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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Aug 05. 2019

우울증에 걸린 뇌를 가진 연구원.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나만의 치열한 전투.

나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우울증을 매우 심하게 앓았다. 

내 눈은 내가 목을 메달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만 유심히 찾아다녔고, 영국의 의료제도상의 혜택으로 무료로 상담 치료를 받았으며, 하루에 두세번의 safe call(자살위험이 있는 우울증 환자들을 케어해주는 시스템)을 받아서 네 괜찮아요. 약 먹었어요. 다음 예약은 며칠 뒤에요. 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해야했다. 나중엔 급기야 내 머릿속에서 왜 죽지 않니? 라는 목소리가 들려 처방받는 약의 종류도, 강도도 늘려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내 우울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정신과 의사 앞에서 눈물 콧물 쏟으며 내 이야기를 하고  약을 처방받는 그 지긋지긋한 짓거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추면 안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짓거리"를 하지 못하면 나는 아마 어디든 목을 메달아 버렸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의 뇌는 약물 치료의 후유증 때문인지 집중도 예전처럼 할 수 없고, 문해력도 형편없이 떨어졌으며,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더듬을 때도 매우 오랜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고,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우울증에 걸린 뇌를 가지게 되어 버렸다. 나는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 예전처럼 사고할 수 없음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나는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직은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그에 대한 사고를 넓혀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한 힌트를 잡아 실험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해야하는데, 그것을 할 수 없다니. 이보다 더한 사형선고가 어디에 있을까? 


그대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내 직업에 대한 애착이 컸고, 그 애착의 크기 만큼이나 실망도 컸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내 스스로가 더 이상 연구직에 종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연구직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곧잘 하기도 했다. 천직이라며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칭찬을 아무리 받아도, 공허하기만 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힘들어도 싸워가며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이 뇌를 가지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함께 울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혹시라도 천직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다른일을 당장에 그만두고,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플래그와 작은 포스트잇을 왕창 샀다.그 당시 내 상태는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내가 어떤 것까지  찾아봤는지, 어디까지 연결고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연속적인 사고"가 전혀 되지 않았으므로, 내 모든 기억의 발자취를 남겨 날짜와 시간을 적어 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날이면 아 내가 어제 여기까지 했구나. 아 이런걸 찾아봐야겠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알람으로 알려주는 것 처럼. 


물론 어려웠다. 

울며불며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논문을 새벽 네시 반에 찢어발기고 침대로 몸을 던져 짐승처럼 울부짖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 뿐이랴. 대체 왜 이런 "사소한 것" 하나 처리하지 못하느냐, 정신이 딴데 가 있는 것 아니냐,  왜 멍청이가 되어서 돌아왔느냐 라는 말을 모든 연구실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들으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기를 몇 달이고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 평소처럼 늦게 남아 혼자 논문을 읽다가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비웠는데, 역시 아직 집에 가지 않았던  상사가 내가 붙여놓은 포스트잇 가득한 논문을 보았나보다.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손에 묻은 물기를 툴툴 털며 들어오는 나를 꼭 안아주며 말을 하지 이것아. 라고 말해주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하게 보였을 전투가, 내게는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아마 그 상사도 어렴풋이나마  알았으니, 아니 느꼈으니 그렇게 말해주었으리라. 


안타깝게도, 

그 전투는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다.아마 영원히 진행될 전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전투에서 조금씩 승리하기 시작하면서(여전히 패잔병이 될 때가 많지만) 나는 조금씩 무표정이거나 울상일 때 보다 작은 미소라도 보이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포스트잇의 위치나 내용을 기억해 내는 일도 많아졌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라는 말을 하고 마치 깃털처럼 포스트잇이 나부끼는 논문을 꺼내 아 이건 이렇게 했네요. 라고 빨리 받아칠 수도 있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 다른 직원들이 알 리는 없겠지만, 내가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것은 아는지 내게 힘내요. 라던가 잘 하고 있어요. 라는 말을 해주는 일도 많아졌다. 


아직까지도 나는 남들이 쉽게 처리하는 일도 제대로 혹은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는데 있어 육체적인 강도 보다 정신적인 강도가 훨씬 더 크지만. 이제 나는 이 전투를 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느끼고 있고, 이 전투의 목적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기꺼이 말 할 수 있다. 싸울 것이다. 나는 싸울 것이며, 져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웃을 수 있고, 그리고 그 웃음 한 번이 수백번의 패배를 견딜 수 있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추신.

매번 제일 작은 크기의 포스트잇만 사다가, 이제는 제법 포스트잇이네. 라고 부를 수 있는 크기의 포스트잇을 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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