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x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nalogi Jan 12. 2020

[Ep2]이 죽일 놈의 골프

사장님 굿샷!!


<마음치유, 자기 정체성 찾기>

Q2.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운동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스포츠. 댄스, 좋아하는 운동선수도 괜찮습니다. 스포츠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본인이 직접 즐기는 운동, 직접 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스포츠, 또는 스포츠 선수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떠올려 글을 써보면 좋겠네요.


골프는 18홀로 이뤄진 코스를 돌며 가장 적은 타수를 기록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자연을 벗 삼아 걸어 다니며 할 수 있는 운동이기에 장년층에게도 인기가 좋고, 팀별 운영이 되는 게임이기에 소위 사회 고위층들이 담소를 나누며 프라이빗 하게 즐기기 좋다고 알려져 있다. 돈이 많이 들어 일반인이 아직까지는 쉽게 접근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저렴해졌고, 골프 연습장들이나 골프장도 이제는 대중화된 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귀족 스포츠라 불리는 골프를 죽었다 깨어나도 배우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도 아니고 햇빛에 피부가 타는 게 싫기 때문도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돈 때문에 캐디를 직업으로 삼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캐디는 어떤 모습인가. 솔직해지자.

그림출처 1 그림출처 2

일반 사람들에게는 캐디라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장님 굿샷이라는 말을 날리며 물개 박수를 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더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희화화되고 있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잠잠하다 싶으면 캐디 성추행 사건들이 뉴스에 올라오니, 일터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어림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그 캐디라는 직업을. 나는 빚이 생겨 돈을 하루라도 빨리 갚아야 했을 당시에 시작했다. 딱 3년만 버티자.라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최악이자 최선의 선택이었고 가장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 너무도 많은 것을 선물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 않는 화장을 해야 했다. 그것도 매우 두껍게. 

골프공이 날아오면 눈을 다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안경을 쓸 수 없어 피곤에 절어 뻑뻑한 눈에 가까스로 렌즈를 끼워 넣어야 했다.

40도가 넘는 여름에도 햇빛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목티(폴라티)를 유니폼 안에 받쳐 입고 그 넓은 골프장을 뛰어다녀야만 했다. 링거를 맞아가며 겨우 여름을 버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허벅지 인대가 끊어졌는데도 캐디가 없어 쉬지도 못하고 두 달을 절뚝거리며 일해야 했을 때도 있었다. 

캐디들이 갖고 다니는 골프 용품들을 윽박지르며 가져가는 회원들. (있는 사람이 더하다)

성희롱, 혹은 성추행을 넘어선 말과 눈빛을 듣고 보면서도 제제를 가하지 않는 골프장 측 때문에 속이 썩어 나기 일쑤였고, 참다 참다 말을 꺼내봐야 겨우 돌아오는 건 앞으로 그 팀이 오면 너를 배정하지 않겠다.라는 골프장 측의 소극적인 대응뿐이었다. 


그렇게 캐디들을 18홀 내내 괴롭히고도 나는 너에게 캐디피(Caddie fee)를 지불했으니 됐다.라는 식으로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우리와 멀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골프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돈은 벌었고, 빚은 순조롭게 갚아나갈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깎아가며 돈과 맞바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내가 점점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Thank you for your help. I don' know how can I appreciate all the things you did for me

그림출처


그리고 여느 때와 다른 하루를 맞이하던 중. 사무실에서 나를 불렀다. 그것도 급하게.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상황은 이랬다. 

외국인 상사를 접대(?) 해야 하는 상황인데, 영어를 한마디라도 하는 캐디가 없으니 그나마 좀 하는 나를 불렀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접대를 해야 하는 한국인은 내게 최대한 아양을 떨어 외국인의 기분을 좋게 하라는 주문을 했었다. 아마 어떤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깟 만 원짜리 스무 장을 부채처럼 펼쳐 내 앞에서 흔들어 대며 너네 집엔 이런 거 없지.라고 말하는 듯한 꼴을 보니.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한 혐오가 치밀어 올랐지만. 저 돈이면 마침 다가오는 월세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나는 아는 영혼 없는 얼굴로 생긋 웃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외국인들은 내게 오히려 코스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코스의 숨은 공략법, 또는 자신의 타법에 대한 질문이나 골프채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던졌다. 내가 먼저 뛰어가 골프 클럽을 챙겨주려 해도 그것은 나의 일이니 조언에 집중해주면 감사하겠다. 나는 너의 조언이 더 듣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한국인은 내가 아양을 떨거나 눈웃음을 치지 않아 화가 났는지 그늘집에서(하프 9홀을 돌고 나면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곳) 나를 몰래 불러 화를 냈었고, 그걸 우연히 본 외국인들이 그 사람을 막아서며 말했었다. 한국말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했겠지만. 아마 뉘앙스 정도로 알아들었으리라. 


이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러 온 사람이지, 우리에게 화대를 받는 사람이 아니다. 내 캐디는 전문가이며 내게 이 코스를 완주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게 배정된 이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 


나는 그 말에 여태껏 쌓여 있던 것이 몰려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고 일터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다는 내 철칙을 보기 좋게 개박살을 내버렸다. 마스카라며 파운데이션이며 얼룩져 이게 화장한 사람인지 위장크림 바른 군인인지도 구분이 안 갔을 얼굴로 나는 겨우 남은 코스를 마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의 철저한 보호를 받은 채.


결국 그 한국인은 약속한 20만 원(외국어 능력자의 경우 원래 캐디피 caddie fee의 두 배를 받는다)을 내 얼굴에 뿌리며 게임을 마쳤다. 다른 캐디 언니들이 그 돈을 주워주며 나 대신 욕을 해주는 것으로 그날 하루를 마감했지만. 나는 그렇게 힘들게 번 20만 원을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게 여기저기 다 써버렸다. 갖고 있기가 싫었다. 그 하루의 끝에. 나는 다짐했다. 여기를 벗어나겠다고. 반드시. 


Let me say good bye

그림출처

빚은 남아있었지만 어느 정도 급한 불은 완벽하게 진압한 상태였기에, 나는 캐디를 두 달 뒤에 그만둘 수 있었다. 골프장에서의 마지막 하루일을 마치고 짐을 모두 정리하던 중, 한 회원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나를 유달리 챙겨주셨던 분이셨는데 기러기 아빠셨다. 내가 유학을 다녀온 뒤 빚이 생겨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을 들으시곤, 딸 같으셨는지. 늘 정해진 캐디피의 1.5배 이상을 쥐어주고 도망가셨던 분이셨다. 몇 번이고 돌려드리려 프런트에 돈을 맡겨놔도 찾아가지 않으셔셔 늘 감사한 마음 반 죄송한 마음 반이었다. 또 내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으시곤 섭섭하셨는지. 라운딩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다 찾아오신 것이었다. 


넌 어딜 가서든 잘할 거다. 걱정하지 마라. 악수나 한 번 하자. 


라고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는데. 손에 뭔가 쥐어졌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회원님을 쳐다봤는데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재빨리 두 번 끄덕거리시곤 기사가 기다린다며 내 앞에 세워져 있는 고급차를 타곤 도망가듯 집으로 돌아가셨다. 꼬깃꼬깃 접은 백만 원짜리 세 장. 또 한 번 위장크림 바른 군인처럼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캐디는

빚을 빨리, 그리고 현금으로, 또 일하는 날마다 갚을 수 있었기에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들의 본모습에 대해 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는 것에서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돈 때문에, 돈의 액수에 따라 어떤 직업을 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나는 그 몇 년간의 세월을 거치며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깟 돈 몇 푼 따위가. 내 존엄성(Dignity)을 살 수 없음을 알았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림출처1 그림출처2 그림출처3

그렇다고 해서 골프를 다른사람들도 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골프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두 가지만 기억했으면 한다. 


하나는, 박세리의 하얀 발 뿐만 아니라 해저드샷(Hazard shot)도 기억했으면 한다. 박세리의 하얀 발이 연습량에 대해 말해주지만, 해저드샷을 대하는 태도는 골프가 어떤 운동인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자연 친화적으로, 혹은 자연 그대로 꾸며진 코스 안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리고 그대로 장애물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는 운동이 골프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해저드샷이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것 처럼, 실력이 뛰어나도 고난이 올 수 있기에 늘 겸손하고 다른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실력 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에 강하늘이라는 배우가 자신의 이상형을 택시 기사분께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시 이야기하면 사회적 약자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로 사람의 인성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다는 말이겠지. 


이것이 어쩌면 스포츠 정신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Ep1]무뚝뚝한 부녀의 대화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