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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05. 2020

[Ep1]무뚝뚝한 부녀의 대화하는 법

Carpenters, Top of the world

그림출처 및 동영상

<마음치유, 자기 정체성 찾기>

Q1. 오랫동안 좋아해 온 나의 최애 곡은? 그 곡, 혹은 뮤지션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리고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음악 관련 에피소드를 적어봅시다.^^



"이거... 이거 좀.... 이거 좀 해 도고" (해 다오의 경상도 사투리)


애써 안 보는 척. 모른 척하는 내 시야의 빈틈으로 검고 작은, 또 납작한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USB였다.


"그... 내가 명단 줄테니까.. 그 노래 좀..."

"아 저장해달라고?"


아빠의 얼굴은 붉어지진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움, 미안함, 그리고 일말의 기대가 섞인 표정이라는 것을. 


"알겠어"

"아 그럼 내가 방에서 종이에 노래 적어올게"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신이 나 있었고 종이를 찾으러 방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성격이 급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익숙하게 음악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냥 불러요 아빠.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본 꼬마 아이처럼. 아빠는 먼발치에서 쉽사리 내 곁에 다가오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아주 약간 흘렀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돌려 아빠를 쳐다보았다. 


"가수 부르시라고요"


아빠가 말하는 그 이름들은, 그냥 들어도 먼지가 뽀얗게 쌓인 이름들이었다.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 하는 그 이름들을 아빠는 뭐가 그리도 신난 건지 먼지를 탈탈 털어가며 내게 하나하나 또박또박 불러주었다. 가수 이름에서 끝날 줄 알았지만, 이번엔 그 가수들의 대표곡들이 또 보오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많은 먼지를 들이마셔 너무 답답했던 나는 결국 아빠에게 절충안을 꺼냈다. 내가 노래를 클릭해서 들려주면 아빠가 yes.or no.로 대답하기로 한 것. 


그림출처 및 동영상

작업은 순조로웠다. 나는 편했고 아빠는 좋아했다. 그렇게 한참이고 yes/ no 게임이 계속되는 와중에, 내가 클릭한 노래는 Carpenters라는 가수의 노래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빠의 대답이 한참이고 없었다. 단순히 나는 아 아직 클라이맥스가 아니라서 이 곡이 맞는지 아닌지 아빠도 긴가민가 한가 보다. 라며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답이 없었다. 의아해진 내가 고개를 들어 아빠를 쳐다봤을 때. 아빠는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고 계셨다. 내가 마치 대답을 재촉이라도 한 것처럼 느끼셨는지. 아빠는 그 표정을 얼굴에서 지운채 응 맞아.라고 말씀하셨다. 


분명 아빠는 미소를 짓고 계셨다. 

예전을 회상하는 표정을 가득 지으며. 

그러면서도 약간은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경상도 남자가 짓는다고 하기엔 너무도 감미로운 표정이었다. 나는 아빠에게도 회상을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빠의 그 표정이 신경 쓰인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아빠라는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음악을 저장해 준 USB를 어떻게 꽂는지도 여러 번이나 실패해 가며 겨우 꽂는 사람.

USB는 꽂았지만 노래가 안 나오자 볼륨을 조절해 보는 사람. 

그런데 알고 보니 컴퓨터 자체를 켜지 않았다는 걸 알아서 황급히 전원 버튼을 누르는 사람. 

낯선 이 환경에 저절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시선이 불안정해지는 사람.

하지만

그 USB에 저장이 되어 있던 음악이 재생만 되면 굽었던 어깨가 조금씩 펴지는 사람. 

그리고 또다시 그 평온하고도 은은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 


그제야 알았다. 

아빠에게도 취향이 있었다는 걸. 

나처럼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어떤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그 시절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시절을 회상할 나이가 되었다는 걸. 


아빠는 그 후로도 몇 번이고 먼지 나는 음악들로 온 집을 가득 채웠다. 내 20대를 다 바쳐 열렬히 아빠를 미워했기에, 시끄럽다며 소리를 빼액 질렀어야 하는 사이였건만. 나는 어쩐 일인지 내 방문을 아주 살짝 열어놓고 그 노래를 조금씩 내 방으로 받아들였다. 무뚝뚝한 딸이 아빠와 소통하려는, 혹은 화해하려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아빠에게 다시 다가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자해지라 했던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건망증이 슬슬 생기기 시작한 나의 아빠라는 사람은, USB를 컴퓨터에  꽂아둔 채 출근을 해 버렸었다. 나는 마치 아빠가 내게 다가오지 못해 쭈뼛거렸던 것처럼. 겨우겨우 USB에 다가갔다. 그리고 아빠가 말해줬던 가수들의 대표곡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곡들을 앨범 별로 정리해서 업데이트를 해놓았다. 마치 나쁜 일을 한 사람처럼 업데이트하는 내내 마음이 쿵쾅거렸다.


다음 주말이 왔을 땐, 

우리 집엔 또 다른 먼지 쌓인 곡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나는 슬며시 내 방 문을 조금 더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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