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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Sep 15. 2019

[명절을 보내며]
보내지 못한 아빠의 편지

이과 딸에게는 비효율적인, 하지만 언제나 나를 무너뜨리는 부모의 사랑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 오래된 내게는 명절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대충 일 년의 반이 지났구나 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긋지긋한 기차표 예매 전쟁에 반드시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자를 생각하면 

부모님께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 한 딸로 지내 온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후자를 생각하면

아침 다섯 시부터 티켓팅 하기가 싫어 무슨 핑계를 대고 내려가지 말까 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늘 전자의 마음이 훨씬 컸고, 명절에라도 집에 내려가서 쉬어야지.라는 생각에 귀성길의 피로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대체로 3일 이상의 휴일인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나의 일과는 거의 고정되어 있다시피 한다. 하루 정도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그간의 회포를 푸는데 쓰고, 나머지는 자다 일어나다 자다 일어나다를 반복하다 부모님이 바리바리 싸주신 음식들을 캐리어에 잔뜩 싸들고는 인사를 하고 올라오곤 한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나서 돌아서자마자 눈물이 울컥하는 것을 꾹꾹 참아내면서.


그런데 이번 명절은 달랐다.

이번 명절은 후자의 마음이 더 컸다. 그것도 훨씬. 그래서 내려가기 싫었다. 할 일도 많았고, 머릿속도 복잡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냥 내 방에서 우울하고 지친 마음을 쉬고 싶었다. 명절이라 다 고향에 내려가 텅텅 비어버린 서울의 내 방에서 홀로. 


그래도 부모님께 가고 싶지 않다 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서 일이 연휴 때 있을 것 같다부터 시작해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라는 말을 하며 부모님의 입에서 먼저 그럼 내려오지 말고 쉬어.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서운한 말투로 어떻게라도 내려올 수 없느냐, 티켓이 없으면 우리가 올라가겠다 라는 말을 하셨고, 그 지옥 같은 귀성길에 나의 고집 때문에 온 가족이 서울까지 올라오는 참사를 막기 위해 나는 결국 어떻게 해서든 티켓을 구해서 내려가 보겠다 라는 말로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겨우 구한 기차표는 

집으로 갈 때는 입석, 다시 서울로 올 때는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였다. 그 표를 보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보다 이걸 타고서라도 내려가야 하는 이 상황 때문에 화가 나기만 했다.


다행히 서울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탄 덕에 입구 문 바로 옆에 있는 보조의자에 앉아 책까지 읽으며 여유롭게 내려올 수 있었지만. 그 입석이라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F5를 눌러대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순간들이 생각 나 내려오는 모든 순간이 다 짜증 나기만 했다. 입석 특유의 숨 막힘과 눈치싸움도. 모든 순간이. 그냥 내게는 비효율적일 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내려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과 역에서 만나기로 한 장소가 엇갈려 그 복잡한 부산역에서 10분이 넘게 빙빙 돌았고, 결국 서로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면서 열 통에 가까운 전화를 해서야 겨우 집으로 가는 차에 탈 수 있었다. 그뿐이랴. 부모님과 밥을 먹으러 간 한 그릇에 13,000원짜리 곰탕은 오늘따라 맛이 없다는 엄마의 말도 들어야만 했다. 술이 취해 떠들어 대는 아저씨들이 두 테이블이나 있는 것은 덤이었고. 


이 모든 상황이 비효율적이고 짜증이 나기만 하는 나는,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죽은 것처럼 잠만 자다가 새벽이 되면 슬그머니 일어나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다 다시 또 새벽녘이면 잠들기를 반복했다. 한 이틀을 그렇게 푹 자고 나니, 짜증도, 그리고 귀성길의 여독도 조금은 풀려 내 마음도 좀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시 새벽이 왔을 때, 하루 종일 너무 많이 자서 절대 새벽 다섯 시 전에는 잠들지 못하겠구나.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나는 다음 주부터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집안을 샅샅이 뒤지며 메모할 만한 커다란 종이를 찾았다. 이놈의 집구석은 종이도 없나.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집어삼키면서.


그렇게 겨우 찾아낸 종이 사이에서, 나는 힘없이 떨어지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영국에 갔을 때, 아빠가 내게 소포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썼던 편지였다. 그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 변변치 않은 살림에 자기 스스로 돈을 모아 영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첫째 딸을 위해 쓴, 하지만 결국은 보내지 못한 그 편지. 내가 받던 아빠의 편지는 늘 고친 표시 하나 없이 깔끔했었는데, 이 종이에는 멋들어진 아빠의 글씨에 줄이 벅벅 가 있는 상태로 많은 문장들이 써져 있었다.


아빠는 내가 영국으로 떠나는 날. 그렇게 많은 비가 왔다고 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거기서 잘 지내라고 말은 하지만, 모든 것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빠의 문장은 결국 이기적이고 효율 외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 모자란 딸을 울리고야 말았다. 얼마나 고쳐 썼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며, 담담해 보이려고 노력했을까.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몇 번이고 하늘을 쳐다봤을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이틀 전 갔던 그 곰탕집에 가서 나의 수척해진 모습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해 결국 곰탕집 밖으로 나가 줄담배를 피우고 오던 아빠의 모습이 다시 생각이 나서. 나는 새벽 내내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 되었을 때, 아빠는 또 이 비효율적인 건 못 참는 딸을 데려다 주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나를 부산역까지 데려다주었다.새벽 내내 아빠가 잠을 설쳤음을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빠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부산역에 도착해 트렁크를 내리고 씩씩한 척 손을 높이 들어 빠빠이.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부모라는 이름의 이 비효율적인 생명체들은, 자식새끼가 이렇게 못나고, 갖다 버려도 시원찮을 인성을 가졌는데도 단지 자신의 자식이라는 이유 만으로 저렇게 그리워한다.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 안달하고, 내 새끼가 기죽을까 봐 노심초사 걱정한다. 빠빠이 라는 말 한마디 밖에 못하는 딸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얼른 가라며 손을 흔들지만, 표정에서는 읽을 수 있다. 내려와서 잠만 자는 딸래미라도 좋으니 곁에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저 편지에서 그랬던 것 처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부터 덧줄을 죽죽 그어가며 삼키는 그 말들을.느낄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이 비효율적인 생명체들을 위할 수 있을까.

서울로 가는 기차안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지금 가진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그것이 불가능 하다면, 가끔, 혹은 자주라도 내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쓴 그 편지를 몰래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를 무너뜨린 이 무식하기 짝이없는 비효율자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캐리어를 낑낑대며 들고. 짐을 풀며 겨우 울음을 그친 목소리로 무사히 서울로 올라왔음을 부모님께 알리며. 나는 이 글을 쓴다. 


언젠가는 이 비효율자들을 효율적으로 모시기 위해.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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