 아닙니다. 홈즈가 아닌, 홈즈 형제의 여동생이자 또 다른 탐정이라뇨. 그 정도면 집안의 직업 선택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닙니까. 아 물론 탐정 아닌 홈즈들은 상상도 할 수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기대는 하지만 더 큰 기대를 부르지는 않겠다 하는 예상을 가지고 저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홈즈 집안의 막내 에놀라가 말 그대로 증발해 버린 엄마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엄마의 행적을 찾기 위한 추리. 그리고 어김없이 일어나는 홈즈 집안의 고질병인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일도 놓칠 수는 없죠. 도움인 듯 도움 아닌 도움 같은 두 홈즈 오빠의 작지만 소중한 활약은 물론. 여정에서 만난 꽃미남 왕자님과의 꽁냥꽁냥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영국 의상과 풍경을 듬뿍 담고 있어 영상미도 꽤 쏠쏠합니다. 물론 영상미를 압도하는 헨리 카빌의 외모가 더 인상적입니다.
이 이야기는 긴박한 추리를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액션이나 박진감을 기대해도 실망합니다. 셜록이 성질머리 부리는 장면 이라던가 왓슨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기대해도 실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망했습니다. 영화 자체가 아예 재미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추구하는 점이 다르면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죠. 하다 못해 떡볶이도 밀떡인지 쌀떡인지 정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오락가락하니까요. 저는 아마 지랄견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홈즈와 그 지랄견의 목줄을 너무 자주 놓치는 주인 왓슨의 산책길 같은 이야기에 너무도 익숙해져있나 봅니다.
영화를 다른 측면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해서 나쁜 영화는 아니니까요. 영화는 시종 잔잔하고 예쁘게 흘러갑니다. 에놀라는 그 시대의 [보통 여자]들이 배워야만 했던 고리타분한 것들이 아닌 세상을 살아남는 데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엄마와의 추억을 가만가만 더듬어봅니다. 그 기억들을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죠. 어딜 가도 주짓수와 폭탄 만드는 법은 쓰일 수 있다는 걸 어머님은 그 시대 때 이미 아셨던 것 같습니다. 에놀라는 두 시간에 걸친 영화 러닝 타임 내내 조금씩 엄마가 사라진 이유를 이해하고 성장합니다. 저처럼 성질 급하신 분들은 그래서 엄마를 찾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라며 구시렁거릴지도 모릅니다.
물론 중간중간 예정된 액션이나 에놀라의 계획을 막아서는 장애물들이 등장하지만 지랄견의 산책이라기보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의 적응기 정도의 수준입니다. 미모 포텐 터지는 남자 주인공과의 꽁냥꽁냥을 보면 저절로 엄마미소를 지을 만한 순수함과 풋풋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헨리 카빌이나 헬레나 본햄 카터를 데려다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은 약간 아쉽지만. 영화가 오히려 어디에,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었는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시즌제를 염두로 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죠.
OTT매체가 구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택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시즌제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흐름이 반가우면서도 힘듭니다. 다음 시즌을 이제 오시려나 저제나 오시려나 하며 기다리는 것은 둘째로 미뤄두죠. 마치 모든 드라마가 이건 예고편이고 뒤에 더 있어. 라며 징검다리를 만드는데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이런 분야에서 가장 강약 조절을 잘하는 마블마저도 캡틴 마블이나 토르 시리즈를 징검다리처럼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게 만들죠. (물론 저는 이 무거운 토르 시리즈도 좋아합니다)
아. 오매불망 찾던 엄마를 결국 찾냐고 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못 찾습니다. 엄마가 에놀라를 찾아오죠. 엄마가 왜 에놀라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는지. 엄마가 이 험한 세상에 딸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지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본보기는 전작(?) [유령신부]에서 오히려 더 잘 그렸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머슴 같은 여주인공이 남장을 하면서 겪는 클리셰들. 뭐 예를 들면 물에 빠졌다가 여자인걸 알게 된다던가 다친 걸 치료해주다가 여자인걸 동굴에서 알게 된다던가. 뭐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저는 넷플릭스 주식을 당장 팔아버렸을 겁니다.
이 영화는 백종원표 순둥이 라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실패할 확률이 낮은 셜록이란 콘텐츠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추리도 조금. 로맨스도 조금. 감동도 조금 넣었죠. 하지만 이 순둥이 라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순한 맛 라면을 써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원래 '잘 팔리던' 매운맛이 아니라요. 저는 그 매운맛 라면을 늘 먹었고 선호하는 사람이기에 순한 맛의 이 영화가 심심하게 느껴졌을 뿐. 라면은 라면이죠. 언제 먹어도, 뭘 곁들여도. 면의 꼬들함과 국물의 염도만 맞는다면 적절한 만족을 늘 선사하는 라면 말입니다.
[이 글의 TMI]
1. 헨리 카빌 정말 잘생겼어. 하지만 내게 007은 다니엘 크레이그뿐이야.
2. 원작을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서 다시 읽어보려 함.
3. 개인적으로는 로맨스가 이것보다 더 심했다면 별로였을 거라고 생각함.
4. 이렇게 예쁜 영화는 언제든 환영. 헬레나 본햄 카터도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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