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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16. 2019

‘벌새’ 무너진 성수대교는 과연 복구되었는가?

1994년의 대치동은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대치동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의 대치동은 대한민국 학원의 메카가 아니었으며, 다른 강남 지역에 비해 아파트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부자동네라 불리던 1994년의 강남은 의사도 살고, 떡집 주인도 살고, 곧 철거될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사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지금의 대치동이 된 것은 2000년이후 옆 동네인 도곡동에 최고급 주상복합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신흥부자와 강북의 부자들이 자식을 강남에 있는 중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도곡동으로 몰려오면서부터이다. 2000년 중반 이후 상가건물이 많은 대치동에 이들의 자녀를 수용할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고, 이렇게 사교육의 중심이 되어버린 대치동의 아파트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시간이 좀더 흘러 대치동의 아파트들이 재건축 대상이 되면서 가격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자식을 좀더 좋은(혹은 좋다고 생각되는) 환경에서 공부를 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서 이사 오는 사람들까지 더해졌다.


1 혹
은희는 자기 집 1002호가 아닌 902호의 벨을 누르고 문손잡이를 잡아 당기면서 애타게 엄마를 부르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다. 엄마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이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김보라의 ‘벌새’는 1994년 대치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은희의 이야기이다. 은희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 소녀이다. 공부를 못하다 보니 학교에서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다. 집은 대원외고와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오빠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언니는 고등학교를 떨어져 멀리 강북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아버지에게 혼나기 일수다. 또한 집안 권력서열 2위인 오빠는 은희에게 자주 손찌검을 하고, 엄마는 무심히 싸우지 말라고만 할 뿐 일방적으로 맞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집에서도 은희는 스스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자신을 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학교와 집 밖의 은희의 삶 또한 녹록하지만은 않다. 의사 아들 남자친구인 지완은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지완의 엄마는 대놓고 은희가 떡집 딸인 것을 무시한다. 단짝 친구는 문방구에서 물건을 같이 훔치자고 하고는 주인에게 걸리니 혼자만 빠져나가려고 한다. 이렇듯 영화는 강남이라는 커다란 세계와 은희의 내면이라는 작은 세계를 느슨하게 연결한 후 은희의 수동적인 태도와 내면의 상처로 서사를 끌어가고 있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던 두 세계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팽팽해지는데, 팽팽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은희가 다니는 한자학원에 새로운 선생님 영지가 오면서부터이다. 영지는 서울대를 휴학중인 운동권 출신이고, 아마 군사정권이 끝나고 학생운동의 동력을 잃어버려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우연히 대치동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은희에게 영지는 다른 세계이다. 친구와 다툼을 계기로 은희는 영지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영지를 동경하게 된다. 영지는 은희 주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아파트 옆 판자촌 사람들을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은희에게 말을 한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은희에게 “힘들고 우울할 때는 손가락을 봐.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여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라고 하면서 은희의 마음에 활력을 조금씩 불어 넣어준다. 은희는 영지를 통해서 수동적 관계에서 받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 받고, 자신의 삶에 능동적 주체로써 거듭날 수 있는 날갯짓을 하게 된다.


2 벌새
은희는 혼자 병원에 다녀오다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를 발견한다. 영화의 첫 시작처럼 엄마를 애타게 부르지만, 엄마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은희가 아니다. 엄마가 살갑지는 않지만 오빠보다 자신을 챙기지는 않지만 엄마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고 있다. 얼마 후 은희는 귀밑에 난 혹을 제거하는 수술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한다. 문병을 온 영지는 은희에게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마.”라고 부드럽지만 힘있게 조언을 해준다. 은희의 마음에 붙어있던 혹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은희는 자신이 더 이상 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꽃의 꿀을 따먹기 위해 작지만 힘차게 수없이 날갯짓을 하는 벌새로 거듭났다. 수동적인 태도로 끌려만 다니던 은희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인연을 스스로 판단하여 단절시키거나 봉합해 나가기 시작한다. 헤어진 남자친구 지완이 또 다시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을 하자, 은희는 “괜찮아. 난 널 좋아한 적이 없으니까”라고 말하면서 매몰차게 지완의 접근을 차단한다. 은희를 좋아하던 후배가 자신을 외면하자 왜 그러냐고 따져 묻기도 하고, 자신한테 화를 내는 오빠한테는 당당하게 맞서 싸우기도 한다. 말없이 학원을 그만둔 영지를 만나기 위해 일요일에 학원에 나와 한 없이 기다린다. 그리고 영지가 오는 시간을 잘 못 알려줘 만나지 못하게 되자, 학원 원장에게 왜 시간을 잘 못 알려주었냐며 반항을 한다. 이렇게 15살 어린 소녀 은희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계속해서 힘겨운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은희 언니인 수희가 매일 타고 등교하는 노선의 버스가 성수대교 아래로 추락했지만, 다행히도 수희는 학교를 늦게 가는 바람에 추락한 버스를 타지 않았다. 성수대교 붕괴와 은희의 삶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세계를 연결한 끈은 갈수록 팽팽해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학원을 그만둔 영지 때문에 서운해 하던 은희는 영지로부터 온 소포를 받고, 소포에 쓰여진 주소의 집으로 영지를 찾아간다. 영지의 어머니로부터 언니가 타지 않았던 추락한 버스에 영지가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동경하고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믿었던 영지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은희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그리고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와 함께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러 간다.


우리는 이 영화의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을 알려주는 시퀀스를 자세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994년 10월 21일’이라는 자막이 뜬다. 그리고 다음 숏은 철거가 시작된 것처럼 현수막이 찢기고 일부가 무너져 있는 모습의 판자촌을 지나 은희가 등교를 한다. 다음 숏은 학교 복도에서 “무너졌, 성수대교가 무너졌” 외침이 들리고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 다음 숏에서 카메라는 교실로 들어가 TV를 통해 성수대교가 무너진 현장을 보도하는 뉴스와 그것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감독 김보라는 날짜와 성수대교 붕괴를 알려주는 숏 사이에 왜 판자촌의 숏을 삽입했을까? 아마 성수대교 붕괴와 판자촌 철거가 무관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성냥갑 아파트로 대표되는 초고속 경제성장은 누군가의 희생과 부작용은 부정한 채 앞만 보면서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그 결과, 경제발전을 따라 오지 못한 소외된 계층은 철저히 외면 당했고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지만 부실하게 공사를 한 성수대교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3년후 외환위기로 대한민국은 부도가 났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국가 부도는 해결이 되었고 경제는 다시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대치동 판자촌에 살던 철거민이 떠난 자리는 그들을 동정하지 말라고 하고 ‘잘린 손가락’을 불러주던 영지와 같은 갈 곳 잃은 운동권 출신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만든 사설학원으로 대체가 되었다. 그들은 지금 시험을 잘 보는 기술, 대학을 잘 가는 전략을 팔고 있다. 아이러니한 현실.. 아마 2019년 현실의 영지는 대치동의 어느 큰 학원의 원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김보라의 첫 장편 ‘벌새’의 소녀의 시점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관한 서사는 자전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따라서 영화에서 김보라가 영지를 죽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수대교 붕괴와 함께 앞선 세대들의 순수함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혹은 영지의 경제적인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영지가 대치동 학원 원장이 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이기적인 바램이 버무려 졌을 수도 있다. 이제 강남이라는 커다란 세계와 은희의 내면이라는 작은 세계를 연결한 끈은 완전히 팽팽해졌고 그 끈은 끊어질 듯 말 듯 한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봉준호는 ‘기생충’에서 이 사회의 부조리는 어디서 오는지를 찾기 위해 현재 시점에서 가난한집과 부잣집 속으로 깊이 들어가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구조적 결함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관찰한다. 이와는 반대로 김보라는 25년 전으로 돌아가 은희라는 평범한 여중생의 성장과 가족의 삶을 통해 이 부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천천히 그리고 면밀하게 고찰한다. 그리고 김보라는 말한다. “아직도 성수대교는 복구되지 않았다고, 여전히 붕괴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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