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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의 삶]2. 너는 안 쉬니?

그러지 마세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속상하니까.

by Munalogi

공대를 졸업한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을 때였다.

우린 주말에 그나마 시간이 나서 그때 시간을 쪼개 데이트를 했다. 그러나 늘 그 약속을 깨는 쪽은 7:3의 비율로 나였고, 나는 늘 미안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근데 왜 그렇게 주말에 출근해야 해?"

라는 말에 나는 세포와 쥐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을 하지만, 1+1의 답이 반드시 2가 되어야 하는 공대 남자 친구는 그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날도 슬슬 목소리가 높아지며 싸우게 되었고 나는 결국 차가운 소리로 남자 친구에게 가시가 가득 박힌 문장을 내뱉아 버렸다.


"너는 컴퓨터에 on/off가 있지만 세포랑 쥐들은 그렇지 못해. 컴퓨터 처럼 생명이 뭐 2진 법인 줄 알아?"


그렇다.

내가 다루는 세포나 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내가 주말에 약속이 있다고 해서 내다 버릴 수도, 다 죽여버릴 수도 없는 상대들이다.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스케줄을 잘 짠다고 해도, 주말 이틀은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너무도 긴 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 실험과 관련된 세포나 쥐라면, 주말이 대수랴. 밤늦게라도 그들을 돌봐주고 실험 결과가 잘 나오기를 빌고 빌고 또 빌기만 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꽤 생긴다. 여기까지도 사실 괜찮다.마치 모든 세상 사람들이 주말이나 빨간 날에 출근하지 않는데 나 혼자만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연휴를 온전히 쉴 수 없어서 집에 잘 내려가지 못할 때는 말이 달라진다.


"너는 안 쉬니?"

라는 말을 부모님이 그리움을 담아 건네실 때면, 전화기 너머로 흘러 나오는 목소리일 뿐인데도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충분히 쉬고 있다 라는 말도 부모님께는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변명을 해야할 지 생각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서늘함이 가시지 않는 것이 기분탓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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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읽기, 그리고 최신 과학 기사들도 읽어내며 연구에 대한 감이나 소식을 꿰고 있는 것이 연구원이 할 일이라면 할 일이다.


쥐나 세포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연구원의 "빨간날"들은 다른 일들로 가득하다. 대표적인 것이 논문을 읽는다거나, 다음 프로젝트 구상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연구직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생활을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다들 말 하는 듯 하다. 가끔 새벽까지 공부를 해도 모자라거나 답을 얻지 못 할때도 있어 그럴때면 소위 하는 말 처럼 "현타"가 올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인 것을. 정작 쉬고 싶은건 나니까 그런말 좀 하지 말지. 하고 궁시렁 거린 후에는 다시 묵묵히 일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일상을 지키는 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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