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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16. 2021

번지점프를 하다

영화 [화차]추천

이 글은 영화 [화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알고 봐도 재밌는 영화에욥.


사진출처:한국일보/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라면서요. 좀 봐주지 그랬어요.

결국 그런 것이었다.

한껏 고개를 들어 쳐다보아야 겨우 시선이 닿을 만큼 높은 찬장 안의 사탕 단지처럼.


내가 발을 아무리 구르고 손을 뻗어도. 내 힘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의자를 가지고 와 다시 똑같이 행동해도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행복 그까짓 거. 내가 먹지 못하는 포도이니 분명히 시큼해빠진 포도라고 생각하고 침 한번 탁 뱉고 돌아서야 했는데. 터덜 거리는 발걸음으로 돌아가던 중. 끝내 미련이 남아 뒤돌아 본 것이 몹쓸 시작이었다. 나처럼 살아온 인생이라도 한 번쯤은 누려볼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것부터가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없는 것을 탐한 벌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애써 이룩한 나의 작고 완고한 행복은 그렇게 내게 남아있던 희망까지도 모두 앗아갔다. 원래 있던 자리에만이라도 있게 해달라고 운명에게 그렇게 빌었지만. 이 모든 것은 내 욕심으로 인한 고집이었다고. 운명은 단호히 내게 등을 보였다.


사진 출처:브런치/ 이 장면은 진짜 김민희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명장면이었음.

한 번 맛본 다디단 행복의 맛은 영혼에 박힌 것처럼 잊을 수 없었다. 금지된 단 맛에 대한 단념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다시 내 혀에 감돌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다시 들춰볼 수도 없을 만큼. 내 과거에서 풍기는 냄새는 지울 수도. 또 덮을 수도 없었다.


피와 살의 냄새는 마치 내 과거의 냄새만큼이나 비리고 역겨웠지만. 이 냄새라면 내 과거의 냄새를 가리기에 충분했다. 그 광경을 마주 보는 것이 힘들고 역겨워 모든 것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나의 없어져 버려야 하는 과거를 묻어버리기엔 이보다 더 좋은 장소와 시간은 없었다. 지금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상기하며. 그 지옥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올라탈 화차의 고삐를 두 손에 쥐었다.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는 그 과거의 냄새가 나를 쫓아오지 않을 때까지.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사진 출처:이투데이/사랑마저도 찌질해

내가 당신을 만난 것 역시. 이 화차가 달리는 궤도 안의 정거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만났을 때. 드디어 원하던 궤도로 돌아왔다고 믿었다. 이제는 내가 이 화차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있을 만큼 익숙해졌으니, 다시 행복을 손에 쥐어도 될 것이라는 마음이 나를 조금씩 물들였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올라탄 이 화차(火車)의 종착역은 불구덩이였다. 여태 그것을 부정하려 그렇게도 애썼지만. 어째서인지 모든 것을 인정해버리고 나니 우습게도 마음은 차분해졌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뛰어내리는 이 순간에도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아니. 당신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 높이까지 올라오는 일도 없었을 테지. 당신과 함께 했던 덕분에 행복했던 높이만큼. 내가 당신에게 닿게 하기 위해 쌓아올렸다 믿은 그 높은 탑 위에서. 나는 그 어떤 불만도 없이 그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내게 없는 그것을 탐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과거는 현재와 미래까지 모두 이 화차에 태워 나를 불태우며 추락하게 한다. 나는 그저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추신.

배우의 사생활은 그렇다 치고 영화만 보기로 했습니다. 원작도 재밌어요.



[이 글의 TMI]

1. 엄마 손 파이 오래간만에 먹었는데 맛있어.

2. 오늘 체력 진짜 바닥.

3. 파인애플도 맛있네.



#미야베미유키 #화차 #김민희 #영화 #영화추천 #이선균 #짜증계의스칼렛요한슨 #조성하 #변영주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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