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부침하다 효녀된 사연

일상 에세이

by Munalogi

어제 친구들이랑 오래간만에 고기를 많이 먹어서. 오늘은 그냥 두부 부침이 먹고 싶었어. 그래서 두부 한 모를 적당히 썰어다가 키친타월 위에 올려놓았는데. 문득 내가 자취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코웃음 치던 그때가 떠오르더라.


그때의 나는 내 안에 가득했던 열등감을 누구에게라도 덤터기 씌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엄마가 나를 자취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애로 취급한다고 생각했어. 학자금 대출 때문에 엄마의 동의가 필요해서 내가 전화를 했을 때도. 엄마는 이제 와서 대학 가면 뭐 하냐며 소리 질렀던 직후였으니까 더더욱 그랬지.


그래서 더 보란 듯이 자취를 하고 싶었고, 내 바람대로 나의 첫 자취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얼렁뚱땅 시작되었어. 진짜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시작이었네 엄마.



%EB%91%90%EB%B6%80_1.PNG?type=w773 자취라는 건 내겐 정상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었어. 어른의 정상.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해방감이 클 줄 몰랐어. 나의 매일은 엄마의 잔소리와 타박이 사라진 천국 위의 하루하루가 되어 갔으니까. 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었고.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나의 시간을 자유와 맞바꾸며 나는 그렇게 자취에 최적화된 사람이 되어갔지.


힘들지 않았어.


집안이 쓰레기로 넘실거려도 내가 원하는 때에 치운다.라는 변명을 내세우며 내게 맞는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게 맞는 시간은 지금이 아니라며 모든 것을 미루는 맛이 있었으니까. 이게 자취구나. 이게 다 큰 사람의 삶이구나.라며 나는 내 스스로도 속이는 자취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히 자취 스킬은 업그레이드되었고, 나의 집은 계약이라는 이름하에 때가 되면 바꿀 수도 있었어. 그리고 다행히 집안에 돈 말고 쓰레기와 먼지는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된, 제법 깔끔 떨 줄 아는 프로 자취러가 되어갔어. 덕분에 집은 깨끗해졌고, 자취라는 것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조금씩 더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엄마가 기계처럼 해치우던 그 모든 일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 시작했어.



image.png?type=w773 그냥 이대로 세탁기에 들어가고 싶었다.

새벽 두 시를 넘은 시간에 퇴근한 날이었어. 그냥 대충 씻고 자려고 욕실 서랍을 열었는데. 수건이 달랑 한 장 밖에 남아있지 않았더라고. 그때 소리치던 엄마가 생각났어. 고된 식당 일을 하고 와서 시래기처럼 몸이 흐물흐물해졌는데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빨래를 왜 돌리지 않았냐고 소리치던 엄마가. 나는 그것마저도 엄마가 날 못 부려 먹어서 안달이라고 생각해서 더 큰 소리로 화를 냈던 날이었지. 엄마와 쓸데없는 감정싸움하다 화가 난 내가 가계약했던 그 원룸으로 당장 내 짐을 옮겨버린 그날.


그 누구도 집안일을 대신해 주지 않아 원망스러웠을 거야. 그런데 그마저도 자신의 부지런하지 못함을 엄마는 탓했을 거고. 누우런 베란다 조명 아래서 겨우 화를 누그러뜨리며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세탁기 버튼을 눌렀겠지. 내가 집을 박차고 나가느라 엄마의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아마 지금의 내 모습, 그리고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화나 고 쓸쓸하고. 그리고 어딘가 울컥하기도 했겠지만. 드러내고 울 수도 없는 그날의 엄마를 만든 덕에. 내가 이렇게 벌받고 있나 봐.


아이고. 두부 타겠다.




SE-70113e83-1e81-4f5c-a7a3-12651359ba63.png?type=w773 손 큰 건 근데 엄마 이게 유전인 거지? 뭐 어떻게 안 되는 거지?

엄마.


두부 부침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것인 줄 몰랐어. 적당하게 썰고. 또 소금 뿌리고. 밑에 깔아놓은 키친타월도 한두 번쯤은 바꿔주고. 아직 두부에 남아있는 물기 때문에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동안 기름이 튀지 않게 뚜껑도 덮어줘야 하고. 센 불도 약한 불도 아닌 상태에서 적절히 구워주는 도중에 기름도 잘 둘러줘야 만들어지는 음식이더라.


그저 엄마가 해주는 걸 먹을 때는 더 바싹 구웠으면 맛있었을 텐데 엄마가 귀찮았겠지 뭐.라고 생각만 했는데. 해보니 알겠어. 엄마는 엄마의 시간과 정성이 허락하는 데서 가장 최선의 두부를 내게 주고 싶었던 것이었을 거야. 난 그걸 염치도 없이 먹어제끼느라 바빴을 뿐이고.(참고 1 )


예전에 마이클 잭슨이 인터뷰나 이런 것에 늦으면. 그 상대방에게 꼭 사과를 했대. 화환이나 이런 거에 꼭 카드도 한 장씩 곁들였는데. 거긴 늘 그렇게 쓰여있었다고 하더라.


당신의 시간을 존중하지 못해서 미안해요.라고.


엄마.

나도 엄마의 시간과 노력을 꾸준히 폄하해서 미안해. 한낱 두부 하나 구워 내면서도 딸에게 줄 거라 최선을 다했을 엄마 마음도 몰라줘서 미안해.


이걸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으면 엄마의 손마디가 조금은 덜 굵어지게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엄마의 마음속에 평생 갖고 있을 나 때문에 생긴 무수한 상처 하나쯤은 없어지게 해줄 수 있었겠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날 빨래 정도는 내가 돌려줄 수 있었을 텐데.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버렸네.



SE-2ede3482-b59e-4993-85d7-0bd9aaf4248b.jpg?type=w773 엄마 사진이 똑같은 게 여러 개 간 게 아니라 냉장고에 두유밖에 없는 게 맞아. 엄마가 잘 못 본거 아니야.

오늘은 엄마 생각하면서 좀 정성스럽게 두부를 구웠어.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었네.


나는 이런 감정이 드는 와중에도 냉정한 딸년이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며 불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촌극은 벌이지 않겠지만. (참고 2) 이젠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점점 내 마음에서 지분을 넓혀가는 걸 보니. 절대 철들지 않을 것만 같던 나도 철이란 게 드나 봐.


엄마.


딸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어. 우리 딸은 어딜 가든 잘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고 믿어주는 것도 고마워. 물론 나도 상처받고 몰래 숨어 울 때는 있지만. 나는 엄마가 가진 자긍심 중 가장 큰 지분을 가진 대주주니까. 그에 맞게 행동해볼게.


여태 엄마 속 시끄럽게 하고 내 맘은 편했듯이. 오늘은 내가 속 시끄러울 테니 엄마만큼은 편안하게 잠드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랄게. 엄마 잘 자. 고마워. 그냥 다.


추신.

베란다 문 다 닫고 자.


요새 날씨가 오락가락이라 엄마가 힘들게 널어놨을 빨래가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덜 마르면 엄마 또 속상해할 테니까. 그리고 그런 건 이제 좀 아빠한테 시켜. 안 한다 그럼 나가라 그래. 엄마 원래 아빠 잘 쫓아내잖아(참고 3)




참고 1

모든 요리에 소금을 잘 넣지 않음. 예를 들면 달걀 프라이나, 생선을 구울 때도 그렇고. 그리고 양념장과 먹어야 하는 요리도 그냥 먹음. 예를 들면 두부 구이도 소금을 약간만 치고 그대로 먹고. 감자튀김은 케첩 없이 먹음. 전 종류도 그냥 전만 먹는 편. 샐러드도 드레싱 없이 먹고 쌈을 싸먹을 때도 된장이나 이런 것 거의 안 넣어 먹음.


참고 2

평상시의 기분과 비교했을 때 그보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나거나 등등의 보통을 벗어난 기분일 경우 그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 편. 절대 내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임. 회사에서도 동일함. 아무리 기분 좋아도 제가 할게요, 오늘은 제가 커피 사겠습니다 라는 말 따위는 넣어두시길.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아요.


참고 3

버려진 강아지를 아빠가 집에 데려오셨음. 엄마에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아빠랑 강아지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들어오세요.라고 함. 아빠는 엄마가 허락한 줄 알고 좋아서 강아지 이름은 이걸로 하자는 둥 사료는 사 왔다는 둥 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둘 다 오늘부터 베란다에서 자요.라고 함.(둘 다=강아지, 강아지 주워온 너.) 그렇게 아빠와 강아지는 3일 동안 베란다에서 생활해야 했음. 강아지는 사활을 걸고 엄마가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로 간 사이에 애교를 부려서 우리 집식구가 될 수 있었음. 험난함.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집안임.


[이 글의 TMI]

1. 왜 운동하려고 나가려고 준비하면 비가 오는가.

2. 왜 많이 먹은 날만 비가 오는가.

3. 왜 나는 운동을 밤에 하겠다고 아껴놨는가.

4. 왜 포기하고 있으면 비는 또 빨리 그치고 난리인가.

5. 어쩌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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