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피오카 펄이 쏘아 올린 작은 공
2월 말에 시작해 3/1일까지 이어지는 작은 연휴는 제겐 여러모로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새로 이사 간 집도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초보 칼럼니스트가 원고를 넘겨야 할 틈을 보장해 줄 찬스 말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잠시 연락이 끊긴 친구와도 만날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겨 기분 좋은 외출도 할 수 있었죠.
연휴의 시작은 계획보다 더 아름답고 신나는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읽어야 할 책도 다 읽었고 어딘가 올리거나 보내야 할 글도 정리가 다 끝난 상황이었죠. 박스도 뜯지 못했던 수납장 조립은 물론 이케아에서 만수르 놀이를 실컷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취생의 로망을 한껏 실현하기도 했죠. (참고 1)
그뿐인가요.
친구를 만나서는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까지 왕창 떨고. 2만 보도 넘게 걸으며 실컷 산책까지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이사를 축하한다며 또 다른 친구가 선물해 준 르쿠르제 티팟까지 택배로 받아볼 수 있었죠.(참고 2) 이보다 완벽한 날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저는 집에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스르륵 잠드는 것 외에는 없었죠.
그때 심술쟁이 운명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버뮤다 삼각지에 들어간 사람처럼 집에만 가면 모든 사람과 연락이 두절되는 제가 핸드폰과 가까이 있는 날은 오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운명이 작정하고 던진 카톡 하나는. 제가 가진 모든 좋았던 기분을 와장창 무너뜨리다 못해 제가 그 자리에서 몇 분 동안이고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엔 지하에 소위 말하는 편의 시설들이 모여 있습니다. 직원 식당을 제외하면 그 가격에 먹기는 아까운 메뉴들이 있는 식당, 그리고 빵집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 삭막한 지하에 저번 주에 공차와 만두가게, 떡집이 생겼었죠. 저처럼 실험 때문에 끼니를 놓치기 쉬운 사람에게는 밥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매번 빵을 오후 세시에 점심이라는 이름으로 먹으면 진짜 서럽거든요.
그날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지금 먹자니 시간이 애매하고 나중에 먹자니 저녁시간일 것 같은데 구내식당은 이미 문을 닫아서, 공차라도 먹자는 마음으로 공차에 들렀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픈 빨 덕에 너무도 힘들어 보이는 공차 직원이 참 안쓰럽다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하는 두 분 다 코로나 확진이었던 거죠.
나는 회사가 명시한 기간에 공차에 간 적이 있다. 그러니 지금 회사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라는 사실 정리가 머릿속에 되자마자. 저는 마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 변신이라도 하듯이 허둥지둥 거리며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미 그때가 열시에 가까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운동화를 신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 병원까지 가야 했죠. 이러려고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한 게 아닌데 말입니다.
회사로 뛰는 내내 너무 무서웠습니다.
오픈한 지 겨우 일주일 된 곳이고. 월급날도 끼어 있었으니 다들 궁금한 마음에, 혹은 새로운 간식을 먹겠다는 마음으로 많이 갔을 테니까요. 제가 저의 망할 블랙 밀크티 with 펄을 15분을 기다렸으니. 그 사이에 몇 사람이나 끼어 있었을지를 직접 세어보지 않아도 그 인기를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죠. 원래 공차 잘 먹지도 않는데. 왜 하필 그날따라 그걸 부득부득 먹겠다며 15분이나 기다렸을까.라는 생각에 제가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때까지 뛰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제 앞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전에 검사를 받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을 합하면, 거의 전 직원에 가까운 인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겠구나.라는 추론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죠. 기우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지만. 늘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죠.
정말 절망에 가까운 기분으로 줄을 서 있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몰려있는 바람에 저는 내일 오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야 뭐 집이 가까우니 다시 가는 거야 괜찮지만, 한 시간 반 걸려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의 항의와 의료진의 설명이 뒤엉켜 정말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현장이었습니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그 뒤로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이었을까.라는 생각이 저를 점령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온갖 가능성들과 바이러스의 Replication cycle이 미친 듯이 돌아갔죠. 오늘 만난 친구가, 오늘 저와 스친 사람들이. 혹시라도 나는 괜찮지만 아프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저는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만 쓴 채 다시 병원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야 했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전부였으니까요.
검사 과정은 어때요?;몰라 그냥 무서웠어요.
우선 저는 직원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료소에 찾아가시는 분들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병원 지하에는 직원용 선별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직원들의 검사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접수증에 제 인적 사항 및 언제 문제의 장소에 갔는지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렸죠.(오른쪽 사진) 이미 인고의 밤을 기다린 제게 이 정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제 차례가 오면, 제 인적 정보를 확인한 후(중간 사진) 제 샘플에 붙이게 될 스티커를 받게 됩니다.(왼쪽 사진) 그리고 또 한 번 기다려, 이젠 대망의 코가 없어진다는 그 줄에 서면 됩니다.
거기 모인 직원들 모두 혹시라도 있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전우애와 비장함이 함께 감도는 장소였죠.
검사하는 거 아파요?;원래 사람 콧구멍 하나 아닙니까?
검사하는 사람이 제 앞에 세 명 남았을 때. 그때부터 심장이 제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부정맥 있다고 말하고 빠질까.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호기심은 많아 면봉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는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 제가 피 뽑는 장면도 못 보는 쫄보이기 때문에 그 호기심은 조용히 접어두기로 했죠.
두려움이 너무 컸습니다. 검사가 아프다는 말을 하도 듣기도 했지만, 사실 다들 꾹 참아내는데 저 혼자 울지는 않을지. 흑 역사를 제조를 하지는 않을지 같은 두려움이 더 많았죠.
아무 거리낌 없이 나대던 두려움은 제 눈앞에 그냥 봐도 한 뼘은 되어 보이는 면봉이 보이는 순간 정말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눈도 자연스럽게 감기게 되더군요.
어떤 기분이냐고요?
수영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가끔 코로 물이 들어가서 눈과 코 끝까지 물이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 말입니다. 다른 비유를 해드리자면. 저처럼 비염이 있으신 분들은 콧물을 팽팽하고 풀 때 그 콧물의 뿌리가 있는 곳까지 시원하게 코를 푼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거기까지 면봉이 들어가요.
그뿐입니까.
들어간 상태에서 빙글빙글 돕니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면 혼나니까 그냥 한방에 끝내시길 바랍니다.
아직까지 한 쪽 콧구멍이 말을 듣지 않고 혼자 콧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요. 힝.
두려움.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두려움, 혐오, 책임자 색출 등
날도 좋은데 혼자 슬슬 걸어가죠 뭐. 혹시라도 버스 타서 다른 사람들 피해 보면 안 되니까요.
한 시간 반 걸리시잖아요.
이러려고 내일 쉬라고 하나 봐요. 하하. (참고 3)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 직원의 대화였습니다. 울컥했어요.
검사하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을 그 당시에는 짜증이 났습니다. 욕이 바로 튀어나왔죠.
저는 일단 잠들기 위해 잠옷을 입은 상태였고, 다음날 약속이 있었는데 검사 결과가 약속시간 전까지 나올 확률이 희박했기 때문입니다. 순간 진짜 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래도 가는 것이 맞는다는 이성적인 생각을 겨우 하고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뛰었던 것이죠.
쉬는 날에도 불려 나와 일을 해야 하는 의료진들을 보며, 흔적처럼 남아있던 짜증은 정말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빨리 협조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 역시 의료계의 귀퉁이에서 일하고 있기에, 샘플링(Sampling:샘플을 채집하고 쓸 수 있게 준비하는 작업)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공차 직원을 욕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너무 늦어진다고 투덜거렸던 사람은 첫날 너무 먼 곳에서 오신 분들 외엔 없었죠. 다들 상냥하고 친절하고 신속하게 대처했습니다.
직원분들의 태도 역시 저를 울게 했습니다.
다들 고생하시죠. 아유 쉬시는데 불편하셨겠어요.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주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아직까지 이런 사태에도 인간성은 나 빼곤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충분했습니다.
불과 몇 주 전 보았던 왓챠 체르노빌이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처하는 법에 따라. 어떻게 보면 정말 큰일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이 이렇게 빨리, 그리고 피해가 적게 수습이 될 수 있구나.라는 맘에 또 괜히 울보인 저는 코가 찡해졌죠. 그때부터였나요. 제 콧구멍 하나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게.
그만 말하고 마무리합시다;코로나 검사 두 번만 했다가는 코 없어지겠다.
저는 일의 특성상 마스크와 손 씻기가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고 보니 무서운 것은 병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너무도 커다란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큰 사태이긴 했지만요.
작은 소동이 있은 후. 저는 좀 더 크고 경건한, 올바른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코로나가 퍼진 것이 아니며.(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안전 수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의료진의 말은 정말 제발 부디 꼭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왜 미안하다는 사과를 그분들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부디 종식되는 날까지.
모두 개인위생과 건강을 반드시 챙기시길. 그리고 상식적인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 1
오랜 기숙사 생활 덕에 샤워가운 없으면 견디지를 못함. 집에 오자마자 현관에 외투 걸어두고 양말 벗고 바로 샤워하러 들어감. 두꺼운 샤워가운 입고 돌아다니다가 오일+보디로션 바르고 흡수되면 잠옷 입고 머리 말리고 잠드는 것을 제일 좋아함. 오후 9시 이후로는 수면 리듬 때문에 집 전체에 무드 등 만 켜놓는 편.
참고 2
영국에 있었던 영향인지, 티타임에 매우 진심인 편. 티백보다 잎차 좋아함. 텀블러는 종류별로 갖고 있지 않지만 컵은 종류별로 갖고 있음. 여름엔 더치커피를 와인잔에 만들어 먹는 것 최애.
참고 3
검사를 받기 전후에 일을 하지 말라거나 격리하라거나 하는 말은 없었음. 아마 밀접 접촉자가 아니었고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도가 낮을 거라고 판단했을 듯.
[이 글의 TMI]
1. 진짜 한 이틀 정도는 콧구멍 하나가 말을 안 들었음. 비염 있는 나에겐 뭔가 뻥 뚫린 느낌과 컨트롤이 안되는 느낌이 함께 오는 신박한 경험이었다.
2. 3월 Golden week원래 다이어트였는데 백신 나와서 백신 특집으로 바꿀까 생각중임.
3. 일주일 동안 최소 1.5만보 걸어서 2킬로 빠짐.
4. 딸기가 이제 맛이 없어지는걸 보니...봄이 오긴 오나 봄.
5. 자취 짱. 매일 반찬 해먹는 재미에 산다. 내일은 냉이 된장찌개임.
6.옆집 강아지 임신했다!!!!!!!!!!!! 한 마리 주신다는데 이미 내가 개라서. 거절함.
7.목요일엔 책(OKR), 토요일엔 미나리 리뷰가 올라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