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안 걸리니 코로나라도 걸려봤다.

코로나 확진자의 2일차 격리일기

by Munalogi

어제 잠시 말씀드린 것 처럼. 저는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이제 2일차에 접어들고 어제보다는 조금 증상이 나아지긴 했지만. 보통의 컨디션에 비하면 약 70%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좀 정신이 있을 때(?) 이렇게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려보려고 합니다. 걸려보니까 오지게 아파요. 그러니 다들 제발 안 걸리시길 바랄 뿐입니다.





증상이 어떤가요?;일단 살아있냐고 물어보는게 먼저 아닙니까.
SE-3f09fb02-1368-4540-ad9b-3b14fac576bf.png?type=w1 내가 확진자라니.

저는 원래 생리 전날이나 당일에 항상 가벼운 몸살을 앓는 사람이라. 선거날 찾아온 오한에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대신 낮잠을 잘 안자는데 그날따라 낮잠을 자게 되었고. 일어나니 오후 8시였습니다. 생각보다 길고 깊은 낮잠을 자게 된거죠.


그때부터 모든게 이상했어요.

낮잠 자고나면 보통 잠을 잘 못 자는데 잠은 계속 쏟아지고. 무엇보다 열이 나고 목이 간지럽기 시작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일단 약을 먹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새벽에 시작된 열과 인후통은 저를 몇 번이고 잠에서 깨웠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는 공휴일 다음날에도 출근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회사원의 집념마저도 뚫고 저를 집어삼켰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잔데다 목은 이미 잠겨있었고. 열이 너무 많이 나서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이건 코로나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일하는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했는데. 여기서도 대환장 파티가 일어났습니다. 이정도면 인생 자체가 대환장이라고 봐도 무방할텐데 말입니다.


분명 잘 때는 38도까지 올라갔던 열이. 검사시에는 28도까지 내려가 있었어요. 마스크 너머로도 간호사 선생님의 당황+황당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열을 세 번에 걸쳐 다시 재고 나서도 여전히 체온은 28도 였고. 간호사 선생님은 제가 벌써 죽은 것이 아닌지 흘깃 흘깃 쳐다보시며 체온을 기입한 사전 문진표를 제게 돌려주셨죠. 접수할 때도 제 체온을 보시고 흔들리던 선생님들의 동공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네요.


우여곡절 끝에 검사를 마치고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증상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저는 저의 미래를 보는 것 처럼 비장하게 격리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대충 새벽배송 시켰다는 말)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후 제 핸드폰으로 날아온 저 문자 한 통 덕에 저는 심증을 물증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때부터 슬기로운 격리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것이 고통의 시작일 뿐이었죠.




뭘 먹나요?;물, 커피.끝
image.png?type=w1 치즈 바게트로 연명하는 삶.평소같았으면 이거 세 개가 에피타이저였음.

증상은 조금 심각했습니다.

목에 누가 헤어 드라이기를 박아놓은 것 처럼 메마르고 열이 나서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간 상태가 되었고.다시 시작된 발열로 인해 무슨 옷을 입어도 땀에 젖은 상태로 있어야 했죠.


입맛도 없고.

목이 아프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다 근육통이 심해 움직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뼛속까지 다이어터였고. 근손실은 죽었다 깨어나도 막아야 했기에. 힘을 내서 무언가라도 먹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냉동실에 있던 바게트와 치즈로 치즈 바게트를 하나 구웠는데. 그마저도 다 먹지 못했어요. 목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냉장고에 가득 있던 무가당 두유와 물. 커피만 마시는 시간으로 이틀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물론 액체만 마시는 것도 어려워서 뭔가를 식도로 넘기는 것 자체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사실 딴 것 보다 이게 제일 괴로워요.(물론 제가 원래 기관지가 좀 약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아 물론 뇌까지 근육으로 변질되어 버린 저는 그 와중에 스쿼트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근육 보존 해보겠다고 깝치다가 진짜 영원히 골로 갈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고 그 뒤로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한가봐요.




시간 많을텐데 뭐해요?;시간이야 많죠. 아파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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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시간이 생긴 저는 아픔을 잊기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했습니다. 마치 저는 저의 미래를 그 언젠가부터 예상이라도 한 것 처럼 네 권의 책을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놓은 상황이었고. 마른 기침과 인후통+오한이 제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가서 아주 잠깐 찾아오는 그 평온한 시간에 조금씩 활자를 읽어내려가거나 영화를 보고 있어요.


덕분에 하루에 한 권 이상의 책을 간만에 읽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원한 휴가는 이렇게 아픈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합법적으로 휴가 받았다고 좋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물론 이 생각은 영화 해적 2를 보기 전까지는 유효했으나 그걸 본 뒤로 다시 저는 코로나 걸리기 전의 시니컬한 인간으로 돌아가고야 말았죠.


다행히 [소년심판]은 그래도 괜찮아서.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목을 자꾸 촉법소년으로 착각해서 문제지만요.


예매했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도 못 보고. 앙리 마티스 전시회도 못 가서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또 오랜만이라. 간만에 옷장 정리도 하고. 수저나 자주 쓰는 그릇들도 다 소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좀 주변도 보고 살라고 급작스럽게 코로나로 제게 멈춤을 선사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마치면서;이 와중에 버리지 않는 전공

우리에겐 요구르트로 잘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로빈 워런은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증명해 결국 노벨상을 받았죠.(개소리 하지마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그냥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을 마셔버림)


어릴때만 해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단단히 미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 업계로 들어온 저도 막상 코로나에 걸리니 이것 저것 실험해보고 싶은게 많아졌어요(?)


IgG레벨도 보고 싶고(바이러스 감염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흔한 항체)

IgA레벨도 보고싶고요.(주로 Respiratory에 있으며 점막 보호라고 생각하면 됨. 최근 나온 논문에선 IgA레벨이 코로나의 심각성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함)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걸 보니. 이제 슬슬 증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다행인거겠죠? 막상 실험하라그러면 귀찮다고 드러눕겠지만요.ㅎㅎ


이제 코로나에 안 걸리면 왕따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지만. 겪어보니 그냥 안 걸리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다들 이 사태가 사라질 때 까지 아무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추신.

짧은 글에도 빨리 나으라고 댓글 달아주셔서 열 나는 와중에도 그 댓글들 보고 너무 감사했어요.ㅠ 사....사라......그냥 좋아합니다.ㅠㅠ


#코로나확진 #연구원도코로나걸림 #예외없음 #코로나확진자 #근손실무섭다 #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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