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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Nov 11. 2019

‘조커’ 배트맨이 없어 너무 현실적이 되어버린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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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필립스의 ‘조커’만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특이한 점은 평단과 관객의 사이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평단 내에서 그리고 관객 내에서 반응이 완전히 엇갈린다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쪽의 이유는 간단하다. 폭력과 살인을 미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평하는 쪽은 영화적 서사가 훌륭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계급에 대한 문제를 아서 플렉을 통해 잘 묘사했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왜 그런 평가를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서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주위로부터 조롱을 당하기 일수고, 일하는 곳에서는 해고를 당했고, 국가의 지원 없이는 정신질환 약을 살 수 없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고 있는 그야말로 사회적 약자 중에 약자이다. 영화 '조커'는 아서가 이러한 현실의 부당함과 자신의 정신질환이 맞물리면서 살인자가 되어 갈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아서의 살인이 촉발이 되어 고담시 시민들은 부유층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조커’에서 고담시 시민들이 분노하여 시위를 하는 것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억울하게 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누군지 모를 광대에게 동조하기 위해서이다. 그 광대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왜 살인을 했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의 시위는 일반적으로 시민들을 분개하게 만드는 사건인 억울한 일을 또는 부당한 대우를 당한 사람이 분신을 한다거나 부패나 부조리에 맞서 시위를 하다 공권력으로부터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환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서가 살인자로 내몰리기까지 아서가 속한 사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아서의 불운한 삶을 따라가다 보 ‘조커’를 보는 동안 아서에게 연민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 이 지점이 상반된 평가를 유도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잭 니콜슨이나 히스 레저의 조커를 보면서 연민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눈부신 연기력에 감탄하거나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에 매료될지언정 연민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2
토드 필립스의 ‘조커’에 대한 이런저런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영화 ‘조커’에는 배트맨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린 브루스 웨인이 나오기는 하지만,) 우리는 영화 ‘조커’에서 배트카를 타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배트맨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아서가 조커가 되기 직전까지의 개인적인 삶을 담고 있기 때문에 조커의 황당하고 신출귀몰한 범죄 또한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배트맨 시리즈에서 보던 조커는 사라지고 너무나 현실적인 사회적 약자이자 연쇄 살인마 아서 플렉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결국 아서는 배트맨이 응징해야 마땅한 악당 조커가 되어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아서는 지하철에서 첫 살인을 하고 공중 화장실로 가서 살인을 하면서 느낀 쾌감을 춤으로 표현을 한다. 다음날 이 살인 사건은 신문에 크게 나고 시민들은 아서의 살인에 환호를 한다. 살면서 받아보는 첫 관심과 살인의 쾌감을 맛본 아서는 어머니, 옛 동료, 자신이 존경했던 머레이를 차례로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 조커로 태어난다.
아서의 불운한 삶과 사회적 부조리가 아서의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불평등한 사회가 배경일 수는 있지만, 영화 ‘조커’가 과연 진지하게 계급의 문제를 다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어떠한 폭력의 미화도 그렇다고 계급 갈등에 대한 사회적 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회적 약자 아서 플렉이 어떻게 매력적인 빌런 조커가 되었는지에 대한 잘 만들어 놓은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조커’에 대한 엇갈린 두 평가는 무의미해 보인다. 아서의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고 살인을 하는 아서를 사회의 부당한 희생양으로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아서는 악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DC Comics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일 뿐이다.

영화 ‘조커’는 배트맨이 나오지 않음으로 리얼리티라는 가면을 쓰게 되었고, 그 리얼리티는 판타지를 잠식하는 착시효과를 관객에게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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