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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16. 2020

5부, 나니아 연대기;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20) 문해력 높이기 : 발버둥 프로젝트/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평:5부, 나니아 연대기;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벽장 속에 무엇이 있죠 Hellen?

그림출처


첫 만남


Hellen은 겉으로 보기엔 흔하디 흔한 학생일 뿐이었다. 

흔하디 흔하다 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더러운 운동화 끝으로 대리석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러대는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은 찾아낼 수 없었다. 아주 작은 동작이었지만. 본인은 아마도 매우 큰 동작, 혹은 의미라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양 미간 사이가 고통과 신경질적인 주름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행동에는 힘이 없었다. 아니 의미 없는 행동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만의 막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첫인상이었다.


기껏해야 20살쯤 되었을까. 

 보라색 후드티와 청바지, 꽉 묶은 머리. 더러운 운동화 외엔 너무도 깔끔한 위생상태(Hygiene)

 내가 들고 있는 차트에 severe depression(Traumatic depression disorder, safety call needed.CAUTION.)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아니 스스로에겐 신경질로 가득 찬 몸짓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물 안에서의 발버둥 정도로 보이는 그 몸짓을 못 보았다면 아마 다른 진단명이 적힌 차트를 들고 있을 것이다. 진단명 바로 옆에는 벽장 안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해한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 벽장 속에는 무엇이 있나요 Hellen?"


Hellen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또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양 손으로 두 귀를 꽈악 막고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이 동작만큼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도 필사적인 동작이라 이러다 안 그래도 작은 이 아이가 콩벌레만큼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만의 지옥의 끝에서 서서히 다시 올라온 Hellen은 이미 반쯤은 탈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것으로 첫 번째 상담 시간을 다 써버렸다. 너무 직접적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질문들, 혹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꼭 필요했다. 어떻게 이 아이에게 다가가야 할까. 나는 그것에 대한 고민과 생각으로 나의 하루를 그렇게 다 써버렸다. 


곁에서 같이 걸어도 될까요 Hellen?

그림출처


산책


빡빡한 업무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사무실 창문 밖으로 Hellen이 보였다. 퍼뜩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았더니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와 있었다. 무엇을 하나. 싶어 가만히 쳐다보았더니 아주 느린 산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벙긋거리면서. 그걸 본 순간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주 느리지만 명확하게. Hellen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걸으며 노래를 하는 것이 숨이 찬 것인지 노래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노래였다. 아니. 읊조림, 혹은 호흡이 긴 독백이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았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Hellen의 느린 걸음을 이길 순 없었다. 결국 나는 뒤돌아보며 화들짝 놀라는 Hellen의 얼굴을 맞이해야만 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그 아이를 보며 나는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 같았지만. 그 어떤 말을 해도 울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같이 걸으려고요."


그게 최선이냐. 병신아. 

나는 속으로 올라오는 욕을 겨우 참았다. 


"밖으로 내뱉아요"


그래야 해요.라는 말과 함께, Hellen은 다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만큼은 결코 Hellen을 앞서거나 뒤에 남기지 않고, 맞추어 걸었다. 산책 시간 내내 함께 걸어온 길 뒤로,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잔잔히 깔렸다. 


it is not your fault at all. That's what I want to say to you.

그림출처


심연

옷장에 들어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피한다고 했다. 저번에 보았던 것처럼. 두 눈을 꽉 감고. 스스로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그 힘들어하는 것을 지금에라도 영원히 안 볼 수 있다고 꼬드기는 자살을 하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옷장으로 뛰어들어간다고. 옷장 안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자신의 마음의 심연에 갇혀. 노래가 나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크게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난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요. 마음속에서 부르는 노래이지만. 내 귀엔 소음이거든요."


그래서 작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귀를 꽈아악 막고. 결국엔 탈진한 상태로 옷장에서 정신을 잃거나 기력을 다 써버려 옷장 안에서 며칠이고 스스로를 가둬둘 때도 있다고 했다. 일어나면 어둡고. 숨이 막혀 도망치듯 옷장을 벗어나면 몇 cm밖에 되지 않는 옷장 문 밖의 세상이 너무도 아프고 힘들어서 다시 울다 지쳐 바닥에 쓰러져 자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그러나 Hellen은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 

(나는 아직도 이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매일 두 시간의 산책을 하고. 산책하는 내내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매일 이불을 개려고 노력하고.

그다음 주에는 이불을 갠 뒤에는 물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노력하고.

또 그다음 주엔 이불을 개고, 물을 마시고, 아침을 먹으러 방문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물론 실패했다며 멋쩍게 웃었지만. 그녀에겐 늘 새로운 세계로 가는 발걸음이었으리라.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는, 다 꺼져가는 별들로 가득 찬 우주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팽창하려 하고 그 우주의 끝에 있는 별빛이라도 찾아내려고 자신만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검고도 어두운, 끝을 알 수 없는 고요한 우주의 심연 같은 아이에게. 내가 감히 어떤 작은 빛이라도 켤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  


"Hellen,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 그게 정말 최선이냐 병신아?


Speak it out, Hellen


Hellen은 빠르게 내 상담 차트에서 빠져나갔다. 사람이 충원되기도 했지만,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었기 때문에 다른 팀원에게 배정될 수 있었다. 그녀의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음을. 힘겨운 전투를 그녀가 계속해서 해 나가고 있음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똑같은 베이커리에서 산 케이크에서 초 하나가 늘어난 케이크에 대고 소원을 빌고, 이제 두 개가 늘어난 생일 케이크에 대고 소원을 빌 때가 다가올 즈음엔, Hellen이 더 이상 상담을 하러 이 곳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기뻐해야만 했건만, 얼마나 그녀가 힘겨웠을지. 느껴져 좋은 소식을 듣고도 바닥에 퍼질러 앉아 엉엉 울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엔, 똑같은 베이커리에서 산 초 두 개가 늘어난 케이크 앞에서. Hellen을 위한 소원을 빌기로 했다. 누구를 위한 소원은, 어찌 보면 내겐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감고. 조용히 그녀가 있을법한 우주 속으로 들어갔다.


그 노래는 멈추었나요, Hellen? 아. 미안해요. Min jeong Kim이 맞는 것이죠? 

한국이란 나라는 성(Family name)이 뒤로 간다고 하니, 김... 민정이라고 읽는 것이 맞나요?

이젠 더 이상 당신의 노래를 들을 수 없지만. 당신이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기만을 바랍니다. 감정도 싣고. 흥얼거리기도 하고. 춤을 춰도 좋아요. 그러니 당신이 내게 해주었던 말처럼. 


밖으로 내뱉아요. 


<참고 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평점:★★★★



작가:올리버 색스 지음/조석현 옮김

출판사:알마

이 책은?:환자들의 인터뷰와 저자의 이야기로 이뤄진 이야기


[이 책을 한 문장으로?]

1. 작가가 풀어내는 다양한 정신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2. 정상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정상인들의 인터뷰를 듣고 싶다면?

3. 다른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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