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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20. 2019

‘그래비티’ 삶의 질량이 더 커지는 순간

1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중력(Gravity)은 고전 물리학에서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끌어당김은 질량이 있는 두 물체 간에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 사이에도 끌어당김은 존재한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으로 끌리기도 하고 쌍방이 서로에게 끌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도 끌어당김이 있다. 물론 연령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일 수도 있겠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심리적으로 삶에 더 끌려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에 더 가까이 끌려가 있는 사람도 있다.


2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과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에서 일주일째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맷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휴스턴 NASA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맷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맷은 또한 순간순간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푸른 지구의 모습, 갠지스강의 해, 일출 등 위기의 순간에도 지구가 주는 경이로운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맷은 자신의 운명이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맷과 달리 라이언은 필요한 말만 하고 과묵하게 자신의 주어진 임무만을 수행한다. 라이언은 4살 난 딸이 죽은 이후로 삶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고, 일하고, 운전하는 단조로운 삶을 반복할 뿐이다. 운전할 때는 대화가 없이 음악만 나오는 라디오를 듣는다. 맷이 우주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라이언은 고요함(Scilence)이라고 대답한다. 이렇듯 맷은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려 하고, 라이언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단절시키려고 한다. 즉 맷은 삶에 더 가까이 끌려가 있는 반면, 라이언은 삶보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딸이 있는 곳, 죽음에 더 끌려가 있는 상태이다.


3
미사일 공격을 받은 러시아 위성의 파편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궤도를 돌면서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우주인들을 습격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파편의 공격으로 인해 허블 망원경에 있던 라이언은 튕겨져 나가 우주미아가 될 위기에 놓인다. 통신도 두절되고 어디가 어디인지 좌표를 알 수 없는 우주에서 라이언은 고립되어 공포감에 휩싸여있다.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키려고 하던 라이언이 물리적으로 고립이 되니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밀려나기 시작한 관성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하다. 잠시 후 고립되어 있는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맷이 나타난다. 맷은 자신과 라이언을 끈으로 연결하여 우주정거장으로 향한다. 같이 임무를 수행하던 동료들은 이 사고로 인해 모두 죽고 생존자는 맷과 라이언뿐이다. 맷의 추의 연료는 얼마 남지 않았고, 라이언의 우주복에 있는 산소는 다 떨어져 가고 있다. 둘은 어렵게 우주정거장에 도착했지만, 연료 부족으로 인해 맷은 우주정거장으로부터 멀어지고 라이언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 관성으로 멀어지는 맷을 라이언은 붙잡고 있지만, 라이언은 자신에게 딸려오는 맷을 살리기 위해 둘을 연결한 줄을 놓아버린다. 이렇게 맷은 죽음을 앞둔 우주미아가 되고 라이언은 우주정거장으로 무사히 돌아온다. 라이언은 우주정거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우주복을 벗어던지고 난 뒤 순간 의식을 잃어버린다. 산소부족과 안도감에 의식을 잃고 웅크린 자세로 무중력 공간에 라이언은 둥둥 떠있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숨이 멎는 순간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듯이 이 장면은 태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에게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를 한 작품이 떠오른다.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일원인 샘 테일러 우드의 작품 ‘self-portrait suspended’이다. 공중에 떠있는 샘 테일러 우드의 모습은 몸과 감정, 육체와 영혼, 혹은 삶과 죽음을 분리해 무게를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self-portrait suspended’는 실제로 샘 테일러 우드가 두 번의 암을 극복한 이후에 제작한 품이기도 하다.

Sam Taylor Wood, ‘self-portrait suspended’


그럼 이제 라이언이 우주정거장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으로 돌아가 보자. 맷은 우주 미아가 되어 죽음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도 라이언이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하고, 갠지스강에 떠있는 해의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하고, 자신이 솔로비예프 우주 유영의 기록을 깰 것이라는 농담을 한다. 그 와중에 맷은 라이언에게 결정적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당신 나한테 끌렸지? (You’re attracted to me, Right?)’. 실제로 자신과 다르게 활력이 넘치는 맷에게 라이언은 아마도 끌렸을 것이다.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끌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감정이 남아 있다면,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다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죽음의 끌림으로부터 벗어나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 죽은 딸을 붙잡고 무의미하게 살던 라이언이 맷에게 끌렸다면,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 라이언은 아픔을 극복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이다. 따라서 우주정거장 안으로 들어와 의식을 잃은 라이언이 웅크리고 공중에 떠 있는 숏은 삶의 질량이 더 커지는 순간이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기보다 누군가에게 끌리고 소통할 수 있는 감정의 질량이 더 커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딸을 놓아주지 못해 죽음에 더 끌려가 있던 라이언이 지구로 돌아가야만 할 이유를 찾고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암흑의 공간이 주는 두려움, 한번 놓치면 관성으로 다시 붙잡기 힘든 상실감, 단절과 고립이 주는 극단적인 고독감, 무중력 상태로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무력감, 이러한 영화적 우주공간이 주는 극단적인 불안과 근원적인 공포는 사실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비티’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의 우주공간에 있는 라이언과 맷 주위를 카메라가 유영하듯 맴돌며 시작하는데, 어쩌면 이는 이들의 삶 주위를 떠다니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맷의 끌어당기고 놓아주는 운동을 통해 죽은 딸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라이언의 공간을 소통과 희망이라는 부피로 채우고 삶의 질량이 커져가는 것을 카메라는 서서히 속도를 내며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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