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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Nov 15. 2019

(11-2)
문해력 높이기:발버둥 프로젝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빨간 맛 멘들스

그림출처


매일매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노랫소리로 가득했어요. 내겐 마치 무지개처럼 찬란하고 영롱한 나날들이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구스타브에겐 그저 힘들기만 한 나날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구스타브는 열심이었어요. 매일, 그리고 매 순간마다 내게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나는 그 붉디붉은색을 가진 곡은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늘 그렇듯.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등장했지요. 


구스타브. 나의 구스타브. 나의 무지개를 지켜준 나의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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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전세 냈니 아가야?"

흘러내리던 무지개가, 그 사람의 말소리 덕에 뚝. 하고 끊겨서 흩어져 버렸어요. 한창 무지개다리 위에서 춤을 추던 나는, 마치 미끄러지는 것처럼 털썩. 하고  로비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무슨 일이십니까 드미트리 님."

"아니 무슨 호텔 전체에 시끄러운 소리만 가득해! 이런 것도 음악이라고 틀어 제끼다니.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야지. 이런 비렁뱅이 미치광이 아이 때문에 호텔을 닫을 셈이야?"


그리고 그는 나를 다시 한번 슬쩍 쳐다보았어요. 눈이 새벽 파란색만큼이나 매서운 사람이었어요. 드미트리와 나 사이를 막아선 멘델스는 엄숙하고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어요. 


"이 아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


단 한마디였어요. 

그 말 외에 구스타브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말의 무게는 무겁고도 싸늘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팔을 쓰다듬었어요. 그 누구도 내게 해주지 못 한 말이었지요. 어쩌면 부모님 마저도 해주지 못한 말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구스타브는. 그 말을 확신에 차서 내뱉었어요. 내가 미치지 않았다.라고요. 


"미친 것은 음악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당신입니다."


나는 와앙와앙 하고.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어요. 왜 그랬는지. 아직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아마. 내가 느끼는 이 감정과 이 색깔들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속한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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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우리는 계속 나의 파랑새. 빨간 노래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한 달의 시간이 다 되도록 찾지 못했어요. 어린아이인 나를 그보다는 더 오래 둘 수 없었던 부모님은. 결국 나를 집으로 데려 오려했고. 나는 그렇게 한 달 동안이나 내가 머물렀던 무지개 천국이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나야만 했어요. 무지갯빛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것보다 힘들었던 건, 구스타브와의 이별이었지요. 떼를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구스타브를 괴롭히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이 호텔로 오지 못 할 것만 같아. 나는 순순히 아버지의 차에 올라탔어요. 먼지 냄새처럼 텁텁한 기분이. 내 어깨에 조금씩 조금씩 내려앉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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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한 얼굴로. 아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앉아있는 내게, 누군가가 다가왔어요. 발걸음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구스타브였어요. 구스타브는 어딘가 텅 비어 보이는 얼굴로 애써 웃어 보이며 내게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어요. 


"멘들스 란다. 집으로 가는 길에 먹으렴"


잘 가라거나. 다시 오라거나. 혹은 그동안 즐거웠다거나. 그런 말은 일절 하지 않은 채. 구스타브는 그렇게 내게 상자 하나만을 주고는 다시 뒤돌아서 호텔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차는 출발하는데.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던지는데.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 한채. 차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나는 구스타브가 준 박스를 열어보았어요. 그리고는 그 커다란 케이크를 손으로 집어, 와구와구 먹어댔어요. 마치 눈물이 나 서러움이나 이런 모든 복잡한 것들도 삼킬 기세로. 


"그 멘들스는 최고급이라. 언제 먹어도 맛있단다. 맛있지?"


입가에 잔뜩 묻은 크림을 닦아주며 아버지는 그렇게 물었어요.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물음의 답을 알고 있었지요.


"응. 빨간 맛이야. 아버지"


자. 이제까지 내 이야기. 재미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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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 뒤로 내게 찾아온 빨간 노래를 연주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연주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내가 마음대로 연주한 그 곡들이 빨간 노래로 들렸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지요. 그 노래는 전혀 다른 색깔이었다는 걸요. 그리고 나는 그 뒤로. 두 번 다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가지 못했어요. 구스타브에 대한 그 어떤 소식도. 그리고 그 어떤 말도. 전해 들을 수 없었어요. 


내가 이상하지 않다고 말 해준 유일한 사람.

나의 두려움마저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 해준 유일한 사람. 

여태 느끼지 못했던 이런 감정이, 아마 내가 찾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붉은색의 노래와도 비슷할 것 같아요. 나는 이제 그 빨간 노래를 직접 만들어보려 해요. 그것이 완성이 되면. 아마 구스타브를 다시 볼 용기가 생기겠지요. 그러면 그때 이 빨간 노래를 구스타브는 연주하고, 나는 다시 한번 그때의 무지개다리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을것만 같아요. 아마 그럴 수 있겠지요?



추신. 

제게 아마 재능이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악기를 다루는 재능이었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얘는 무조건 예중 예고로 가야 한다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들었었습니다.(그거 다 어디 갔지)그리고 어떤 특정한 곡을 들으면 특정한 색깔이 떠오르는 경험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땐 정말 왜 이러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지금 생각하니 공감각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과 색깔이라는 것을 어떻게 연결할까 생각하다가.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습니다. 그리고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라는 노래 제목도 적절한 것 같아 따왔어요. 언제쯤이면 제대로 된 서평을 쓸 수 있을지. 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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