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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y 17. 2020

욕망에 지는 밤

N년차 다이어터의 고백(1)

알고 있다.

내가 비만에 가까운 과체중이라는 걸.

그렇기에 이렇게 저녁을 훌쩍 넘긴 시간에 배가 고프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이 난다. 여태 이 시간에 내가 야식을 먹어왔다는 것을 내 몸이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므로. 하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음식 생각들이 나의 짜증을 슬그머니 밀어내며 익숙한 냄새로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


알고 있다.

먹고 나면 또 후회할 것이란 걸.

분명 아침엔 얼굴이 부을 것이고 속은 더부룩할 것이다. 게다가 통장의 돈이 빠져나가는 것도 다음 달 카드값으로 내 뒤통수를 시간차로 때릴 것이다.

도넛도 빼놓을 수 없죠. 도넛에 커피까지 곁들이면. 뭐 금상첨화죠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나.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육즙과 기름이 동시에 터지는 치킨부터 입 안에서 치즈와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하모니의 피자. 그리고 삶아서 조리했으니 먹으면서도 조금은 죄책감을 덜어줄 것 만 같은 보쌈이나 족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찾아온다. 마치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물망초 같은 것들 같으니라고.)


다이어트.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야식을 줄이는 것이기에, 스스로에게 안된다 안된다 되뇌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본다. 하지만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나란 인간이 어쩜 부엌 찬장에 딱 하나 남은 라면 하나는 그리도 잘 생각해 내는 건지. 그거라도 끓일까 라는 생각과 배달 앱을 번갈아 쳐다보며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을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햄릿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어쩜 이렇게 어려운 선택을 내게 준단 말인가.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로 그것이 문제로다.  


너는 쓰레기. 내 의지도 쓰레기.

그렇게 다음날 아침, 바쁜 출근길에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도, 내 손에 들려진 것은 차게 식은 쓰레기이자 어제는 내 몸도 마음도 따스하게 해 줬던 야식. 어젠 햄릿이었는데 이젠 이순신 장군님이 된 심정이다. 어쩜 이렇게 쓰러뜨려야 하는 적은 많은데 내가 가진 의지는 어찌 이리도 작고도 초라한지. 그런데도 내겐 아직 12가지의 야식이 든 장바구니가 남았다며 의지를 불태워야 하다니.


핵폐기물이라도 되는 양 쓰레기를 던져버리고 돌아서는 길에, 이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비참함을 거의 매일 아침마다 느끼는 것은 둘째 치고. 이대로 살다가는 나를 위해 남는 것이라고는 고혈압과 당뇨, 암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여느 때 보다 강하게 들었다. 아마 그것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더없이 우울해진다.


내가 바뀔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여태껏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잖아.라는 마음이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날려온다. 여태 지고 또 지고. 기꺼이 지고 알면서도 져 온, 그리고 기분 좋게 져 주기까지 한 이런 내가. 과연 이 몸뚱이와, 이 정신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걷는 내내. 출렁이는 뱃살도 이젠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버스도 거슬리기 시작한다. 느긋한 척 버스를 포기할까 말까 망설이다 다음 버스 배치 시간을 보고는 결국 어금니를 꽉 깨물고 뛰기 시작한다.


뒤에서 너 4885지?를 외치는 김윤석이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 마냥 뛰어 겨우 버스를 잡고 자리에 앉았더니, 그 사이에 달라붙은 상의는 내 뱃살의 현재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 와중에 그거 잠깐 뛰었다고 배고픈 건 또 뭐람. 오늘 점심 뭐먹지? 라는 생각이 연쇄적으로 든다. 내 뱃살을 보고서도.


아오 진짜 나란 인간이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는 있기는 한 걸까? 어떡하지 너?



<다음 주 N년차 다이어터의 고백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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