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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16. 2019

'기생충'과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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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조루즈 클루조,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린다.”라고 칸 영화제에서 수상 소감을 밝혔다. 따라서 기생충을 보고 클로드 샤브롤의 1995년 작품 ‘의식(La Cérémonie)’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영화 ‘의식’은 소피가 프랑스 상류층 릴리브르 가족의 가정부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릴리브르 가족은 교양이 있는 태도로 자신들의 위선을 감추는 사람들이다. 소피는 글을 읽지 못한다. 그 사실이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소피는 시력이 안 좋은 척을 한다. 남자 친구와의 임신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릴리브르 집안의 딸 멜린다는 우연히 소피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한 멜린다의 동정을 치욕으로 받아들인 소피는 멜린다에게 임신한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을 한다. 이 협박으로 소피는 해고된다. 며칠 후 소피는 친구인 잔느와 릴리브르 가족의 집을 찾아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TV로 시청하고 있는 릴리브르 가족을 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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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식’의 원작과 영어 제목은 ‘A judgment in stone’이다. 돌에 새겨진 판단 또는 편견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이 됐든 편견이 됐든 돌에 무언가를 한번 새기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기생충은 민혁이 기택의 가족에게 수석을 가지고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가정부 문광이 박사장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민혁이 가지고 온 수석을 보고 기우는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을 한다. 상징이라는 것은 상징물이 갖는 본연의 성질이라기보다 개인적 판단 혹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상징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그 수석 또한 산수경석이라는 상징적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수석이지 사실은 그냥 돌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수석을 시냇물에 가져다 놓았을 때 다른 돌들과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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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나오지는 않는 영화 ‘기생충’에서 기생충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박사장 집에 취업해서 돈을 버는 기택의 가족이 기생충일까? 빚쟁이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 수밖에 없는 문광 부부가 기생충일까? 아니면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하지만, 위선적인 박사장네 가족이 기생충일까? 부자라고 다 같은 교양과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빈자라고 해서 다 같은 교양과 인격을 갖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누구든 부자나 빈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부자와 빈자에 대한 편견은 상징화된 기호로써 우리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부자가 빈자에 대해 갖는 인식, 빈자가 부자에 대해 갖는 인식이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계급 간에 발생하는 인식의 차이는 돌에 새겨진 편견처럼 잘 지워지지가 않게 굳어져 버렸다. 이 인식의 차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잘 맞을 때 그 인식의 차이는 우호적 관계로 잠복해 있지만, 이해관계가 깨지는 순간 적대적 관계로 돌변하여 대립과 갈등의 형태로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문광은 아무도 모르고 있는 지하로 내려가 잠복해 있는 그 위험을 끄집어 올리고야 만다. 그리고 끔찍한 사실은 그 인식의 차이는 부자는 덜 부자를 인정하지 않고 빈자는 더 빈자를 무시하는 형태로 유사 계급 내에서도 차별이 존재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반지하에서 사는 기택이 지하에 사는 문광의 남편에게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 무서운 것은 지우기 힘든 인식은 전염성 또한 강하다. 박사장은 기택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나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특유의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연교는 이전에는 못 느꼈지만, 기택에게서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기택 또한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계속해서 신경을 쓰게 되고 급기야 박사장을 살해하는 동기로까지 이어진다. 거기다가 박사장은 전철을 타고 기생충을 보러 온 다수의 관객들에게 모욕감을 줬다. 수석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수석인 것처럼 편견으로 인한 타자에 대한 고정된 인식은 관념 속에 존재하는 허상일 뿐 실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돌에 새긴 편견처럼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인식’이 바로 우리 뇌에서 기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1세기 세 번째 10년을 앞둔 시점에 대한민국의 계급을 다룬 두 편의 영화 버닝(2018년)과 기생충(2019년)이 연속으로 도착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두 편 모두 칸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았으며, 그중 한편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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