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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Nov 03. 2019

'경계선'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의 인간다움이란..

1 인위적인 경계
알리 아바시 감독의 ‘경계선(Grans, Border)’은 제목처럼 경계에 대한 영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경계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티나는 국가의 경계에서 일하는 출입국 세관 직원이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동안 티나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경계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나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티나가 처음 등장하면 티나의 외모는 사람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논리적으로 말을 할 때면 인간으로 생각이 되고, 외모를 보면 인간과는 다른 종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티나에게는 냄새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낯선 사람에 대한 이해를 시각정보와 사회적 맥락에 의존하는데 반해, 티나는 후각정보로 상대를 파악한다. 이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티나의 외모는 누가 봐도 여성으로 보이나, 생식기는 남성의 그것과 유사하다. 티나가 보레를 만나러 갈 때 치마를 입은 것으로 보아 자신을 여성으로 인지하고 있으나, 관객의 시선에서는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것이 모호하다. 티나의 직장은 도시에 있고 집은 숲 속에 있다. 티나가 숲 속에 사는 이유는 도시에서는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를 하지 못하지만, 숲 속의 여우나 사슴과 같은 야생동물과는 교감을 잘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티나의 삶 자체가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2 무너지는 경계
티나와 보레가 만난 이후,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느꼈던 경계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인간인지 아닌지 모를 경계에 있던 티나는 보레를 통해 자신이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티나는 여성, 보레는 남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티나는 인간 남성과 유사한 생식기를, 보레는 인간 여성과 유사한 생식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남성처럼 보이는 보레는 몸에서 난자를 만들어내고 출산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여성과 남성(혹은 수컷과 암컷)에 대한 인식의 경계가 여기서 무너진다. 티나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생김새가 다른 것을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보는 관객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고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인지되는 것일 뿐이다. 티나와 보레가 성관계를 맺고 숲 속을 알몸으로 뛰어가는 장면은 트롤이 아닌 인간 종이 봐도 어떠한 해방감이 느껴지고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 장면에서는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 티나는 자신이 트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인간의 시선 밖으로 나와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계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3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트롤
우리는 경계가 점점 더 빨리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 간 경제 블록이 무너지기도 하고 노동력의 이동도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던 사회적 젠더도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물들도 인간처럼 사회적, 개인적 욕구가 있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감정이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인간의 관점에서 지능이 다른 동물보다 높을지는 몰라도 인간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인간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역사를 보면 이러한 세상의 변화 속도를 인간의 세계관과 윤리관은 항상 뒤늦게 따라갔다. 그 속도의 차이는 변화하려는 인간과 변화하지 않으려는 인간과의 갈등을 유발한다. 지금 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경계는 과거보다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감독 알리 아바시는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의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길러지고 인간 사회에서 살고 있는 티나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리고 트롤의 본능이 깨어난 후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 티나에게 경제적으로 기대 살고 자신밖에 모르는 롤랜드보다 티나가 더 이타적이다. 아동 포르노를 보는 신사보다, 아동 포르노를 만드는 부부보다도 티나는 훨씬 더 윤리적이다. 그리고 티나는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준 보레가 아이를 훔쳐서 판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를 경찰에 신고하는 준법정신을 갖고 있다. 티나는 여전히 사회화된 인간이다. 그리고 트롤이 모여 산다는 란드로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트롤의 아이가 자신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티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양육하려는 트롤로써의 본능도 유지하고 있다. 누가 더 인간답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트롤’.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세상에서의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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