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기
이 글은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크로마토그래피]에서 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반지하도 괜찮으세요?"
첫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부동산 중계업자 아저씨의 말에도. 그리고 내가 서울에서 시작해야 할 위치도.
남들 보다 한층, 혹은 애매하게 낮은 곳. 남들에게 허락되는 햇빛마저도 조금은 덜 허용되는곳. 조용하고 축축함을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곳.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돈의 최대치였던 6천만원으로는 서울에서 시작할 수 있는 맥시멈이 바로 반지하였다. 부동산 문을 밀고 나오면서. 앞으로 살아야 할 서울이라는 곳에 정은 커녕 패배감을 가장 먼저 느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반지하가 아니라면 고시원으로 가야했고, 나는 결국 고시원에서 박스 세 개와 함께 새 삶을 시작했다.
줄이고 줄여 겨우 박스 세개로 시작한 그 삶도. 내가 몸 하나 뉘일 공간이 거의 전부인 그 방에는 사치일 수도 있음을 그때 알았다. 하긴 5만원 더 아끼겠다고 창문까지 없애버린 내 삶에서는 나를 뺀 모든 것이 사치였다.
고시원이란 곳은 참 이상했다.
생리현상 마저도 눈치가 보이는 곳이었다.기침을 해도. 재채기를 해도. 웃음이 조금만 커져도.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며 얇은 벽 너머에 있을 얼굴 모를 이웃에게 미안해 해야 했다.
창문 하나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지도 그제서야 알았다.
학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과 어울리게 검소하고 미니멀 하게 사는 것이 여러모로 어울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쩐지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들은 최소한 내가 내는 월세만큼 더 저축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그 좁은 고시원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씁쓸함과 괴로움으로 물들어갔다.
울 때 소리없이 우는 기술은 씁쓸함이 내 작은 고시원을 가득 채울 수 있을때 즈음 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배운 것도 많았다.
공간의 효율성에 대해 배운 것은 말할 것 없고. 내가 무언가를 어디까지 가지는 것이 사치의 경계선인지도 알게 되었다. 반드시 냉동실이 있는 냉장고를 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도 했다.
작지만 전부인 고시원의 한 칸 세계를 몇 번이고 우울함과 냉소로 가득 채워 넘치게 하면서도. 내 머릿속의 집은 나의 욕망을 점점 닮아갔다. 때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넓게. 때로는 궁궐 빰치는 화려함으로. 하늘 위로 날아 오르기도 하고 한 없이 천장이 높아지기도 했다.그 집에서 사는 나는 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퍽퍽한 건빵 같기만 한 현실 속에서 나의 꿈은 달디단 별사탕처럼 아주 짧고 강렬하게 나를 만족시켜 주곤 했다. 물론 이내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머릿속에서만 실존하는 가상의 내 집에 깔아야 할 타일 공사까지 다 마쳤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시점이 되어서야 나는 고시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에선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녹록치 않았고. 내가 2년 동안 서울에서 이룬 결과는 반지하를 벗어날 수 있다는 성적표 한 장 정도였다. 여지껏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것 처럼 겨우 내가 원하던 욕심들 중 하나 정도는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망상속에 함께 했던 즐거운 나의 집의 조건에서 대체 하나로 무엇을 골라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생각보다 빨리 내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나의 가장 큰 욕망이자, 내가 돈에 밀려 포기해야 했던 소원.
매일 아침 출근에 허덕이는 통에 내 집을 제대로 볼 수도 없을 때가 많지만. 우울할 때나 비가 올 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책상에 앉아 바깥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무려 창문이 달린 나의 집에서. (참고 1)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조용히 얼음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내리쬐는 태양의 성난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고시원에서 소리없이 울던 내 모습은 이제 조금씩 행복함에 웃을 수 있는 모습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득 궁금해진다.
나의 다음 욕망을 담은 집은 어떤 모습일지. 더 크지 않을 수도. 이것보다 더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집에서 살고 있는 내가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나중에 새로운 집으로 가게될 기회가 된다면. 마치 예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지.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할게요. 라고.
참고 1
열효율 대박 안 좋음. 하지만 마음이 탁 트이는거 같으니 용서한다. 친구들이 태양의 후예이거나 태양신 모시거나 둘 중 하나라고 놀림.
[이 글의 TMI]
1. 너무 춥다ㅠ
2. 닭볶음탕 대성공.분명 뭔가를 잘 못 넣은 것 같은데 왜 성공했는지. 그리고 뭘 넣었는지 모르는게 문제.
3. 내일은 와플을 먹을 것이다.(단호)
4. 참외가 싸서 참외를 샀는데 복숭아를 먹고 싶은 나란 인간.
5.독일어 공부 개힘들어...못하겠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