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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Sep 22. 2019

[연구원의 삶]2. 너는 안 쉬니?

그러지 마세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속상하니까.

공대를 졸업한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을 때였다. 

우린 주말에 그나마 시간이 나서 그때 시간을 쪼개 데이트를 했다. 그러나 늘 그 약속을 깨는 쪽은 7:3의 비율로 나였고, 나는 늘 미안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근데 왜 그렇게 주말에 출근해야 해?"

라는 말에 나는 세포와 쥐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을 하지만, 1+1의 답이 반드시 2가 되어야 하는 공대 남자 친구는 그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날도 슬슬 목소리가 높아지며 싸우게 되었고 나는 결국 차가운 소리로 남자 친구에게 가시가 가득 박힌 문장을 내뱉아 버렸다. 


"너는 컴퓨터에 on/off가 있지만 세포랑 쥐들은 그렇지 못해. 컴퓨터 처럼 생명이 뭐 2진 법인 줄 알아?"


그렇다. 

내가 다루는 세포나 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내가 주말에 약속이 있다고 해서 내다 버릴 수도, 다 죽여버릴 수도 없는 상대들이다.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스케줄을 잘 짠다고 해도, 주말 이틀은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너무도 긴 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 실험과 관련된 세포나 쥐라면, 주말이 대수랴. 밤늦게라도 그들을 돌봐주고 실험 결과가 잘 나오기를 빌고 빌고 또 빌기만 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꽤 생긴다. 여기까지도 사실 괜찮다.마치 모든 세상 사람들이 주말이나 빨간 날에 출근하지 않는데 나 혼자만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연휴를 온전히 쉴 수 없어서 집에 잘 내려가지 못할 때는 말이 달라진다. 


"너는 안 쉬니?"

라는 말을 부모님이 그리움을 담아 건네실 때면, 전화기 너머로 흘러 나오는 목소리일 뿐인데도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충분히 쉬고 있다 라는 말도 부모님께는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변명을 해야할 지 생각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서늘함이 가시지 않는 것이 기분탓 만은 아닐 것이다. 


논문 읽기, 그리고 최신 과학 기사들도 읽어내며 연구에 대한 감이나 소식을 꿰고 있는 것이 연구원이 할 일이라면 할 일이다.


쥐나 세포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연구원의 "빨간날"들은 다른 일들로 가득하다. 대표적인 것이 논문을 읽는다거나, 다음 프로젝트 구상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연구직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생활을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다들 말 하는 듯 하다. 가끔 새벽까지 공부를 해도 모자라거나 답을 얻지 못 할때도 있어 그럴때면 소위 하는 말 처럼 "현타"가 올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인 것을. 정작 쉬고 싶은건 나니까 그런말 좀 하지 말지. 하고 궁시렁 거린 후에는 다시 묵묵히 일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일상을 지키는 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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