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다, 기대하다 2

by 킥더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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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복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우에게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동료 교수들과 회식을 하고 밤 12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갔을 테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끌려갔다. 소리의 진원지는 시우가 사는 아파트 건물 바로 뒤였다. 양복 입은 한 남자와 택시기사가 소리를 지르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아파트 보안요원이 두 사람을 말리고 있다. 양복 입은 사람은 술에 많이 취한 모습이다.
택시기사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택시비 달라고요. 택시를 탔으면 돈을 내야죠.”
양복 입은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택시비가 뭐 그렇게 비싸! 나는 못 줘. 못 준다고. 당신 나한테 사기치는 거지! 나 무시하는 거야? 당신도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 나 쓰레기다. 아무리 나를 무시해도 그렇지 택시비를 속여? 내가 모를 줄 알아?” 상당히 흥분해 있다.
택시 기사도 격앙돼서 말한다. “속이기는 누가 속였다고 그래요! 택시비 얼마나 한다고 떼어먹으려고 하는 거에요? 빨리 줘요. 저 바빠요. 다시 일하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빨리 달라고요.”
양복 입은 남자는 더 크게 화를 내며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보안요원은 양복 입은 남자를 말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선생님, 술에 많이 취하셨어요. 기사님 말씀이 맞아요. 속인 거 없으니 택시비 그만 주시죠.”
양복 입은 남자는 택시기사 멱살을 잡은 채 보안 요원을 보면 말한다. “넌, 또 뭐야?”
“저는 이 아파트 보안요원이에요. 선생님 제발 진정하세요.”
택시기사도 화가 많이 났다. “도대체 왜 택시비 안주는 거에요! 지금 그쪽에서 내가 택시 한다고 무시하는 거잖아요.”
“너희 둘이 한 편이지. 짜고 나한테 이러는 거지.”
시우는 몇 발 떨어진 거리에서 세 사람을 보고 있다. 양복 입은 남자가 왜 저러는지 궁금하다.
‘차림새를 봐도 그렇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도대체 왜?’
그때 머릿속에서 회로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남자의 과거가 계산됐다. 시우는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에 많이 당황했다.

그는 변호사이다. 결혼 전까지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꽤 늦은 나이에 아내를 소개로 만났고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했다. 아내도 첫 만남에 능력 있고 순수한 모습의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1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했다. 두 달 전 그는 아내와 다투었다. 다투었다라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 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술 한 잔 하고 새벽에 들어간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깰까 조용히 옷 갈아 입고 씻고 불이 꺼진 깜깜한 안방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침대 옆 스탠드에 불이 들어왔다. 아내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남자는 깜짝 놀랐다. “아직 안 잤어? 나 들어오는 소리에 깼나 보네. 미안해.”
“깬 게 아니라 안 자고 있었어.” 아내가 말했다.
“아.. 그랬구나. 미안. 많이 늦었지? 일 끝나고 바로 오려고 했는데. 자꾸 한 잔 하자고 해서.” 그는 말끝을 흐렸다.
”당신, 나 우울증 있는 거 알아, 몰라?”
아내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표정과 말투는 너무 평온해 보였다. 원래 아내는 기분이 안 좋아도 좀처럼 화내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하는 성격이다.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평소와는 달라도 많이 달라 보였다. 말의 내용과 본새가 이렇게까지 확연하게 차이가 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평온한 말투가 오히려 차가운 얼음 송곳처럼 느껴진다.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당연히 알고 있지. 진짜 진짜 미안해.”
아내는 바로 손을 빼냈다. “나는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사랑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내의 말에 당황해서 물었다.
“나도 내 자신을 몰랐어. 알고 보니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잘못 했어.”
이제 보니 아내는 잠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웻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내의 차림새를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우리 여기서 끝내자.”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다른 사람 생겼어?” 그는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나는 부부관계 셈법이 일 더하기 일이 최소한 일은 아니더라도 일 점 오는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우리는 아니더라고. 그냥 이더라.” 아내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평온한 말투와 표정이다. 다른 사람이 생겼냐는 물음에 전혀 억울해 하지도 않는다.
그날 아내는 자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지금은 이혼 소송 중에 있다. 보편적인 관점으로 볼 때 결혼 생활 중에 이혼할 정도의 큰 다툼이나 문제 같은 것은 없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양복 입은 남자의 과거가 순식간에 계산이 돼 머리에 떠올랐다. 시우는 지갑에서 이만 원을 꺼내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다가가 건넸다.
“기사님, 이만 원이면 될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시우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에요? 가족이에요? 술 좀 곱게 쳐먹으라고 하세요. 나 원 참 별꼴을 다 당하네.” 택시기사는 이만 원을 챙기고 바로 떠났다.
이를 본 양복 입은 남자가 이번에는 시우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당신은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도대체 당신 누구야?”
“선생님, 이제 그만 하세요. 이분은 선생님을 도와 드린 거에요. 몇 동 몇 호에 사세요?” 보안요원이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말렸다.
시우는 양복 입은 남자를 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냥 그랬다. 흐느끼는 모습을 본 양복 입은 남자는 난동부리는 것을 멈췄다. 보안 요원과 함께 황당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본다. 시우의 우는 모습을 본 남자도 울기 시작한다. 시우는 다가가서 그 사람을 양팔로 안았다. 그 남자를 안은 상태에서 보안요원에게 자기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가라는 손짓과 눈빛을 보냈다. 시우에게 안겨 펑펑 울었다. 함께 우는 것이 그 남자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시우는 그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차 한 잔을 대접했다. 그 남자는 차를 마시며 아내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시우가 계산한 과거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갑자기 자신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자신이 왜 이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돌아만 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과 똑같이 아내를 대할 수 있다고 했다.
시우는 그를 보면서 이혼을 결정하는데 굳이 사회적 상식에 근거한 이유가 필요한가 싶었다. 사랑하지 않는 다는 모호한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는 술에 취해 추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랑이 없다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이 있다고 믿는 상황에서도 아내를 사랑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그가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말해도 믿지 않았을 테니까.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어떻게 전혀 모르는 사람의 과거가 일순간에 떠오른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암산으로 불가능한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체험과도 같았다. 양복 입은 남자가 난동 부리는 것을 보고 머릿속에서 그렇게 행동하게 된 과거를 계산한 것이다. 시우는 이것도 남준우 박사가 말한 것처럼 환각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 느낌은 분명 아니다. 어떻게 환각으로 누군가의 과거에 일어난 일을 맞출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수학 문제를 계산하는 능력도 환각이 아니었다. 사고 이후, 수술을 받고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하다. 시우는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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