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코로나 확진
코로나에 걸렸다.
합법적인(?) 휴가를 얻었지만 집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격리라는 휴가는 육신의 고통으로 정신이 매번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내 몸에서 나는 환자의 냄새는 겨우 낭떠러지에서 기어 올라온 정신을 다시 매몰차게 밀어버렸고. 그렇게 매번 나는 절망의 늪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헐떡이기만 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을 오후 네시.
탈진한 듯 앉아서 내 방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안타깝게도 너무도 아무 일 없었고. 묘하게 나만 동떨어진 것 같은 생각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내게 어떻게 보면 기회와도 같았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역병에 걸리기 전과 후의 항체 레벨도 달라졌겠지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환자에 대해 생각했는지, 그리고 나란 인간은 환자들에게 얼마나 오만방자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근로인구가 환자가 되면;아플 권리도 없는 걸까.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 실험 어떻게 하지.'였다.
선거일 전까지 매달리던 실험은 연초에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이었고, 내 가설을 입증함과 동시에 앞으로 쓰게 될 논문의 Figure 1번이 될지도 모르는. 말 그대로 운명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내가 확진자라는 문자 하나에 정말 보기 좋게 바스러져 내렸다.
코로나 확진이라 언제까지 출근을 못 한다는 전화를 상사에게 하면서 나는 너무도 슬펐다. 하나는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전화를 한 바람에 상사가 내 목소리를 처음엔 못 알아 들어서. 나머지 하나는 계획된 실험을 몇 주 뒤로 미뤄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 내뱉아야 했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웠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머릿속은 언제 다시 "그" 실험을 시작해야 하는지 복잡해졌다. 하지만 사내 인터넷망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실험실 예약도. 실험실 스케줄도. 마우스의 상태도. 모두 내 손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이 그저 허망한 계획에 불과해졌다.
격리 첫날부터 무쓸모 회사원이 된 기분은 격리 후 복귀를 해도 완벽히 사라지지 않았다. 복귀 후엔 후유증이라는 의외의 복병이자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몸은 쉽게 피로해져 두통이 자주 생겼고,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지만 기침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나왔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눈초리는 여전히 받아야만 했다.
격리 기간 동안 쌓인 일감을 따라잡는 데는 시간과 노력도 필요했지만. 밀린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이벤트들에 내가 빠져있었다는 이름 모를 소외감은 나 말고도 다른 부서원들도 조금은 성가시게 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구구절절 읊어줘야 했으니까.
나는 일주일 만에 죄인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죄질이 불량하다는 "무능력"이라는 죄를 지은. 아무리 아프지 않도록 자기 관리를 하는 것도 실력의 일부라지만. 피할 수 없는 이 병 앞에서도 느껴야 하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 때문에 나는 복귀 후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일손이 없어 바빠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 상황에 혼자 "휴가"를 즐기고 온 내가 웃기까지 하면 그 모습마저도 꼴사납게 보일까 봐.
내가 생각했던 환자에 대한 인식.;그리고 아픈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병원에 있으면 연구실을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매 순간마다 환자와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들은 예외 없이 느리고, 늙었으며, 생기가 없다. 바쁜 내 걸음의 중간마다 걸리적거린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들과 그들의 활력을 연명하게 하는 주렁주렁 달린 보조 도구들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틈을 두고 늘 그들을 앞질러 다니곤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병원 직원임을 상징하는 명찰을 목에 걸고, 아프지 않은 데다 어리기까지 한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선망과 부러움이 담긴 눈길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늘 생각했다.
난 그들과 다르게 아프지 않고. 절대 아플 일이 없을 거라고. 아니. 아프게 된다고 해도 저 사람들 만큼은 아프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절대 "저렇게"되지 않을 것이라고.
코로나는 이런 싸가지 없는 젊은 연구자의 태도를 단숨에 꺾어놓았다. 아프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저 아픈 사람들 모두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단 한 발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버틴 사람들이며. 아픈 것은 그들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는걸. 그저 열심히 살다 보니 죽음에 가까워지고. 그러다 보니 젊음에 가려져있던 병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프다.라는 상태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는 것을.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찢어질 것 같은 목에 물을 주기적으로 들이부었고. 괴로움을 조금은 참아가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으라는 약을 먹고, 충분히 잤다. 회사 내부 인터넷을 쓰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 바람에 코로나에 걸린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도 그만두었다.
코로나는 내가 잘못해서 걸린 것도.
내가 관리를 하지 못해서 걸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차례였기 때문에 들른 손님 같은 것이며. 언젠가는 이 손님은 나를 떠날 테니까.
환자는 누구나 될 수 있으며 환자가 된다고 해서 그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된 셈이다. 부끄러움과 깨달음이 함께 밀려오는 그 오후에, 나는 겨우 자기혐오를 멈출 수 있었다.
확진 후 바뀐 인생의 자세;드디어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격리 기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태까지 내가 죽음을 대하던 태도는 진시황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오래 살고 싶었고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쳐다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내겐 어쩌면 태양이 남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다가올 일이 희박한 일에 가까웠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나는 죽음에 대해 조금은 담담해졌다.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늙어감에 있어서도, 병드는 삶에 대해서도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즈음 나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다시 읽었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 그랬던 것처럼 실격당한 자들을 비웃던 내 모습에 잘못을 구했다.
내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졌다.
나는 드디어. 내 스스로의 행복을 돌아보며 살기로 조금 더 크게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아등바등 살지 않기로. 내 체력과 행복을 책임질 수 있는 선까지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내가 없어도 세상은 너무도 잘 돌아간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기분이다. (아 물론 내가 없어서 돌아가지 않을 회사였다면 나를 듬뿍듬뿍 갈아 넣어야 돌아가는 회사였다는 말이 될 테니. 뭐 더 미련 가질 필요도 없겠지. )
엄마는 여자가 한 번 심하게 앓고 나면 늙는다는 말로(어째서) 멀리 있는 딸을 걱정해 주었지만, 나는 이번 계기로 얻은 것이 너무 많아 이게 늙는 거라면 한 번 늙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기침은 나를 괴롭게 하고 목에는 뭐가 낀 것 마냥 칼칼할 때도 많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코로나 전의 활력도 완벽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고난들이. 내가 가진 허점과 오만함을 계속 발견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아 물론 적당히 아프고 빨리 낫는 게 1순위이긴 하지만 말이다.
마치면서
격리가 끝나고 거의 2주가 다 되어간다. 사실 그 2주 동안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잘 꾸지 않는 꿈을 매일 꾸었고, 새벽에 한 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이 나를 맞이했다. 마음속에 남아있던 아주 큰 무언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해서였다는 걸 내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의(?) 생각 끝에. 나는 결국 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그래봐야 병원 안에서 다른 부서로의 이동 정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가 늘 투덜거리기만 하던 독일 유학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다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에도 짧은 삶이고. 나는 조금 더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살도록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시도하지 않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마치 코로나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이제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추신.
많이 아팠던 사람일수록 항체 더 잘 만들어질 거라고 SNS에서 에바쌈바개오바떠는 사람들도 많은 거 아는데. 여기서 "많이"의 기준은 최소한 폐렴이라도 생겨야 발이라도 좀 들이밀어볼 수 있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자가면역 질병이라도 있어서 항체가 언제나 Activated된 상태거나.
1탄은 여기
카카오뷰도 있어요!!+_+
[이 글의 TMI]
1. 여전히 몸 상태는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2. 생각보다 마른 기침이 많아졌다.
3. 그리고 위가 너무 줄었다.
4. 신이 도와주신 덕분에 근손실 겨우 0.2g.
#코로나확진 #COVID19 #코로나후유증 #회사원코로나 #연구원도코로나걸림 #예외없음 #여전히근손실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내일은파란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