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x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nalogi Jan 19. 2020

[Ep3] 토요명화극장

OCN극장에서 만나요.

그림출처

<마음치유, 자기 정체성 찾기>

Q3. 인생 영화 한 편 같이 볼까요? 왜 인생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사색해봐요.^^

인생 영화라고 부를만한 영화가 없다면 첫 기억이나 가장 강렬히 남아 있는 기억을 소환해보세요. 누구랑 보았고 어떤 영화였는지 에피소드를 생각해봐요.^^


나는 명절을 싫어한다. 

집을 떠나 생활하기 시작한 뒤론 기차표 구하는 게 너무 짜증 나서 라는 이유가 골자였다.

하지만 그 난리를 뚫고 집으로 내려간다 해도 고작해야 내가 마주하는 꼴이라곤 


고된 식당일에 이미 지쳤는데도 그 시간마저 쪼개서 명절 음식 준비를 하는 엄마.

그걸 2분 거리 일터에서 엄마의 가게로 그 음식을 가지러 와, 5분 거리의 집까지 배달하는 그 전보다 더 늙어버린 아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든 무거운 음식이며 과일들을 차로  배달하는 남동생. 

그리고 집에 왔다 라는 안도감에 늘어져 자다 그들이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에 겨우 일어난 나.


가족의 일부 구성원이면서도 나에게 어색하게 인사하는 남동생을 마주할 때마다 아 내가 집에 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서울에 가려면 며칠이나 남은 거지?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아빠와 남동생이 번갈아가며 요란하게 들려주는 모닝콜 덕에 눈을 비비고 일어난 나는 지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컵 마신다. 언제 샀는지, 매번 갈 때마다 새 컵들이 즐비한 주방을 보며. 이번의 엄마 취향은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6개월 만에 온 집은 출장 가서 하루 이틀씩 묵게 되는 호텔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눈에 익었지만 낯선 느낌. 오래간만에 온 먼 친척의 집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이질감은 더욱 커진다. 이미 반쯤 썩은 야채며 반찬, 그리고 내가 먹을 거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칸들. 청소 겸 뒤지고 정리하며 먹을 수 있는 걸 긁어보아 한 끼의 괴식을 차려먹곤 다시 곯아떨어지는 것으로 이 곳에서의 시간을 또 빨리 보내는 치트키를 썼다.  


된장찌개가 먹고 싶긴 하지만. 꼭 지금이 아니라도 되잖아.

그림출처

이질감은 식사시간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 

딸이 왔다는 핑계로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않을 한우를 아빠가 굽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왔는데도 된장찌개를 끓여놓지 않았다며 혼이 나는 엄마를 보고. 자기 앞에는 한우에 붙은  힘줄을 잔뜩 갖다 놓는 아빠. 내 접시에는 내가 고기를 삼키면서 먹어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의 한우가 이미 쌓여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눈치를 흘깃 한 번 보고는 내가 엄마 쪽으로 밀어놓은 고기를 한 점 겨우 먹었다. 정작 그 고기의 주인은 아까의 괴식 덕에 입맛도 없고, 잠도 덜 깬 상태라 이 모든 상황이 짜증 날 뿐인데. 


그렇게 기절한 것 마냥 자고 일어나고 먹고 다시 자고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제 내일 점심 즈음되면 이 곳을 떠날 수 있다는 한가닥의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원 섭섭함이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일 가나?"


서운함을 담은 엄마의 말에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괜히 눈을 마주치기가 싫어 슬며시 뒤를 돌아보면 이미 늙고 힘든 엄마와 아빠는 텔레비전을 친구 삼아 굽은 등을 내게 보이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작아진 것일까.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렸다. 그러다 마주한 영화는 타짜.


자 봐봐, 고니, 짝귀, 평경장, 정마담, 고광렬이잖아. 아니. 걔는 곽철용이고.

그림출처

최소한 300번은 보았을 영화였지만. 

이제 늙기 시작해 극 중 인물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에겐 내가 가이드가 되어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앞장서서  설명을 해줘야 하는 낯선 영화였다.이 장면이 무슨  뜻인지, 이 인물은 왜 저렇게 말을 하는지. 등에 대해 설명해주며,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는 거실에 누워 영화를 계속 보았다.  

그림출처 1 그림출처 2 그림출처 3 그림출처 4

고니가 도박장에서 돈을 잃었을 땐 함께 욕을 내뱉고, 

평경장과 만나 기술을 배울 땐 저게 정말 되는 건지 알고 싶다며 구석에 있는 화투를 꺼내려하는 통에 모두 다 웃고.

정마담을 만나 벌이는 애정행각에는 괜히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했다. 

영화에 잠시 나온 타짜의 원작자 허영만을 보곤 저 사람이 날아라 슈퍼보드 그린 사람 아니냐며 묻기도 했다.


모처럼의 연휴이니 함께 영화관도 가고 저녁도 먹자는 말을 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휴일이 되면 하루의 반을 잠에 취한 부모님이었기에. 내가 뭐라도 사려고 하면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쓰려고 하며 말리기만 했기에. 이렇게 십 년이나 지난 영화에도 점점 빠져드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이 밤이 지나면 집에 가야 하는 딸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져, 괜히 슬픈 장면도 아닌데 눈물을 슬쩍 닦았다


이제 끝이야. 아니 저렇게 해서 또 이야기가 이어지겠지. 아 무슨 또 도박을 해. 아니야. 

그림출처

기어코 고니가 전화박스를 나오는 장면까지 보고 나서야. 나도 이제는 이 가족의 일부임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 슬며시 찾아왔다. 이미 새벽 한 시로 가고 있는 시계였건만. 괜히 떠나기가 아까워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거렸다. 그런 마음을 알았던 건지. 엄마는 괜히 리모컨을 뺏았다.


"하나 더 보자"

"아 뭘 또 보노. 이제 한신데"

"그래도 하나 더 보자. "

"아따 아 피곤하다. 고마해라"

"2탄은 없나?"

"아 내일 기차 타고 멀리 간다 고마 봐라"

"아 자라 좀. 나도 피곤하다"

"아 하나만 더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Ep2]이 죽일 놈의 골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