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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Oct 13. 2019

[요일 빡독] 안티프래질

제1장 요약

작가: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출판사: 와이즈베리

내 파트:1장(52~66)

독서 시간: 15분

서평 작성 시간: 1시간 10분(실화냐.)


[제1장 요약: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삶의 절반에는 명칭이 없다. 

54p 이런 사각지대는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안티 프래질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 러시아어에서도, 표준 브루클린 영어에서도 깨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통하면 통했지, 안티프래질에 해당돼 는 단어는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54p 따라서 긍정적인 프래질(positive fragility)의 반대말은 '강건함', '강함', '부서지지 않음'의 의미만을 전

달하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라 부정적인 프래질 negative fragility (즉 내가 붙인 '안티프래질')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하는 이야기를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안티프래질은 프래질 앞에 마이너스 부호를 붙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57~58p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그렇다. 성공이 주는 피해를 예방하려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 높은 수준의 강건함, 나아가 높은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갖추면 된다. 우리는 불사조, 더 나아가 히드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66p 개념 전달의 어려움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지적 장애요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 지혜와 합리성을 얻을 수 있다. 


안티 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말하자면, 아마 이 김춘수 님의 꽃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라고 혼자 생각한다) 우리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어떠한 개념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내리기 전 까지는 그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개념 역시도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상태가 된다. 제1장에서는 그런 Anti-fragile(fragility)의 개념 정리를 위해 다양한 예시를 들어 우리에게 개념이 익숙해지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잉태되어 태어나는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 사건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기]

영국 유학시절이었다. 

나는 면역학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면역학 교수님을, 너무너무 좋아했고 덕분에 면역학 점수는 전교생은 물론 그 학교가 세워진 이래 없었던 점수를 받아가며 열심히 공부했었다.(공부한 거 다 어디 갔지. 국이라도 끓여먹었으면 배라도 불렀을 거 같은데.) 그래서 나 스스로도 마치 내가 면역학의 도사라도 된 마냥 친구들이 모르겠다는 문제를 늘 알려주고 도와주곤 했었다. 


그러다 맞이 한 또 한 번의 면역학 강의 시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수님 쳐다보랴 안 되는 영어로 강의 듣느라 미친 듯이 필기하랴, 그 와중에 겨우겨우 이해해 나가느라 바빴던 그때. 우리가 배웠던 것은 바로 


Antigen presentation(presenting):항원 제시.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지만, 처음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땐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일단  붉은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 두고는 다음으로 넘어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집에서 혼자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공부를 해도, 사전이나 참고 문헌을 아무리 뒤져봐도 저 단 두 단어가 무엇인지 감 조차 잡히지 않았다. 저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저 뒤의 내용이 이해가 될 리가. 나는 그렇게 다음 면역학 수업이 있는 3일 후 까지 내리 밤을 새웠지만, 저 두 단어 이후로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면역학 교수님은 늘 학생들에게 배운 게 뭔지 물어보시고는 답이 없으면 내게 슬쩍 눈치를 주곤 하셨었는데,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답을 하지 못했었다. 교수님은 아 저번에 배운 게 어려웠나요.라고 하시며 저번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정리해주셨었고 나는 자존심이 상해 그 자리에서 숨죽여 울면서 강의를 들었었다. (아직도 이때의 꿈을 꿀 정도로 흑역사였음)


그날 강의가 끝나고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었을 때 교수님께서 슬그머니 내게 오셔서는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다. 그 말에 더 서러워진 나는 꺼이꺼이 울며 내가 3일 동안 한 삽질의 결과를 교수님께 보여드렸었다. 이렇게 까지 찾아봤는데도 모르겠다.라고. 3일 내내 쓰고 긋고 지우고 찢고 구기고 했던 내 연습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시던 교수님은 씩 웃으시며 내게 딱 한 마디를 하셨었다. 


"이제 다 왔어."

라고. 뭔  소리야 싶어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더니 교수님은 다시 허허 웃으셨다.


"내가 봤을 때 넌 이제 네가 유레카 외치면서 내게 뛰어와서 설명해 줄 일만 남은 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감히 점쳐 보건대 그건 아마 오늘이나 내일 밤 일 거야. 걱정 마."


너무 울어버린 나는 진이 빠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었고, 다음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멍하게 브런치를 먹고 다시 낮잠을 잤다.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러 시내로 내려가던 길에. 갑자기 내가 3일 동안 읽었던 모든 논문과 책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면서 그렇게 힘들어하던 그 두 단어가 어떤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커피고 뭐고 지금 머릿속에 있는 이 것들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 나는 다시 기숙사로 뛰어가 컴퓨터를 켜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머릿속의 끈을 잡아 이끌었다. 혹시라도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다리까지 덜덜 떨어가며.


나는 남은 주말 내내 유레카를 외쳐대며 복도를 뛰어다녔고 뛰어다니다 우당탕 넘어졌는데도 다시 벌떡 일어나 싱글벙글 웃어댔다.(친구들은 저때 뇌를 다쳤는데 치료를 안 해서 지금 이모양이라고 늘 그런다. 근데 친구들 말이 맞는 거 같다. 어쩌지.)


 아마 임계점에 다다를 만큼의 공부가 모자랐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 두 단어를 내가 넘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 작은 산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이고.


내게는 이 1장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마치 그때의 그 단 두 단어. Antigen presentation을 몰랐을 때의 기분과 같다. 전혀 감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는 기분. 큰일 났다.라는 느낌이 막 들어서 갑갑하기 시작하고 목이 옥죄어 오는 것 같은 그 기분.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이 임계점도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단지 그때까지 괴롭겠지만, 예전처럼 울고만 있지는 않아야지. 요일 빡독 가서 신나게 깨지고 다시 집에 와서 혼자 읽어보고. 그러다 보면 또 슬그머니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번 싱긋 웃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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